봄은 독립, 자립, 여행, 새로운 출발의 계절입니다. 올해 4월, 새로운 환경을 맞이한 분들께 여쭙습니다. 조금은 익숙해져 있나요?

저는, 저로서는 드문 일입니다만, 올해 근무하고 있는 대학 졸업식에 갔었는데요. 총장 기념사를 듣고 그만 웃어버렸습니다. “글로벌 시대인 지금이야말로 다양성이 중요하다”라고 역설하는 것은 좋았습니다만, 단상 뒤로 보이는 이사와 학부장 및 대학의 높으신 분들을 포함하여 총 20명 정도의 분들이 모두 다 50대, 60대의 일본인 남성, 분명히 말하면 아저씨, 할아버지뿐이었습니다. 다양성이 중요하다며 졸업생들에게 설교하면서도 설득력이 없는 거죠. 대체 ‘다양성’을 무엇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신기하더군요.

자, 오늘의 테마는 섹스와 여남평등입니다. ‘섹스’와 ‘여남평등’이라니, 별로 어울리지 않는 테마로 보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섹스란 상호 간의 사랑과(사랑이 없어도 가능하지만요) 성욕의 발로로써 행하는 사적 행위인데,  거기에 ‘평등’이라니. 감이 오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옛날과는 달리, 현대의 여성들은(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자유롭게 섹스를 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의 유럽과 미국, 일본에서 일어난 우먼 리브(Women’s Liberation, 여성해방운동) 운동, 이른바 리브 운동에서 큰 테마이었던 것이, ‘여성의 성(性)’의 자유이었습니다. “결혼 전에는 처녀여야 한다”거나, “성경험이 많은 여성은 헤프다”라는 등의 여성에게 가해진 억압과 고랑을 타파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여성도 성(性)을 즐기자”라는 것이 콘셉트이었는데요. 섹스 토이를 여성에게 배달하는 LOVEPEACECLUB도 바로 그 산물인 것이죠!

하지만 정말 여성에게 성(性)의 자유가 실현되었는지, 여성에게 있어서 성의 자유란 정말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만들어 준 사람이 드워킨(Andrea Rita Dworkin)입니다.

페미니즘의 표어와 페미니스트의 말을 계기로 악명 높은 사람은 많습니다만(쓴웃음), 그 중에서도 최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안드레아 드워킨(Andrea Rita Dworkin)의 “모든 섹스는 강간이다”일 것입니다. 1987년, 『Intercourse』를 출판한 이래, 드워킨과 그의 말은 무수한 비판과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이 세상에 강간과 폭력적 섹스는 불행히도 너무 많지만 섹스가 전부 강간이라니, 그런 멍청한! 상호 간의 애정으로 행하는 섹스, 여성도 남성도 납득한 후에 하는 섹스 쪽이 보통일 텐데, 섹스가 전부 강간이라니. 남성혐오에 인기도 없는 페미니스트의 이상한 사고방식이다.”라며 페미 때리기(フェミ叩き, 페미타타키)의 알맞은 표적이 되었었죠.

하지만, 드워킨을 꼼꼼하게 읽다 보면 정말 그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행위에서 최고·최후의 목표가 되어 있는 성교(Intercourse), 그것은 여성의 신체 안 쪽에 있는 성기(질)에 남성의 성기(페니스)를 삽입하는 것이죠.

“침입 당하는 것으로서의 섹스와, 몸의 프라이버시(privacy)는 결코 공존할 수 없다. 질 그 자체는 완력으로 침입 당하고, 그 근육은 열리지 않으면 안 된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두 다리 사이에는 틈이 있고, 남성은 그 안에 삽입한다. 그와 같은 삽입은 단호한 태도의 침입이다. 여성은 육체적으로도 내면적으로도 프라이버시를 점령당한다.” (210쪽)

틈을 침입 당한다니, 마치 강간같은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보통의 섹스는, 여성이 스스로 받아들인 일이고, 삽입하기 때문에 섹스의 쾌감도 있다. (드워킨과 같은)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불감증에, 남성을 혐오하는 여성이라서 그런 것 아닌가?” 여성이라도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많겠죠? 하지만 다시 생각해 봐 주세요. 삽입 당해서 아픈 섹스, 전혀 기분 좋지 않은 섹스(그 전에 키스나 애무를 할 때는 좋았는데!)를 한 적이 있는 지 말입니다.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여성은 극히 소수이지 않을까요? 항상은 아니지만 아픈 것을 참았다거나, 빨리 끝나길 바랐다거나, 그런 기억을 가진 사람은 드물지 않을 것입니다. 여성의 성경험에 대해 폭넓은 실태 조사 연구를 실시한 것으로 유명한 하이트 리포트에서도 대부분의 여성은 성교에서 오르가즘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남성성기의 삽입정사는 여성에게 있어서, 쾌감을 부를 때 조차 임신에 대한 불안을 동반합니다(임신을 원해서 하는 섹스는 예외적이겠지만요). 그렇게 생각하면 성교(Intercourse)가 본래 여성에게 있어서 침해 행위라는 드워킨의 말이 들어맞는다는 생각, 들지 않나요? 또 여성에게 있어서 쾌락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성기 삽입이, 섹스의 당연한 목표, 궁극의 성행위라고 여겨지는 것은 이상하지 않나요? 실제로 드워킨은 여남 간의 모든 섹스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성의 쾌락 면에서 성교가 낮은 가치밖에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처럼, 사회구조를 개변할 것”과 “성교는많은 성적 행위 중 하나이며, 이와 다른, 보다 깊은, 보다 긴, 필시 보다 관능적인 성애행위의 일부라는 의미를 확립할 것”(239쪽)을 주장하고, 여남 간의 성교가 특권화되어 절대시되어 있는 사실을 비판했던 것입니다. 

성행위는 통상적으로 상호 간의 자유 의사로 행해지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성과 남성이 서로 동등하게 섹스를 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드워킨이 말하듯이, 여성과 남성은 해부학적으로 확실히 다릅니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아플 뿐인데도, 남성의 입장에서는 삽입하고 정사하면 쾌감을 얻을 수 있죠. 물론, 임신에 대한 불안도 없습니다. 이거, 대등 또는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철학자 다무라 기미에(田村公江)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적 행위 여부의 최종 결정권은 여성이 갖는다.

도중에 그만둘 수 있는 권리도 있다.

남성은 자신의 성적 쾌감 획득 보다 여성의 성적 쾌감 획득을 우선해야만 한다.

상기의 조건을 만족시키고 나서야, 여성은 성적 행위에 있어서 남성과 대등해진다.(「성(性)의 상품화—성(性)의 자기결정권이란」, 『성(性)/애(愛)의 철학』, 190쪽)

이거, 틀림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하지만 그런 거 무리아니야?”라는 대답이 곧장 돌아올 것만 같습니다. 그런 조건을 지키기 위해 규칙과 법률을 만드는 것이 우선 무리이고, 아주 만일에 법률을 만든다고 해도 지키는 남성이 어느 정도 있을지요. 성행위 전에는 어쨌든 하고 싶으니까 (규칙을)지키겠다고 약속해도, 막상 침대에 들어가면 그곳에는 두 명뿐인 밀실이기 때문에, “그런 약속은 모른다” 라고 하지 않을까요? 조건 위반이라는 여성의 주장도, 사후 약방문.

그렇죠? 확실히 그런 조건은 비현실적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조건이 지켜질 것 같지 않은 것 이상으로, “지금까지 지키지 않아도 됐는데, 그게 보통이었는데, 노골적인 폭력이나 강제가 없는 한, 여성은 그러한 불평등성을 깨닫지 못한다”(다무라, 상동, 191쪽)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옛날과는 달리 현재 우리들은 남성과 같이 여성 스스로의 의사로 자유롭게 섹스를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거기서 쾌감을 느끼지 못했거나 아팠다거나 해도, 그것은 본인의 탓. 상대에게 “쾌감이 없었어”라고 불만을 말하면, 상대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힐 지도 모르고, “평소처럼 했는데, 네가 잘 못 느끼는 거 아니야?”라는 식의 말을 들을 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섹스는 다음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여성들은 확실히, 이전에 존재했던 성의 억압에서 다소 해방되어 성의 자유를 손에 넣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은 이것을 ‘대등함’, 또는 ‘자유’라 믿고, 평소 섹스를 하면서 엄연히 존재했던 억압을 깜빡 놓쳐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섹스도 제가 믿어 의심치 않는 ‘가짜 여남평등’의 하나이지 않을까요.

서두의 에피소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다양성’이란 모두 각각 다르다는 것, 달라도 그 자체로 괜찮다는 것을 뜻하죠. 하지만 이것은, 다른데 같은 취급을 하거나 동등하다고 처음부터 전제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원래부터 갖고 있는 것이 많은 사람이 있으면 적은 사람도 있는데, 사람은 모두 동등 또는 평등하다는 식으로 취급해버리면, 못 가진 쪽이 불리한 입장이 될 뿐입니다. 여성과 남성은 섹스에 있어서 큰 입장 차이(물론 여성의 신체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릅니다만)가 있고, 성적 행위의 배후에 동반되는 사회 경제적 입장도 다릅니다. 그 차이를 빼고, ‘평등’한 섹스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70년대의 리브운동의 혜택을 입은 우리들이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진정으로 여남이 평등한 성적 자유와 쾌락을 위해 다음 단계의 도전을 해도 좋을 때입니다.

[책소개]

안드레아 드워킨(Andrea Rita Dworkin), 『Intercourse 성적 행위의 정치학』(데라사와 미즈호 역), 青土社,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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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소개했듯이 많은 비판을 받고,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도 평가가 갈렸던 책입니다. ‘섹스는 자연히 사적인 것’이라는 ‘상식’을 뒤엎고 섹스에는 사회 제도와 가치관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만연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열위(劣位)가 성행위 자체에서도 확인되고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한 드워킨은, 그것이 바로 사실이기 때문에 사람들(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은 보고 싶어 하지 않고, 눈을 질끈 감고 싶은 순간을 무릅쓰고, (이와 같은 사실을 적시하는 것이)화를 부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로 Radical(근원적)이고 중요한 책입니다. “여성들은 금전적으로 남성보다 가난하고, 때문에 섹스를 물물교환하거나 팔거나 할 수 밖에 없다. 남성들이 여성을 금전적으로 보다 가난한 상태에 머무르도록 만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219쪽), “성교를 ‘그(남성)가 내 몸에 들어왔다’고 표현하다니, 우리들 여성은 로비(lobby)나 엘리베이터가 아니다”(226쪽)라는 등, 눈에서 비늘이 떨어질 이야기들(어떤 일을 계기로 진상이나 본질을 알게 된다는 의미의 일본 속담-역자주)이 가득합니다. 읽어보지 않겠어요?

원제: むちゃセンセーの フェミニズム<今さら>再入門 第2回  セックスって男女平等? @LOVEPEACECLUB
원문 게재일: 2014. 4. 24.
최종 수정일: 2016. 9. 9.
원저자: 무타 가즈에(牟田和恵)
번역: 지은
편집: M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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