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헤드폰을 끼고 있는 여성에게 작업거는 요령을 소개했다가 마땅한 비난을 대대적으로 받은 한 기사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여성의 앞길을 가로막고 서서 그들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들라고 한 그 기사가 비난 받으면서, 공공장소에서의 원치 않는 접근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쓰는 여성들이 있다는 현상도 새롭게 주목받았다.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한 담론의 대부분은 성폭행이나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을 논하지만, 정작 낄 데 안 낄 데를 모르고 여성의 일상에 습관적으로 끼어드는 남성들이 일삼는 여성의 자유권 침해가 바로 여성이 늘 겪고 있는 가장 일상적인 형태의 성폭력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담론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기고문의 저자인 피오나 베라-그레이(Fiona Vera-Gray)는 영국 더럼대학(Durham University) 리서치 펠로우로, 최근 공공장소에서 낯선 남성들이 여성의 일상에 허락없이 끼어들거나, 하던 일을 방해하거나, 성희롱하는 행위를 여성들이 어떻게 헤쳐나가는지에 대한 연구를 실시했다. 그가 이 연구를 통해 알게 된 가장 놀라운 점은 바로 여성들이 ‘길거리에서 남성들에게 방해 받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와 ‘그 노력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를 매우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저자가 50명의 여성을 상대로 인터뷰한 결과, 이 여성들은 자신이 길거리 성희롱을 피하기 위해, 집으로 가는 경로나, 대중교통에서 앉을 위치 선정 등을 의식적으로 결정한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었다. 남자가 성적인 발언을 해도 듣지 못했다거나 뒤에서 따라오면서 자위해도 보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일종의 방패로서 선글라스나 헤드폰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옷을 안전도에 따라 분류한다고 했다. 스카프는 안전하다 – 가슴 부위를 가리는데 유용하게 쓰이니까. 빨간색은 (일부 여성에 있어서) 위험하다 –  너무 밝고, 너무 튀고, 너무 눈에 띄니까. 어떤 이들은 일부러 특정 표정을 짓고 다닌다고 했다 – “터프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알지도 못하는 남성에게 “인상 좀 피고 다니라”는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그 밸런스를 기가 막히게 맞추려 한다고 했다.

여성들은 어떤 행동들은 스스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좀더 무의식 중에 하는 행동도 많았다. 원치 않는 접촉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무의식 중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지, 그 결과 자신의 자유가 얼마나 억압받고 있는지에 대해 딱히 생각해보지 못한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안전노동(Safety Work)

이처럼 여성이 공공장소에서의 개인적 자유를 침해 받지 않기 위해 기울여야 하는 노력을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 교수인 리즈 켈리 박사(Liz Kelly, PhD)는 ‘안전 노동’(Safety work)이라고 규정한다.

‘안전 노동’은 미국의 사회학자인 알리 러셀 하쉬췰드 박사(Arlie Russel Hochschild, 일부 언론에서는 ‘앨리 러셀 혹쉴드 박사’로 표기)가 처음 규명한 ‘감정 노동’과 견주어질 수 있는 개념으로, ‘감정 노동’이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직업의 일부가 되어, 일상적으로 감정을 규제할 수 있는 능력이 곧 노동자의 경제적 자본이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면, ‘안전 노동’은 여성이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삶의 일부가 되어, 일상적으로 남성의 폭력에 대처하거나 피할 수 있는 능력이 곧 여성의 생명과 안전을 유지할 수 있는 자원이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집이나 일터에서의 할 일에서 벗어나 유일하게 자신만의 시간을 홀로 보낼 수 있는 그 짧은 순간에도 여성들은 끊임없이 그 자유를 침해 받는다. 굳이 대놓고 다가와서 “스타일이 좋다, 어디 가시냐, 남자친구는 있냐”며 번호 좀 달라는 남성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들은 이 짧은 순간마저도 자신만의 세계에서 평화롭게 보낼 수가 없으며, 자기 세계에서 곧 억지로 끌려 나와, 신변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 환경을 끊임없이 스캔하고 판단 해야만 한다. 이렇게 안전을 위해 특별히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하기에, 여성에게는 원하는 생각을 원할 때 할 수 있는 자유가 제한되는데, 이러한 ‘안전 노동’의 존재에 대해 노동 당사자인 여성들 및 사회 전체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안전 노동’은 대개의 경우 선제적이다. 여성들은 위협을 인지했을 때 자신이 내린 결단이 실은 과민반응이었는지, 아니면 그 결단력 덕분에 실제로 폭력을 피할 수 있었던 건지에 대해, 실제로 피해를 입지 않는 이상 확연한 증거나 확신을 얻기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위협으로 인지한 것이 실제 위협이 맞는가에 관한 의문을 늘 품은 채 선제적으로 방어하며 살아가야 한다.

여성이 확연한 증거를 얻을 수 있는 경우, 즉 남성에게 피해를 입는 경우, 가해남성은 대부분 행위의 정도를 높였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남성이 여성을 빤히 쳐다보다가 접촉을 하거나, 뒤에서 따라오다가 빨리 걸어서 따라잡은 후 앞길을 가로막는다거나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의 연구에 참여했던 한 여성은 자신이 무의식 중에 ‘당황의 바람직한 정도’를 계속해서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고 언급한 적 있다. 여성들은 대중교통에서 성추행을 당하기 직전, 또는 당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별 일 아닌 일인데 자기가 자칫 ‘예민폐(너무 예민해서 남에게 폐를 끼친다는 용어로 주로 조롱조로 쓰임)’로 오해한 것이면 어쩌나, 내가 이 상황에서 이만큼 당황해도 바람직한가의 여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명확하게 남성에게 성희롱을 당하거나 폭력을 당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당황한 정도가 바람직한지 아닌지 알지 못하는 답답함을 안은 채, 주변 남성들의 의도나 행위를 스스로 예측해서, 가던 진로를 변경하거나, 있던 장소에서 이동하거나, 행동의 변화를 취하는 ‘안전 노동’을 하지만, 이 노동의 효력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안전 노동’이 실패해서 우리가 실제로 폭력을 당할 때에만 확보 가능하다. 이와 같이 우리가 ‘안전 노동’의 효력을 판단할 수 없기에, 여성은 자신의 ‘안전 노동’으로 인해 폭력을 “성공적”으로 피한 경우에도, 그 성공을 가능하게 한 자신의 노력의 실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딜레마에 고착한다. 여기에서의 “성공”이란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의 결과란? 우리 모두는 여성이 매일 겪고 있는 이 문제의 정도를 평가절하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의 성희롱 발생률 추정치는, 여성이 ‘안전 노동’을 통해 사건 발생을 막아낼 수 있었던 이 모든 경우들을 포함할 수 없다. 또한, 여성이 ‘안전 노동’을 했는데도 실패한 경우, 여성은 성폭력 생존자가 되어 왜 성폭력을 막지 못했냐는 비난을 받는다.

이 같은 평가절하를 멈추기 위해서는, 여성이 겪고 있는 모든 폭력의 종류와 정도를 – 원치 않는 언사를 듣는 것에서부터 버버리맨과 같은 성기 노출범이나, 길에서 따라오거나 지하철에서 성기를 부벼대는 성추행까지 – 전부 논해야 한다. 여성이 일상에서 흔히 겪는 차별적 언행을 기록하는 <일상에서의 성차별(Everyday Sexism) 프로젝트>가 훌륭히 해내고 있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이 같은 평가절하를 멈추기 위해서는, 여성이 단지 자유로워지기 위해 특별히 더 해야 하는 ‘안전 노동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이 정상적 사고의 새로운 틀이 되어야 한다. 여성혐오를 증오범죄로 규정하는 노팅햄 경찰청의 행보와 같이 말이다.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의 성희롱을 피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기울이고 있는 엄청난 노력의 정도를 인지하는 것은, 폭력을 피하지 못했다는 죄로 폭력 피해 여성들을 비난하는 우리의 문화를 바꾸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지금도 성폭력을 예방하려면 여성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여성들은 매일매일 성폭력을 당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설사 그들 자신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원제: Have you ever wondered how much energy you put in to avoid being assaulted? It may shock you @The Conversation
원문 게재일: 2016년 9월 21일
원저자: 피오나 베라 그레이 (Fiona Vera-Gray)
요약번역: Jamie
편집: Miro
이미지: 10 Hours of Walking in NYC as a Woman – Creator/Owner/Director: Rob Bliss Cre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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