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대선토론에서 대승을 거둔 힐러리 클린턴에게는 역사상 가장 어이없는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보다 더 위협적인 상대가 있다. 바로 성차별이다.

이번 달 초,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은 지금껏 가장 속내를 드러낸 인터뷰라고도 할 수 있는 대담을, CNN도 아니고 뉴욕 타임즈도 아닌 <뉴욕의 사람들(Humans of New York)>과 나눴다. <뉴욕의 사람들>은  뉴요커들의 사진과 짧은 인터뷰를 포스팅하는 블로그이다. 클린턴과의 인터뷰는, 물론 그녀가 유일무이한 인물이란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일반적인 뉴요커를 대표하는 인터뷰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이 인터뷰는, 높은 지위에 오른 여성들(특히 정계에서 그 어떤 분야에서보다 가장 심각하게)이 지금도 여전히 일반적으로 겪는 문제들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그들[남자들]이 하면 괜찮은 일이라도, 우리[여자들]가 하면 괜찮지 않아진다”고 클린턴은 말한다. “사람들은 여성을 볼 때, 다른 렌즈를 통해 평가한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사실이 그렇다.” 그녀는 그리고 나서 설령 “나쁘지 않다”고 치더라도, 너무나도 터무니 없는 그 ‘다른 시각에서의 평가’에 관해 이야기한다. “연설장에 가면 내 순서 전에 연설하고 있는 남자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늘 메세지를 쾅쾅 치며 세게 전달하고, 우리가 이번 선거에서 꼭 이겨야만 한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른다. 나도 똑같이 그렇게 하고 싶다. 나도 팔을 흔들어대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 사람들이 좀 많이 무서워할꺼라고 한다. 나는 너무 세게 소리 지르면 안 된다. “너무 시끄럽거나” “너무 까칠(shrill)하거나,” “너무 이렇게,” “너무 저렇게” 보일 수 있다고 한다.”

불리해, 클린턴! 당신은 비록 온갖 “팩트”와 “경험”을 다 갖췄지만, 폭스 뉴스 진행자를 발기시키지 못했어. 선거는 끝났어!

클린턴은, 대중 앞에 서는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어처구니없는 이중잣대에 대한 불평을 늘 조심스럽게 삼가왔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어차피 “그냥 사실이 그런 거니까”. 물론, 들들 볶거나 징징대는 여자보다 최악인 건 없지 않나. 안 그런가 남자들이여? 하지만, 적어도 이번 세대에서 가장 뛰어난 자격을 갖춘 대선 후보인 그녀가, 정치 경력이라고 해야 고작 리얼리티 예능에서 참가자들을 해고하는 것이 전부인 남자와 거의 엇비슷하게 겨루고 있는 이번 대선의 현 시점에서, 그녀에게 주어진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쉽게 간과되고 있는 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이야기할 수 밖에.

성차별에 관해 적어도 지금의 우리보단 더 발전된 의식을 갖길 간절히 바라는 우리의 미래 세대들이, ‘성차별이 비록 개개인에게는 득이 될 수 있어도 사회 전체에게는 해가 된다’는 점을 연구하려면 반드시 어제의 첫 대선후보 토론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오늘날의 완벽하게 대등한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각각 달리 밟아온 길을 유권자들의 눈으로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 말이다.

그들이 밟아왔던 길 뿐만이 아니다. 대선토론 후 폭스 뉴스(Fox News)의 브릿 흄 (Brit Hume)이 현자스럽게 했던 지적처럼, “많은 이들이 오늘밤 스크린에서 나란히 비춰졌던 둘의 얼굴과 표정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클린턴에게는 안 좋은 소식이겠지만, 흄은 클린턴이 “딱히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았다”고 공표했다. 불리해, 클린턴! 당신은 비록 온갖 “팩트”와 “경험”을 다 갖췄지만, 폭스 뉴스 진행자를 발기시키지 못했어. 선거는 끝났어! (흄은 트럼프가 얼마나 자신을 흥분시켰는지에 대해선 언급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다른 렌즈’ 뭐 그런 것 아니겠는가.)

서슴없이 상대 후보의 말을 자르고 큰 소리로 고함쳐대고, 허공에 연신 손가락을 찔러가며 이미 그녀가 했던 말들에 대한 증거가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결단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결사 부인하는 한 여성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들을 비교-대조하기 전에, 먼저 재미있는 게임을 시작해보자. 많은 사설 기고가들과 일부 평론가들은 트럼프의 상승세의 원인이, ‘세계화’나 ‘정치적 올바름’, ‘진보진영의 엘리트주’의나 ‘기타 그들이 갖다 붙이고 싶은 그 어떤 이유’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가피한 반발적 현상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이런 반발의 매개체가 트럼프가 아닌 경우를 상상해보자.  그가 여성이었다면 어땠을지 말이다. 어젯밤 그 연단에 서서, 서슴없이 상대 후보의 말을 자르고 큰 소리로 고함쳐대고, 허공에 연신 손가락을 찔러가며 이미 그녀가 했던 말들에 대한 증거가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결단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결사 부인하는 한 여성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정치경험이 전무한 여성이, 수 십년 동안 정계의 최선두에서 일해 온 후보보다 자신의 정치적 자질이 훨씬 더 뛰어나다고 우기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명제이다. 말 그대로 상상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사라 페일린(Sarah Palin)은, 후에 어떤 결함이 드러났을지는 몰라도, 실제로 성공적인 정치 경험이 있는 후보였다. 그녀는 또 부통령 후보로서 올라왔지, 각 정당의 대통령 예비 선거를 통해서 트럼프와 같은 자리에 올라온 것과는 매우 다른 경우였다.

대중의 분노는 진보진영의 실수를 바로잡는 것과는 완벽하게 무관하며, 오직 낡은 사회체계의 복구에만 관심 있다.

트럼프의 정치적 상승이 대중의 분노 때문이라고?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거대한 부를 빼놓고는 그 존재 자체를 논할 수 없는 백인 남성인 트럼프가 한 여성과 대결하고 있는 이 상황을 보면, 대중의 분노는 진보진영의 실수를 바로잡는 것과는 완벽하게 무관하며, 오직 낡은 사회체계의 복구에만 관심 있다는 점이 도리어 명확해진다.

지난 밤 트럼프의 대선후보로서의 자질 충족 기준은 클린턴과 현저하게 비교될 정도로 매우 낮았다. 그는 실로 엄청난 특권을 타고 나서, 1978년 부친으로부터 100만불을 증여 받은 사실에 대해서도 그저 “푼돈을 꿨다”고 일축할 수 있는 남성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는 또 클린턴과 그녀의 가족에 대해 “아주 심하게 거친 말”을 하려고 했으나 결국 하지 않은 자기 자신을 공개적으로 자축하기도 했다. 누가 봐도 클린턴의 남편의 부정 의혹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트럼프 본인이 토론 후 무대 뒤에서도 인증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가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이 우리에게는 마치 그의 자제력이 이뤄낸 기적과도 같이 느껴졌다. 왜냐하면 트럼프는 이미 작년에 “힐러리 클린턴은 자기 남편도 만족시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자기가 미국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라는 내용의 트윗을 리트윗(*트위터에서 다른 사람이 작성한 내용을 자기 계정에서 그대로 전달, 확산하는 것)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대선 토론이 있기 전 주말에, 빌 클린턴과 과거 교제 의혹이 있는 여성 한 명을 대선토론 장소로 대령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행동에 옮겼으며, 그의 선거대책위원회는 황급히 그 이야기를 종식시켜야 했다.

반면에 클린턴은 대선토론에서 정치인으로서의 평가를 받았고 따라서 트럼프와 달리, 테스토스테론 크림의 부작용으로 “자신의 몸에는 호랑이의 피가 끓고 있다”며 오버하던 남성배우 찰리 쉰(Charlie Sheen)처럼 막 나갈 수 없었다. 클린턴이 “너무 이렇게” 혹은 “너무 저렇게” 보이지 않으면서도 트럼프의 어이없음에 대처한 방법은 일명 “눈빛으로 경멸하기” 작전이었다.

클린턴 지지자 중 일부는 트럼프의 발언 중 특히 더 정신나간 발언들을 그녀가 전부 공격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일례로 “트럼프는 연방 소득세를 하나도 내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는 말에 대해 (자신이) 소득세를 내지 않은 것은 “똑똑한” 처사라고 말했을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클린턴은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지지자에게 어필하기보다, 그런 공격이 “너무 까칠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중립층의 지지를 얻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녀는 현명하게도, 트럼프가 자기 자신의 말로 자폭하게 내버려두고, 카메라를 향해 눈빛을 보내거나 “사실 확인단(fact-checkers)”에게 진실 규명을 슬쩍 권하는 것에서 멈췄다. 트럼프가 미드 <오피스>에서 늘 어이없는 언행을 일삼는 상사 데이비드 브렌트(David Brent)였다면, 클린턴은, 그 브렌트가 예의 터무니없음을 과시하는 동안 말없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직원 팀(Tim)이었다. 말이 필요없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단, 트럼프가 본인이 “흠잡을 데 없는 성정(winning temperament)”을 갖췄다고 울부짖을 때, 힐러리는 그날 밤 유일하게 스스로에게 ‘기쁨의 몸짓’을 허락했는데, 과연 누가 그녀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트럼프가 여전히 이 대선에서 진짜로 이길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는 여자가 아닌 남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클린턴 지지자들마저도  그녀가 “너무 잰 채”했다, “너무 뻣뻣했다,” 또 그밖에 사람들이 “여자 치고 너무 똑똑한 게 티가 난다”라는 말을 하고 싶을 때 하는 말로 이미 그녀를 비판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중립적이라는 NBC방송국의 척 토드(Chuck Todd)는 실제로 클린턴이 “너무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았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아무도 “너무 일 잘하는” 여자는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겠지, 남자들이여.

“그녀는 영락없이 싸가지없는 내 아내/엄마같다”고 투덜댄 한 공화당 국회의원의 발언은, 클린턴에게 성차별적인 사람들은 사실, 그저 여자를 증오하는 것이란 사실을 편리하게 상기시켜주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클린턴이 직면한 진짜 문제의 표면일 뿐이다. 이번 대선토론에서 클린턴이 트럼프를 상대로 압승을 거뒀다는 것은 널리 인정받고 있는 사실이며, 설사 클린턴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그녀가 명백하게 우월한 대선후보이고 트럼프는 걸어다니는 거짓말보따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부인할 여지가 없다. 이 두 사람이 지금 미국에게 주어진 두 개의 선택지이다. 그런데도 트럼프가 여전히 이 대선에서 진짜로 이길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는 여자가 아닌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건 나쁜 게 맞고, 이 또한 그냥 사실일 뿐이다.

※ 사라 페일린의 대선 출마 기록을 반영하는 부분이 9월 27일 이 기사에 추가되었습니다.

원제: Imagine if Donald Trump were a woman. You simply can’t @ The Guardian
원문 게재일: 2016년 9월 27일
원저자: 헤들리 프리먼 (Hadley Freeman)
번역: Jamie
편집: Miro
이미지:  FULL: Donald Trump vs Hillary Clinton – First Presidential Debate 2016 – Hofstra University NY by RBC Network Broadca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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