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히트 중인 영화 『겨울왕국』(일본어 제목 『안나와 눈의 여왕(アナと雪の女王)』), 보셨나요? 저는 처음에 디즈니의 여타 공주 스토리들과 다름 없는 스토리일 줄 알았는데, 꽤 신선했어요. 두 명의 주인공인 공주(엘사여왕과 안나공주)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력으로 일을 해내가는 이야기더라고요. 왕자님도 단골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나라와 공주를 구하는 것은 왕자가 아니라 두 명의 공주들이었습니다.

‘공주님’이라고 하면, 부조리한 괴롭힘이나 불행을 오로지 견디다가 왕자님이 구해주길 기다리는 모습이 일반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나는 자유, 있는 그대로가 좋아”라고 노래하는 엘사의 모습은 상당히 신선하게 느껴졌던 거죠. 또 보통은 마녀와 의붓어머니에게 할당되어 왔던 공주를 속여 위험에 빠뜨리는 악역을 이 영화에서는 왕자가 맡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관례를 따르지 않고 있지만, 권력을 탐하여 상대를 계략에 걸리게 하거나 싸우는 모습은 (기존 영화들에서)통상 남성이었으니까 기존 영화들과 마찬가지라고 이해하는 편이 오히려 납득이 가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디즈니 최초의 여성 감독 작품이라고 하는데요. 영화가 단지 오락, 판타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까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이러한 이야기를 접하고 자라왔다면, 세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이 영화가 ‘공주님 이야기’로서 한 가지 더 신선한 점은, 공주와 왕자의 연애담이 스토리의 중심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인연이 맺어졌으니 이제 해피엔드’라는 식의 진부한 엔딩 방식이 아닙니다. 안나는 왕자나 산에 사는 남성과 사랑에 빠지기는 하지만, 클라이맥스에서 안나와 엘사를 구하는 것은 남성의 키스가 아닌 언니 엘사와 동생 안나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매애가 이성애 보다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상당히 획기적입니다.

소녀 만화, 소설, 영화, 그 외 여러 가지 여성(여자아이)을 대상으로 하는 엔터테인먼트는 거의 전부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여자아이 또는 여성이 남자아이 또는 남성을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문화가 지배적이었으니까요(정말이지 이런 것들에 질려서 BOYS LOVE(소년 간의 동성애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만화를 가리키는 말)가 유행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것도 일대일 간의 성애를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소중한 사랑은 그게 다가 아니야!”, “더 있다고!”라는 메시지는 마음을 울립니다.

실생활에서도 ‘결혼’이라고 하면, 여성이 이벤트의 주역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상식이죠. 결혼식에서 어떤 드레스를 입을 지, 신혼여행은 어디로 갈 지, 신혼집 인테리어는 어떻게 궁리할 지 등과 같은 결혼 정보는 오로지 여성을 향하고 있습니다. 한편 “결혼은 인생의 무덤” 따위와 같은 말은 한결같이 남성을 향해 쓰여져 왔죠. 결혼을 하면 남성에게는 처자식을 부양할 평생의 책임이 발생하고, 남성의 자유도, 로맨스도 없어진다는 의미로 말입니다.

하지만 사실 결혼은, 여성에게야말로 함정입니다. ‘가족’이라는 공간은 여남 간의 불평등이 현저한 곳이니까요. 이렇게 말하면, “아니야. DV(Domestic Violence, 가정폭력)가 끊이지 않는 불행한 결혼 생활도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결혼이 남녀 간의 불평등을 유발한다고는 할 수 없어.”라는 반론이 나올 것만 같습니다. “옛날 일본의 이에제도 1와 같이 여성이 집에 묶여 시아버지와 남편의 권력 아래 있었던 가부장제 가족에서는 남녀가 불평등했을 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여성이 스스로의 의사로 선택한 남성과 결혼하고, 부부가 협력해서 가정을 이루잖아. 남편이 돈을 벌고 아내가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느라 수입은 없다고 해도 서로가 합의 하에 행하고 있는 거니까, 불평등이라고는 할 수 없지!”라고 말입니다.  

정말 그런가요?

개개인의 아내, 남편의 의도와 상관없이 지금도 대부분의 가정에서 가사와 육아의 과반이 아내에게 떠맡겨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여성은 노동시장에서 이류, 삼류의 존재로 여겨져 남성 수준의 임금을 받기 어렵고, 그 결과 여성이 점점 더 가사노동을 맡게 되는 식이죠. 반대로 남성은 ‘아내’의 존재 덕분에 자녀의 뒷바라지나 자기 자신의 수발 조차 신경 쓸 필요 없이 노동시장에서 활약하게 됩니다. 아내가 일을 할 경우, 풀타임이든 파트타임이든 아내가 남편 보다 노동시간은 긴 것이 일반적인데, 돈을 더 많이 번 쪽은 압도적으로 남편 쪽입니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아내의 노동에는 ‘가사육아’라는 무상노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무상노동은 남편의 수발과 남편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의 뒷바라지를 가리키고요. 이처럼 아내가 하는 노동의 과반이 남편과 관계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부부 간의 경제력에 엄청난 격차가 있다는 게 정말 부조리한 일이죠(“그만큼 남편은 아내를 부양하고 있잖아.”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인과관계는 오히려 반대입니다. 아내/여성을 이류 이하의 노동력으로 깎아 내리는 사회 구조가, 남성에게 처자식을 부양할 수 있는 경제적 우위를 부여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무상노동은, 이혼이라는 사태에 직면했을 때 한층 더 부조리함을 드러냅니다. 이혼 시 부부 간의 공유재산은, 보유하고 있는 집이나 차, 저금 등으로 계산되고 분할됩니다. 그러나 수잔 몰러 오킨(Susan Moller Okin)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부부가 모을 수 있었던 월등히 중요한 자산은, 결혼 생활을 하며 아내가 가사와 육아를 전적으로 담당해준 덕분에 남편이 일에 열중하며 획득할 수 있었던 것, 즉 부부가 함께 남편 측에 투자한 덕분에 형성된 남편의 커리어 자원, 인적 자본입니다. 그러나 이혼을 하게 되면 남편의 커리어와 인적 자본이 오로지 남편에게만 남게 될 뿐만 아니라, 아내가 스스로의 커리어에 대한 투자를 희생했다는 점이 비가시화 된다는 것이죠. 그것이 얼마나 부정하고 불평등한가에 대해 오킨은 예리하게 지적합니다. 

오킨은 이혼을 할 경우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만, 이혼에 이르지 않더라도 거의 모든 결혼 제도와 가족 제도는 이 부정(不定)·불평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갖지 않는 ‘커리어 우먼’의 인생을 보내고 있는 여성도, 노동시장에서는 두 명 분(결혼한 남성이 아내의 노동으로 투자를 받고 있다는 의미-역자 주)의 노동 투자를 받고 있는 남성과 경쟁하고 있는 셈이므로 당연히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 시장에서 ‘착실한’ 노동력으로 남기 위해서는 이렇게 불공정하고 비인간적인 싸움을 계속해야만 한다니, 괘씸할 정도의 부정의(不正義)가 아닌가요?

현대의 가족의 모습이 이전의 가부장제에서 진보하여 여남 간 평등을 이루었다고 보는 것은 당치도 않은 착각입니다. 현대의 일부일처제 가족은 변함 없이 남성을 우위에 두고 있지만, 이것이 다만 그렇게는 보이지 않는 잘 만들어진 가부장제 하에 작동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여성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가족 내에서의 불평등을 당하지 않도록 여성은 아이를 낳지 말자”, “어쨌든 커리어를 쌓는 데 주력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인류 사회는 순식간에 멸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전에 ‘육아’나 ‘가사’라는 힘든 일에도 불구하고 기쁨을 주는 면도 있는,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삶의 영위를 잃고 싶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제안하고 싶은 것은 가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불평등한 가족의 형태에 얽매이는 것은 이제 그만두자는 것입니다. ‘가족’이라고 하면, 좋아하는 남성과 만나 연애하고, 섹스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함께 사는 식으로 순서가 정해져 있는 듯합니다만, 왜 그와 같은 형태이어야만 할까요? 남성과의 연애도 좋고, 아이를 낳고도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연애와 섹스, 그리고 그 남성과 가족을 이루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꼭 세트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긴 인생, 아이를 기르거나 돌봄이 필요한 기간에 ‘사랑하는 남성과 함께 사는 것’만 존재하는 삶 보다 그렇지 않은 편이 더 편하고 즐겁지 않을까요?

생각해 봅시다. 부부라는 여남 한 쌍과 아이로 이루어진 가족은, 여성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육아를 하게 만드는 형태입니다. 왜냐하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과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어른 둘이서만 지어야 하기 때문에, 현대 사회의 경제 구조 안에서는 오직 남편이 밖에서 돈을 벌고 아내는 가사와 육아를 떠맡는 형태가 “합리적”인 일이 되어 버리니까요. 하지만 아이가 있어도, 함께 협력해서 키울 수 있는 동료가 있다면 그런 일은 없습니다. 육아에 혼자서 전념할 필요가 없으므로 경제력을 빼앗기고 누군가에게 부양을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실제로 어떤 문화, 어떤 시대에서건 사람들은 혈연과 지연의 공동체 안에서 부모와 방계(傍系)의 친족, 혈연관계가 없는 일꾼들과 함께 노동을 하며 아이를 키웠고, 생활을 영위해왔습니다. 거기에서 여성은 혼자서 가사와 육아의 책임을 지고 취약한 존재가 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산업화·도시화가 진전되며 가족을 둘러싼 대변동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그와 같은 공동체의 굴레를 벗어나 자유로이 스스로 선택한 이성과 결혼하고 가족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여성에게 있어서 이것은 가사와 육아의 유일한 담당자가 되는 길이자, 남편인 남성에게 봉사하는 존재로서 스스로를 몰아넣는 일이었습니다만, 오히려 여성이 로맨틱한 연애를 동경하며 결혼 생활로 뛰어들어갔으니, 그 아이러니에 한숨이 나옵니다. 문학이나 예술이 연애를 아름다운 것, 굉장한 것으로 열심히 그리게 된 것은 근대 이후입니다만, 그것은 여성을 연애와 결혼에 뛰어들게 만든 장치이었습니다. 그 장치가 지금도 도처에서 계속 기능하고 있다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누구라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라도 『안나와 눈의 여왕』에서 안나가 연애는 하지만(간단히 사랑에 빠져 기뻐 어쩔 줄 모릅니다(웃음)), 남자와의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것으로 해피엔드를 그리지 않는 것은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왕자와 한 번 결혼할 뻔하지만, 그때도 안나가 왕자에게 자신의 성으로 이사올 것을 제안하는 부분 역시 눈 여겨 볼만한 대목이죠.

여남 간의 연애나 성적 관계가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성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성애의 인연으로 맺어진 남성과 남편뿐이며, 결혼과 혈연 관계인 부모 이외의 인간관계는 믿을 수가 없다.”라는 식의, 가족을 둘러싼 “상식”이 여성을 취약하게 만들고, 여성 자신이 그 관계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지 않나요? 그렇지 않은 다른 형태의 인간 관계, 정말 여남 간의 평등이 실현될 수 있는 ‘가족’은 어떻게 하면 가능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지금부터 회를 거듭해가며 논하겠지만, 안나와 엘사가 알려준 여성 동지 간 인연의 소중함에 대해 실은 많은 여성들이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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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수잔 몰러 오킨(Susan Moller Okin), 『가족·젠더·정의』, 이와나미 서점, 2013

현대 페미니즘 이론의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책입니다. 1989년 원작 간행 이래, 애타게 기다렸던 번역서가 나왔습니다. 롤즈의 『정의론』(1971) 이후, 샌델(Michael Sandel), 왈쩌(Michael Walzer) 등 많은 학자에 의해 “공정한 사회란 어떠한 사회인가”. “어떠한 절차를 통해 정의는 실현될 수 있을까”와 같이 정의에 관해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어 왔습니다만, ‘가족’이라는 영역에서의 정의에 대해서는 누구도 묻지 않아 왔습니다. “사랑의 영역이므로 정의나 평등의 기준은 통용시킬 필요가 없다”거나, 단순히 무시되고 있었거나,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가족 안에는 자원 분배의 불평등, 노동 분담의 불평등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것을 방치한 채 사회의 정의가 정말 실현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오킨은 지금까지의 정의에 대한 모든 이론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그 이치를 파고들어 통쾌하고도 자극적으로 가족이야말로 정의의 근원이어야 한다고 논합니다.

원제: むちゃセンセーのフェミニズム<今さら>再入門 第3回  家族って男女平等?@LOVEPEACECLUB
원문 게재일: 2014년5월 22일
최종 수정일: 2016년9월 30일
원저자: 무타 가즈에(牟田和恵)
번역:  지은
편집: 미로

Notes:

  1. 家制度, 1898년에 제정된 민법에 따른 일본의 가족제도를 가리키며, 호주에게 가족의 통솔 권한을 부여했던 제도로 에도시대에 발행한 무사계급의 가부장적인 가족제도를 토대로 하고 있다-역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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