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병역을 거부했습니다. 1년 6개월의 징역을 선고받아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입니다. 남자라면 다녀와야 할 군대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남북 대치 상황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당연한 것들을 거부했습니다. 그 이유에는 제게 주어지는 남성성에 대한 의문이 있었고, 지금의 국가가 제게 가르치는 평화에 대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여전히 모호하지만 하나만은 확실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일단 제 몸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평화’와 ‘남성성’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저는 감옥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가 보고 겪은 이야기를 좀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감옥에서 필요한 것: 돈, 그리고 힘

감옥에서는 방 하나에 많은 인원이 좁게 살아야 합니다. 아무래도 ‘혐오시설’이라 그런지, 수감자에 비해 감옥의 방은 적고 좁습니다. 너무 좁아서 종종 누울 곳이 모자라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경우도 많고, 서로 겨드랑이에 다리를 집어넣고 엇갈려서 자는 일도 익숙합니다. 서로 낯선 사람들끼리 좁은 공간에서 갇혀 모든 생활을 함께 해야 합니다. 수감자들끼리 서로 경계심이 많습니다. 일단 낯선 사람에다가 죄를 짓고 들어왔으니 ‘나에게 저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은 생활을 해야 하니 방에 생활 규칙이 필요합니다. 화장실 쓰는 순서, 잠자리 위치, 청소·설거지 당번, 각자 짐을 보관할 공간, 식사 당번, 이런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공평하게 나누라고 방에 붙어 있는 ‘수용자 생활 안내문’에 붙어 있지만, 지키는 사람은 잘 없습니다. 생활은 늘 열악하고 불편합니다. 서로 양보하고 대화하며 정하면 좋으련만 사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환경을 차지하기 위한 힘겨루기가 생겨납니다.

이곳에서 주로 힘겨루기에 사용되는 것은 두 가지 입니다. 돈(영치금)과 남성적(육체적) 강함입니다. 감옥에서 지급하는 물품만으로는 생활하기가 빠듯합니다. 그래서 영치금으로 먹거리나 생활용품을 구입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무일푼인 사람이 많습니다. 부득이하게 신세질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런 점을 이용하여 돈으로 필요한 물품을 사주는 대신 자기 원하는 대로 사람을 부리고자 하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자신의 ‘강함’을 입증하기 위해 드러내는 과시적 남성성

반면에 돈이 풍족하지 않을 경우, 살아남기 위한 힘겨루기에 사용되는 것은 남성적인 강함입니다. 험악해 보이는 문신을 하거나, 근육질이나 큰 덩치의 몸을 자랑하기 위해 걸핏하면 상체를 벗어제낍니다. 자기가 얼마나 힘이 쎈지 과시하는 것입니다. ‘나한테 맞으면 큰일 난다.’ 무언의 압박을 줍니다. 거친 말투, 욕설도 빠지지 않습니다. 자기가 몇 번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는지, 누구와 싸워 이겼는지, 어떤 험악한 일들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무용담을 잔뜩 늘어놓습니다.

여기서 또 빠지지 않는 것은 자신의 성적 능력에 대한 화려한(?) 이야기들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많은 이성과 성관계를 맺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만족했는지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게다가 듣고 있으면 강제로 벌어진듯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진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두가 애써 스스로 폭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밀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대개는 돈이 많은 사람이 방에서 제일 폭력적으로 보이는 사람과 결탁하여 방에서 권력을 잡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방에서 필요한 물품과 먹거리를 사면서 돈이 많음을 과시하고, 다른 폭력적인 사람은 군기를 잡습니다. 조폭 영화에서나 볼법한 보스와 행동대장의 모습입니다. 방에서 권력을 잡은 사람은 방에서 좋은 환경을 다 차지하고 생활규칙도 자기들 편한대로 정합니다. 이것에 따르지 않기란 어렵습니다. 생활규칙뿐 아니라, 심하게는 개인의 생활까지도 간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사건건 간섭하고 트집잡으려고 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전염되는 폭력적 남성성

이곳의 남성 수감자들은, 좋은 환경에서 살기위한 힘겨루기를 넘어,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바깥에서야 마주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갇혀 있는 공간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경우 저항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은 없습니다. 눈앞에 끊임없이 폭력성을 과시하는 사람이 있을 때, 타인에 대한 경계와 혐오의 마음이 수감자들 마음 속 깊이 새겨집니다. 남들에게 과시할거리가 마땅치 않은 사람은 여러모로 고달픕니다. 잠자리도 화장실 근처 제일 끄트머리로 밀려나고, 화장실 청소나 설거지 같은 번거로운 일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괜한 짜증과 화풀이의 대상이 됩니다. 직접적인 폭력은 잘 발생하지 않지만 정신적으로 상당히 상처를 받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나이도 어린 편에, 수감 생활 분위기도 잘 몰랐기 때문에 이래저래 많이 당했습니다. 돈도 마땅치 않거니와 과시할만한 힘도 마땅찮았습니다. 화장실 청소나 설거지 같은 자질구레한 일은 늘 제 담당이었고, 잠자리나 일상생활 공간은 화장실 근처였습니다. 일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으나,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은 견디기 쉽지 않았습니다. 적응하고 제 나름의 힘겨루기 방식을 습득하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럼 그런 수감자들을 관리하는 교도관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실 수 있겠습니다. 교도관들은 대개 방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은 적당히 알아서 해결하길 바랍니다. 직접적인 폭력이 벌어지지 않으면 나서지 않습니다. 알아서 해결해야 합니다. 게다가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달려가서 이야기하면 수감자들 사이에서 미움 받기 십상입니다. 남자답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대개는 이기지 못하면 참고 지냅니다.

이러한 과시적, 폭력적 남성성에서 저 또한 자유롭지 않습니다. 저는 제게 오는 편지들을 으레 많아 보이게 쌓아놓고 사람들에게 자랑하기도 했고, 시위에서 경찰과 맞붙은 이야기도 무용담처럼 늘어놓곤 했습니다. 죄 짓고 들어온 당신들과 달리 나는 국가에 맞서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이런 요령이 생겨 비교적 다른 사람에게 당하지 않으며 지낼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는 내내 좀 찜찜한 마음이 듭니다.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라고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남성성의 과시라고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2)편에서 이어집니다.

글쓴이 박유호님은 현재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이유로 여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며 이 글을 통해 노동당 여성위원회가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 당원들과 함께 시작한 ‘남성성들: 남성 페미니스트 글쓰기 연재’에 참여합니다. ‘남성성들: 남성 페미니스트 글쓰기 연재’는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 노동당원들이, 노동당 여성위원회와 시작한 글쓰기 시리즈입니다. 여기에서 ‘남성성’이란 R.W.코넬의 저작 『남성성/들』에서 인용한 것으로, 하나의 ‘남성성’이 존재한다기보다 만들어지고, 수행되는 개념으로서 한국사회의 남성성이 어떻게 실천되고 유지되는가를 성찰적으로 나누기 위한 개념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기획: 윤영 (노동당 여성위원회 조직국장)
편집: 김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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