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기술의 발전으로 게임 세상은 진보했지만 여성은 오프라인에서 대면하는 물리적인 위협을 온라인에서도 직면하게 되었다.

조던 벨라미어(Jordan Belamire: 유저 연구자이자 작가)는 눈으로 뒤덮인 요새를 성큼성큼 누비며 화살로 좀비들을 쏘아죽이는 자신이 마치 신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빅브로442(BigBro442)라는 유저가 나타나 ‘가상으로 그의 가슴을 문지른’ 순간, 그는 신이 아닌 ‘무력한 여성’이 되어 있었다.

“돌아서서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계속 따라다니며 내 가슴 가까이에 손을 대고 움켜쥐거나 꼬집는 동작을 했다.”

“그러다 더욱 대담해져서는 내 가상의 사타구니 쪽으로 손을 쑤셔넣고 문지르기 시작하더라.”

이는 조던이 가상현실 게임인 퀴브이알(QuiVR)을 하면서 겪었던 일에 대한 게시글의 한 부분이다.

성희롱은 인터넷 초창기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와 게임 커뮤니티의 한 부분이었다. 다만 지금까지는 대략 언어적, 시각적인 폭력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상현실 기술이 더욱 고도화된 지금, 실제의 몸과 디지털 세계 속 몸 사이의 경계는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현실세계만큼이나 여성에게 위협적인 가상현실세계를 마주하고 있다.

가상세계에서의 폭력이 물리적인 폭력만큼 진짜같이 느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체 접촉은 없었지만’

20년도 전에 줄리안 디벨은 람다무(LambdaMOO)라는 텍스트 기반 온라인 다중유저 역할극 커뮤니티에서 벌어진 ‘강간사건과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해 기록했다. 커뮤니티 내의 유저 하나가 운영시스템을 강탈해서 다른 유저들의 아바타들로 하여금 성행위를 하게 하는 글을 쓴 것이다.

다음은 디벨이 사건과 관련해서 뉴욕시 주간지인 빌리지 보이스(Village Voice)에 쓴 기사 일부분이다. 1

‘신체 접촉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이 겪은 폭력은 허상이 아니었다.: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눈물이 그의 얼굴을 타고 흘렀다. 이는 언어 속에 담긴 감정들이 단순한 소꿉놀이가 아니었음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실제 사실이다.”

“자신의 아바타에 깊이 이입하고 있고, 아바타를 진정한 태도로 구축했다면 실제로 강간당한 느낌이 들 겁니다.” 가상 현실 속의 사회적 의미를 연구하는 오하이오 주립대학 교수 제시 폭스는 말했다. “누군가로부터 업무용 이메일로 성희롱이 담긴 편지를 받거나 채팅방에서 성희롱을 당했을 때도 다르지 않을 거예요.”

폭스는 가상현실이 새로운 차원에서의 폭력을 가능하게 한다고 경고한다.

“가상의 환경이 현실과 다른 점은 몸 담고 있는 차원이 한 꺼풀 더 추가된다는 것 뿐이죠. 현실 세계에서의  추행이나 가상현실에서의 추행이나 시각적 자극은 똑같습니다. 현실과 가상에서 모두 그 상황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죠. 가상에서도 자신의 몸에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런 생생한 경험들이 층층이 겹쳐지면 그 순간에는 더욱 충격적일 거예요.”

또한 폭스는 가상현실에서의 추행과 성희롱은 유저로 하여금 가상현실에 대한 몰입을 파괴하는 이차충격을 가한다고 말한다.

벨라미어에게 가상현실에서의 추행은 그가 이미 두 번이나 현실에서 겪었던 실제 성추행과 같았다. 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심리적인 충격은 같았다고 봐요. 내가 현실세계에서의  성추행에서 받은 충격과 처음으로 가상현실에서 성추행당했을 때의 충격은 같았어요. 도대체 뭐하는 인간이길래 이따위 짓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의심스럽고, 그런 일이 나 자신에게 일어났다는 것이 역겨웠죠.”

VR기기 사용자가 다른 사용자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은  온갖 복잡한 윤리적, 법률적 문제와 관련이 있다. 오랫동안 비디오 게임 관련 법에 대한 이슈들의 연대기를 정리해온 변호사 마크 메티니티스(Mark Methenitis)는 아직 우리 사회가 가상현실에서의 폭행을 범죄로 간주할 수 있는 단계에 미치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폭행이나 강간에 관련된 법령들은 거의 다 일종의 신체적인 접촉을 요건으로 해요. VR기기가 사용자에게 감각을 느끼게 해줄 수 있다는 건 저도 인정하지만, 그걸 실제로 발생하는 폭행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지는 어려운 문제지요.”

“사람들이 진짜로 매트릭스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러니까 정말로 뇌에 직접적인 연결을 통해 감각을 느끼는 시점에 다다르고나서야 가상현실이 예전보다 훨씬 진짜 같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그 시점은 기술의 세계에 달려 있고요.”

가령 캐릭터가 발로 차이거나 맞으면 타격감을 느끼게 하는 조끼와 같이, 현재 촉각 기술을 이용한 실험적 성과들을 감안할 때, 생각한 것보다 이 ‘기술의 세계’가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회사들이 손으로 만지고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고 있지요. 그것이 여성이 가상으로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폭행당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인다는 사실은 오싹함을 뛰어넘는 오싹함을 느끼게 합니다.”  라고 폭스는 말했다.

가상의 방어법

이처럼 가상현실세계는 현실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악행에 취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해결방법을 안고 있기도 하다. 가령 가상의 방패나 초능력처럼 말이다.

QuiVR의 개발자 애런 스탠튼(Aaron Stanton)과 조나단 솅커(Jonathan Schenker)는 벨라미어가 당했던 성희롱에 대해 듣고 나서 게임 명령어에 ‘개인 영역’ 확대하기 2를 추가했다. 스탠튼과 솅커는 해당 기능이 이후 성추행을 방지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그가 느꼈을 짜증과 실망스러움을 나도 느꼈습니다. 그의 입장에 서서 그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 감정들이 남아서 줄곧 떠나질 않았어요.” 개발자 스탠튼의 말이다.

스탠튼과 솅커는 가상현실 속 성희롱의 심리적 충격에 대응할 방법들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다른 디지털 매체들과 달리 가상현실게임은 플레이어가 게임에 제어의 큰 부분을 넘겨주는 형식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개발자는 유저들에게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는 데에 막대한 책임감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두 사람은 ‘파워 제스처’(권력 동작), 즉 플레이어가 게임 속에서 초능력처럼 개인 영역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몸 동작을 고안해냈다.

“권력을 되찾는 행동이죠.힘이 되돌아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통해 자신을 지킬 힘을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이에요.” 스탠튼은 설명했다.

두 사람은 이 동작의 명령어를 오픈소스로 제공할 계획이다. 또한 다른 게임의 개발자들도 이 동작을 게임에 적용시키도록 권유하고 있다. 그들은 동종업계 사이트인 업로드VR(UploadVR)에 VR계의 공통적인 응급신호(‘911’)로써 파워제스쳐 사용을 건의했다. 지금까지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이 아이디어가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혁신적이고 강력하네요.”  벨라미어는 말했다. “누가 나한테 너무 가깝게 다가오나요? 추행범을 내 세상에서 파지직하고 없애버릴 수 있어요.”  

 

원제: Sexual harassment in virtual reality feels all too real – ‘it’s creepy beyond creepy’  @ the guardian
원저자: Julia Carrie Wong
원문 게재일: 2016년 10월 26일
번역 및 요약: 김하영
편집: 지은

 

Notes:

  1. 당시 람다무 커뮤니티의 일원이었던 디벨이 람다무라는 커뮤니티에 대한 설명과 함께 강간 사건이 구성원들에게 미친 부정적 파장,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대응을 둘러싼 복잡한 논의를 기록하고 있는 1993년 기사
  2. ‘개인 영역’은, 게임 상 다른 유저가 방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기능으로, 유저의 아바타 주위에 마치 벽이 생긴 것처럼 일정 거리 내의 접촉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QuiVR에서도 유효한 기능이지만, 개발 당시에는 시야 확보를 위해 머리 부위에만 적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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