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챠센세칼럼: 페미니즘 이제 와서 재입문]⑥ 어떻게 하면 ‘평등’해질까?ㅡ적극적 차별 시정책(Positive Action)의 의미

최근, ‘이건 뭐지?’ 싶은 발언이나 사건들을 계속해서 목격하고 있습니다.

6월에 있었던 도쿄도 의회에서의 성희롱 문제 해결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고, 7월에는 경찰이 로쿠데나시코 씨를 부당하게 체포(5회에서 다루었던 내용)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가사노동학대’ 문제도 7월 말에 있었던 일입니다. 다케노부 미에코(竹信三恵子) 씨가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 노동인, 가사노동이 멸시·경시되는 상황을 ‘가사 노동 학대(harassment)’라 명명하며 문제 제기를 한 바 있습니다만(『가사노동학대』, 이와나미신서), 이에 대해 한 주택 브랜드가 남편이 가사를 ‘도와주는’ 일에 대해 아내가 ‘꼬투리를 잡는’ 행위가 ‘가사노동학대’라며 방향이 매우 빗나간 왜곡을 해서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다루어졌었죠.

8월에는 미에현(県)의 지역경제단체대표자회의(미에여성활약추진연대회의, 8월4일)에서, 어업 협동조합 연합회의 회장이 아래와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여자가 아래,’ 혹은 ‘여자인 주제에’라는 개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여자를 주요 직책에 두는 일이 과연 도움이 될까 의심스럽다.”

여성의 참획(參劃)을 도모하기 위한 공식 회의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대체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싶어 힘이 빠집니다.

이 칼럼의 테마 중 하나는 ‘여남평등’의 거짓말이나 착각을 폭로하는 것입니다. 그 착각 중에서도 으뜸가는 것은, ‘일본에서는 헌법으로 남녀평등을 정하고 있다,’ 그리고 ‘국제조약에도 남녀평등 규정이 있다’라는 이유로 마치 여남평등이 실현된 듯이 생각해버리고 마는 일입니다. 여성차별에 대해 논할 때마다, 학생들로부터 “하지만 일본은 남녀가 평등하다고 헌법에도 나와 있어요.”라는 반론을 얼마나 많이 들어왔는지 모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거나 ‘여남이 평등’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달성할 수 있을지, 이를 저해하는 것은 대체 무엇인지, 애초 ‘평등’이라 함은 무엇인지, 페미니즘의 발상 이래 여성들은 생각했고, 싸워 왔습니다. 특히 현대 페미니즘은 ‘평등’을 형식·명분만으로 끝내지 않고 얼마나 실효성을 갖게 할 수 있을 지에 대해 고심해왔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적극적 차별 시정책(Positive Action)’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여자는 아래’라는 발언을 한 미에현의 회장은 이틀 후 발언 시간의 제한으로 인해 진의가 전달되지 않았다며, 다음과 같은 해명을 했습니다.

“이렇듯 현재 사회 환경은 여성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정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여성이 활약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하기 위해 협의를 계속해 나가고 싶습니다.”

시간이 없으면 진의부터 말하세요. 그리고 ‘앞으로 환경을 정비하기 위해 협의를 계속해 나가고 싶다’정도의 발언이라면, 너무 당연해서 낭비라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그것보다는 회의 당일에 했던 ‘여자를 주요 직책에 두면 과연 쓸모가 있을까’라는 발언이야말로, 회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이 발언자가 체험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 틀림 없습니다. 해명을 하려면 반드시 이 지점부터 시작했어야 합니다. 해명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어떠한 행동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었어야 합니다.

아마 이 회장은 지금까지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여성이 책임 있는 위치 혹은 결정권을 가진 위치에 있었던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외 회의에 참가했던 다수의 단체, 중요한 장이나 조직에서도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실력을 발휘하는 장면을 본 적이 없었겠죠.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여자가 할 수 있을 리 없어’라거나, ‘여자에게는 무리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고요. ‘여자인 주제에,’ 혹은 ‘여자는 아래’와 같은 표현이 부적절하다고는 느끼면서도, ‘여자가 할 수 있을 리 없어’라는 대목에서는 내심 수긍한 참가자도 많지 않을까요?

이와 같이 ‘실적이 없으니 당연히 무리지’라는 사고 방식은, 이 회의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여성이 수장이 될 리가 없어,’ 혹은 ‘여성이 사장이나 중역이 될 수 있을 리 없어, 왜냐하면 지금까지 누구도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와 같은 사고 방식에 기대어, ‘그러니까 어쩔 수 없어’라 하거나 ‘아무리 남녀공동참획을 위해 노력해도 실력이 증명되지 않는데 여성을 책임 있는 위치에 두는 것은 위험하고도 잘못된 평등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세상을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한, 여성과 소수자의 의사 결정에 대한 참여는 언제까지고 가능해질 리 없습니다. 그 악순환을 끊기 위해 고안된 것이 Positive Action, 즉 ‘적극적 차별 시정책’입니다.

그 시초는 북유럽이었습니다. 20세기 초, 노르웨이와 스웨덴 등의 북유럽 국가에서는 여성에게도 선거권이 부여되어 정치적 여남평등이 실현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 정치인 수는 좀처럼 늘지 않았고, 정치라는 장에서의 여남평등은 실질적으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여성 정치인 수를 늘릴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들을 해왔지만, 그다지 효과는 거두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현실을 바꾸기에 불충분하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사태를 확실히 진전시키기 위한 몇 가지 구체적 대책을 강구할 필요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고 방식이 반영된 것이 ‘Positive Action’이며, 그 후 경제나 교육 분야에 있어서도 쿼터제(할당제)와 같이 더 강력한 제도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방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당에 비례대표제의 후보자 수를 여남 동수로 세우도록(게다가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 순위를 남성만 차지하지 않도록 여남을 번갈아 순위에 위치 시키도록) 요구하고, 지키지 않으면 정당 교부금이 없도록 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성이 적어도 3-40%를 차지할 수 있도록 의원 정수를 정하고, 궁극적으로는 여남 수 반반으로 정하는 것(프랑스의 Parité, 여남동수) 등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경제 면에서의 적극적 차별 시정책은, 자치체나 국가로부터 일을 수주하는 기업이(즉 국/시민의 세금으로 장사를 하는 경우) 관리직의 여성 비율을 일정 수 이상 늘리지 않을 경우 수주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등의 방식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들을 택함으로써 여성의 비율이 높아져 가는 것이지요.

이쯤에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여성의 수는 증가해도, 국회의원이나 관리직이 될 자격이 없는, 즉 능력이 낮은 여성이 늘어날 뿐 아닌가?
그러면 문제가 있지. 그건 진정한 평등(悪平等, 악평등)이 아니야.”

이것은 적극적 차별 시정책에 대한 전형적인 비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현실을 모르는 형식론입니다. 실제로 적극적 차별 시정책을 제도화함으로써 여성의 잠재 능력을 발굴하고 개발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까지 ‘여성을 배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한 후보자가 없다’거나, ‘여성을 관리직으로 임명하려는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만큼 능력과 의욕을 가진 여성이 없다’라고 말만 하고 있던 정당이나 기업도 더 이상 그러한 방식으로는 통용되지 않을 테니, 여성의 능력 발굴을 위해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성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민 활동이나 아이의 교육에 관한 활동에서 활약하고 리더십과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여성이라도, 선거에 출마하라고 하면 ‘정치인이 된다니 생각해본 적도 없다’며 소극적으로 반응하기 쉽죠. 이 때 정당은 그 여성에게 정치의 세계에는 당신과 같은 사람의 힘이 매우 필요하다고 설득하고, 가족이 반대하고 있다면 가족 역시 설득할 것입니다. 또 관리직이 될 능력이 있어도 가족을 위해 전근을 갈 수 없는 경우라면, 기업이 관리직이 되는 데 정말로 전근 경험이 필요할 지를 검토하여 그 조건을 제거한 관리직을 늘림으로써 여성이 관리직을 맡기 쉽도록 할 것입니다.

이렇게 여성의 능력을 발굴하고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춤으로써, 여성은 의원이나 관리직으로서 활약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성들의 활약 자체가 ‘의원으로서, 혹은 관리직으로서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나갈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의원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닌, 유권자의 요망을 보다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의원의 자질로서 적합하다는 점, 그리고 중장년 층의 남성에게는 없었던 발상으로 회사의 비즈니스의 폭을 넓혀 나갈 수 있다는 점 등을 증명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본보기로 하여 보다 많은 여성들이 뒤를 잇는 선순환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정말로 성별에 관계없이 자질과 능력에 따라 여성과 남성이 함께 활약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었을 때, 적극적 차별 시정책은 불필요해지게 됩니다. 그것이 적극적 차별 시정책의 궁극적 목적이지요. 그러므로 적극적 차별 시정책은 ‘잠정적 차별 시정책’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미에현의 회의에서 있었던 문제 발언으로 돌아가봅시다. 발언자의 “앞으로 여성이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을 정비하기 위해 협의를 계속해 나가고 싶다”는 해명이 진의라면, 지금까지 계속 되어 왔던 단순한 의식 계몽에서 그칠 게 아니라 구체적·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적극적 차별 시정책을 실행해나가길 바랍니다. 즉 조직의 간부 중 일정 비율은 여성이 점하도록 정하는 것입니다. 가령 현재는 후보자가 전무해서 즉각 실행하는데 무리가 있다고 한다면(그럴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5년 후 또는 10년 후를 내다보는 구체적 계획을 세워 여성 간부 후보를 적극적으로 양성해나갈 것을 명확히 임무로 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노동 시간에 대한 융통성 있는 재고가 필요할 것이고, 술자리에서 중요한 일이 결정되는 관습을 배제하는 등 임무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여 신속히 실행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미에현의 발언자께서는 꼭 그러한 적극적인 노력과 실천에 따라 본인의 해명 발언이 진의라는 점을 증명하고, 다른 단체와 업계에도 파급력 있는 행동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유감스럽지만 일본에서는 아직 극히 제한적인 분야(자치제의 심의회 위원 등)를 제외하고는 적극적 차별 시정책이 제도화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세계적으로는 선거에 있어서 적극적 차별 시정책을 포함하여 어떠한 형태로든 쿼터제를 실시하고 있는 곳이 이미 100개국을 넘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아직 계획도, 구체적인 논의도 없는 상황입니다. 한심하지만 좀 위로가 되는 것은, 서두에 말씀 드린 ‘이건 뭐지?’ 싶은 일들은 모두, 큰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거 이상한데?’라고 느꼈다는 증거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적극적 차별 시정책의 실현도 그렇게 멀지 않은 일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들 적극적 차별 시정책의 지지자·목격자가 되어 주십시오.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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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노 야쓰시로(岡野八代), 『법의 정치학』, 2002, 青土社

岡野八代 『法の政治学』 2002年青土社

“법으로 ‘남녀평등’을 정하고 있다.”

이런 당연한 사실이 여성에게는 어떠한 의미일까요? 법으로 정해지기 이전, 즉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법적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던 시대와 비교하면, 여성에게 있어서 경사스러운 진보와 같이 생각될 터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저자 오카노는 버틀러(Judith P. Butler)와 코넬(Drucilla Cornell)과 같이 법의 탈구축 가능성을 탐구해온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의 영향을 받아 왔습니다. 그는 법이 ‘중립성’과 ‘객관성’을 갖는 규범으로 통용됨에 따라 여성이 그 규범 외에 존재하는 사람으로서 구축되어 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법의 효과와 법이 가진 힘에 착안합니다. 법에 따라 보장받는 여남 평등이란 것이 ‘여성/남성’, ‘공적 영역/사적 영역’과 같이 법이 전제하고 있는 이분법에 짜맞춰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지요. 이에 대한 비판과 탈구축이야말로 페미니즘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형식적이지 않고 실질적인 ‘여남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딴죽에 걸리는 일 없이 목표로 해 나가야만 하는 지평을 우리들에게 시사해주는 책입니다.

원제むちゃセンセーのフェミニズム<今さら>再入門 第6回 どうしたら平等?—積極的差別是正策(ポジティブ・アクション)の意味 @LOVEPEACECLUB
원문 게재일: 2014년 8월 29일
최종 수정일: 2016년 11월 15일
원저자: 무타 가즈에(牟田和恵)
번역:  지은
요약 및 편집: 김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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