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마리의 개미 중 일을 열심히 하는 상위 10마리를 모아서 군집을 만들면 모두가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기존 개미 사회와 같은 비율을 가진다는 이야기를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썰’이 유의미하거나 검증되었는지는 차치하고, 나는 이 것이 젠더에 적용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호기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젠더가 사회/문화적인 요소에 의해 형성된다면 하나의 생물학적 성만 존재하는 집단에서 사람들은 어떠한 젠더적 양상을 띄게 될까? 남성성이란 그곳에서 어떤 의미일까.

남성성과 여성성을 학습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쓴 글 중 하나에는 당시의 내 이상형에 관한 것이 있다. 예쁘고 똑똑하고 착하지만 나보다는 조금 부족할 것. 그 당시에는 ‘나보다 대단한 여성’ 자체를 납득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무엇이 나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어릴 적에 우리는 성별의 다름이 행동과 성격의 다름으로 이어진다고 배워왔고 거기서 벗어나는 사람들은 이상하고 알 수 없는 자들이 되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 조금 여성스러운 남학생은 괴상한 취급을 받으며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남녀공학이라서 더 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곤 한다. 근처의 이성을 대하는 게 미숙했던 어린 시절의 남학생들은, 좋아하는 아이를 괴롭힌다는 오랜 말처럼 주변 이성들에게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곤 했다. ‘남자애는 무시를 당해서는 안되며, 남자애는 이성의 이름을 성을 빼고 부르면 안되고, 남자애는….’ 이건 단순히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내의 구성원들이 자체적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교과서와 교사들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것들-‘남자는 어떻고 여자는 어떻다’-은 하나의 정체성이자 행동규범이 되어 크게 어기면 터부를 어긴 사람처럼 사회에서 배척되었다.

수직적 권력 위계를 통해 발현되는 젠더

고등학교 때는 조금 달랐다. 반삭이 의무고 체벌이 일상인 곳에서 교사들은 군대처럼 학생들을 대했지만, 학생들 간에는 도리어 남성성을 과시하거나 학우들의 젠더적 성질을 문제삼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중학교와는 달리 그곳에서는 유달리 여성스러운 학우는 특이한 애 정도로 받아들여졌고 굳이 남성적인 모습을 보이느라 경쟁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아마 남성성을 보이고 과시할 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결국 남성성이나 여성성이란 차이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이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다시 말해 그 사회 내에 여학생이 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남고에서도 그들의 남성성을 내보여야 하는데 그들은 그러지 않으니 말이다. 도리어 그곳에서 젠더의 양상은 조금 다르게 나타났다. 그 곳에서 젠더란 성역할을 학습하거나 거기에 매인다기보다는 도리어 권력 체계를 만드는 모습으로 발현되었다. 교사와의 관계는 가부장제 같았으며 학생들은 서로 사이에서 눈치껏 약자와 강자를 만들어냈다. 권력을 갈구하는 성질, 공격성 같은 것들을 남성적이라고 말한다면, 고등학교는 남성성을 체화하고 사회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던 때라고 해도 좋겠다.

규범에 대한 저항과 이의 제기

좋은 일화가 하나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당시 반에는 몸이 매우 왜소한 학우가 있었다. 노는 아이들은 그 아이를 종종 괴롭히고는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직접 괴롭히는 게 아니라 다른 학우들에게 시비를 걸게 시키곤 그들이 그 아이와 싸우게 했다. 그 아이를 편드는 것은 물론 그 아이를 공격하지 않는 것만으로 그 먹이사슬의 제일 아래가 되기에 그 체제는 계속 유지되었다. 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지는 사람과 연대하지 못하는 것. 평화로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따라야하는 남학교 문화란 그런 것이었다. 나 역시 그런 이유로 그걸 막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에 내 작은 저항은 내게 그런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그걸 거절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래도 그걸 통해 내가 배운 게 하나 있긴 했다. 그 때 그 아이를 때리지 않아도 내겐 별 일이 없었다는, 사실 미리 알아차렸어야 하는 당연한 사실 말이다. 그것은 교실 안의 권력 체계를 무너뜨리거나하는 극적인 일은 만들지 않았지만, 어쨌든 나는 ‘꼭 이길’ 필요는 없다는 걸 다시금 알게 되었다. ‘꼭 이기지 않아도 될’ 순간은 종종 있었다. 주먹다짐을 하고 난 뒤 어차피 앞으로 안보고 살 것도 아닌데 좋게 끝내자며 먼저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하면, 결국 다음날 졌다는 식으로 소문이 나지만 그게 내 삶을 무너뜨리지는 않았다. 약자와 함께하면 약자라는 인식 등으로 계급 체계를 공고화하는 규범들이 사실은 크게 의미가 없었고 도리어 그런 공고화된 계급이라는 규범들은 가부장적인 교사와 학생간의 문화와 더불어 종종 불합리와 불공평을 데리고 왔기에 나는 결국 ‘남자, 남성, 남성성’이라는 이름으로 오던 그 규범들에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운동은 연결되어있다. 

인류의 역사가 남성 중심적으로 진행되어오고, 사회가 권력욕이나 공격성을 남성성이라는 이름으로 두었다면 남성성의 변화와 페미니즘에 대한 지향은 좌파의 어떤 본질적인 길과도 맞닿아 있을 테다. 더 강해야하고, 꼭 이겨야하고 되도록 위에 서는 것. 그것은 고등학교 시절 배워온 것이었고, 동시에 좌파가 제국주의에서 자본주의와 소외와 독선에서 싸워온 삶의 태도였고 노동운동, 환경운동, 소수자운동에서 우리가 싸워오던 것이 그것이다. 좌파와 운동의 하위범주들은 굉장히 느슨하게 묶여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렇듯 실은 본질적으로 같다.

운동의 본질은 페미니즘이다

근래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페미니즘을 맨박스로부터의 해방으로 접근하는 관점이 종종 보이고는 한다. 그 중 가장 흔한 시선은, 가부장제와 ‘여성혐오'(misogyny)가 만들어낸 남성에 대한 편견이 남성 자체를 옭아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문제는 더 본질적인 부분이다. 페미니즘은 남성성으로 위장되어 정당화되거나 가려지고 있는 어떠한 태도로부터 그 장막을 거두고 직시할 수 있게끔 한다. 그것이 사실은 다른 불편을 만들 수 있고, 그런 태도는 항상 운동의 적이었다고. 앞서 말했던 ‘남학교 문화’와 싸워오는 것. 계급과 체계에 순응하고 이것을 약자에 대한 혐오로 합리화시키는 것과의 투쟁. 페미니즘은 결국 ‘운동’의 본질에 맞닿아 있지 않을까.


글쓴이 고은산님은 남고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학업중인 20대 노동당 당원으로, 노동당 여성위원회가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 당원들과 함께 시작한 ‘남성성들: 남성 페미니스트 글쓰기 연재’에 참여합니다. ‘남성성들: 남성 페미니스트 글쓰기 연재’는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 노동당원들이, 노동당 여성위원회와 시작한 글쓰기 시리즈입니다. 여기에서 ‘남성성’이란 R.W.코넬의 저작 『남성성/들』에서 인용한 것으로, 하나의 ‘남성성’이 존재한다기보다 만들어지고, 수행되는 개념으로서 한국사회의 남성성이 어떻게 실천되고 유지되는가를 성찰적으로 나누기 위한 개념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기획: 윤영 (노동당 여성위원회 조직국장)
편집: 김나영
이미지: 남고생들의 ‘마초성’을 다룬 영화 <파수꾼>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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