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고정관념에 따라 위축되는 발언

딱히 더 잘 아는 것 같지도 않은데 나와는 달리 엄청난 자신감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본 적 있나요? 하필이면 그때마다 발화자가 남성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던가요? 실험경제학자 캐서린 볼디거 코프먼(Katherine Baldiga Coffman) 교수는 새로운 실험을 통해 성별에 따라 특정한 상황에서 발언이 위축되는 현상을 포착하고 그 이유를 분석하였습니다.

코프먼 교수는 대부분 대학생인 실험 참가자들을 여러 그룹으로 묶고, 해당 그룹 단위로 참가자들이 다양한 분야의 상식 문제를 풀도록 하였습니다. 그룹원들은 서로의 신상에 대해 모른 채 각자 문제를 푼 뒤 자신의 답에 우선순위를 얼마나 부여할지 1부터 4까지 숫자 중에서 선택하게 됩니다. 각 문제 별로 그룹원들의 우선순위 선택을 모아 가장 숫자가 낮은 그룹원의 답이 해당 그룹의 답안으로 선택됩니다. 정답을 맞히면 그룹 별로 점수를 얻고 그 점수에 기반하여 보상을 받으므로 그룹원들은 자신의 답에 자신이 있을수록 더 낮은 숫자—높은 우선순위—를 선택할 것입니다. 이렇게 실험을 설계하면 누군가 특정 문제에서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그룹원에 의해 의견이 묵살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오롯이 참가자들이 해당 문제에서 기여하고 싶은 정도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1

참가자들은 예술과 문학(이하 예술), 엔터테인먼트와 대중 문화(이하 대중 문화), 환경 과학, 역사, 지리학, 스포츠와 게임(이하 스포츠) 등 6가지 분야의 문제를 풀게 됩니다. 각 분야가 일반적으로 여성이 더 잘 아는 분야인지 아니면 남성이 잘 아는 분야인지에 관한 인식 조사도 이루어집니다. 실험 결과, 주로 남성이 더 잘 안다고 여겨지는 분야—역사, 지리학, 스포츠—에서는 여성이, 주로 여성이 더 잘 안다고 알려진 분야—예술, 대중 문화—에서는 남성이 스스로의 지식 수준과는 상관 없이 기여를 줄이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예술 분야에서는 남성이 비슷한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여성에 비해 본인의 답에 0.2 정도 우선순위를 낮추어 부여하였고, 지리학 분야에서는 여성이 비슷한 지식 수준의 남성에 비해 자신의 답에 0.3 정도 우선순위를 낮추었습니다.

낮은 자기 확신 때문에 틀어막히는 입

코프먼 교수는 이와 같은 기여도 차이가 대부분 스스로의 지식에 대한 확신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밝혀내었습니다. 이를 위해 참가자들에게 각 분야별로 스스로가 그룹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지식 수준이 비슷한 경우, 남성은 예술과 대중문화 분야에서 여성에 비해 약 21 퍼센트 포인트 낮은 확률로 자신이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반대로 여성은 역사, 지리학, 스포츠 분야에서 남성에 비해 각각 13, 25, 42 퍼센트 포인트 낮은 확률로 자신이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환경 과학 분야에서는 확신 정도에 성별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확신의 차이가 성별 기여도의 차이를 많은 부분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본인의 지식에 충분히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젠더 고정관념에 스스로를 끼워맞추는 현상(self-stereotyping)이 위축된 발언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사회적 차원에서 볼 때 이 실험에서 측정한 ‘기여하고 싶은 정도’는 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이야기(발언)함으로써 집단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의 크기로 해석 가능합니다. 실험 결과처럼 특정 분야에서 누군가의 발언이 구조적으로 위축될 경우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선 그 사람이 해당 분야에서 가지고 있는 능력을 깨닫기 어려워집니다. 실제로 참가자들에게 그룹에서 각 분야마다 가장 지식 수준이 높은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보았을 때, 여성과 남성이 지목될 확률은 지식 수준에 관계없이 각 성이 더 잘 안다고 여겨지는 분야에서 높아졌습니다. 또한 능력 있는 사람이 의사 결정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그룹의 성과에 손실이 생깁니다. 특히 남성이 잘 안다고 생각되는 분야에서 여성이 발언을 제한함으로써 그룹이 얻는 손실—정답을 맞힌 여성이 이를 충분히 기여하지 않아 얻지 못한 점수—이 매우 크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여성의 기여도를 높이면 그룹 전체의 손실 줄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코프먼 교수는 여성의 기여도를 실제 제출된 것보다 인위적으로 한 단계씩 높여보았습니다. 즉, 여성 참가자가 우선순위를 3으로 제출했다면 실제로 반영되는 순위는 한 단계 높은 2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물론 남성과 여성 모두 자신의 성이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분야에서 발언을 제한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분야가 여성의 경우 더 많고 그로 인한 손실 또한 더 크기 때문에 여성의 기여도만 인위적으로 높이는 처방을 한 것입니다. 이 때 정답을 맞힌 여성의 기여가 적어 생기는 문제는 완화되지만 반대로 정답을 맞힌 남성의 기여가 일정 부분 사라지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실험 결과, 남성의 기여가 적어지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룹 차원의 손실은 유의미하게 줄었습니다. 물론 남성이 잘 안다고 인식되는 분야에서만 여성의 기여도를 높일 경우 그 효과는 더욱 커졌습니다. 제한된 실험 상황에서의 결과이지만, 여성 할당제 등의 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뛰어나다고 여겨지는 분야는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런 분야에서 여성의 발언은 위축되고 남성의 목소리가 커지는 현상 역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토론 중 관련 없는 통계 자료를 들고 와서 갑자기 통계학 이야기를 꺼내는 남성도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본인이 통계를 잘 아는지와 상관없이 무척 자신감 있는 태도로 돌변하곤 하죠. 코프먼 교수의 연구는 고정 관념에 의한 발언 위축의 문제를 보여주고 가능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남자의 자신감을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기도 합니다.

글: 박정흠
편집: 최호연

참고 문헌
Coffman, K. B. (2014). Evidence on self-stereotyping and the contribution of ideas.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qju023.

Notes:

  1. 물론 과거 의견이 묵살된 경험이 현재 기여도에 반영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이를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 그룹 단위의 의사 결정에 기여하고자 하는 정도를 측정하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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