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언니, 어제는 우리학교에서도 시국선언을 하려고 벗들과 머리를 맞대고 밤새 글을 썼어.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2012년 12월 19일에 나는 역사교과서에서만 읽어봤던 유신독재의 과거에 머리끄댕이를 붙잡혀 무덤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여동생을 붙잡고 밤새 울었더랬지. 그때 나는 신자유주의, 여성, 이주민, 성소수자와 같은 주제를 공부하던 중이었는데 그 일이 있고 난 어느 날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으로 젊은 밤을 지새운 어떤 70년대 학번 선생님 앞에서 폭발하고 말았어. 지금 내가 이런 공부를 할 때가 맞느냐고, 민주화운동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선생님 세대가 일군 것은 몽땅 물거품이 되어버리지 않았냐고.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 16일에는 그런 용감무쌍한 생각을 할 기운이 없더라. 그날 나는 뼛속 깊이 깨달았던 것 같아. 아, 우리는 모두가 죽음의 나라에서 살고 있었구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비단 한국만이 아닌가 봐. 브렉시트와 트럼프를 선두로 지구촌은 혐오와 파시즘이 기세를 부리는 시대를 다시 맞게 되었어. 한편, 한국에서도 지구촌 곳곳에서도 죽음의 세력과 맞서싸우는 움직임들이 나날이 거세어지고 있지. 한국에서는 더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민중의 의지를 담은 백만 촛불이 어둠을 밝히고 세계 각지에서도 민주주의와 만민평등을 해치는 세력에 저항하는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어. 백만 민중이 소매를 걷고 나섰으니 이 싸움은 외로운 싸움도 아니고 사소한 싸움도 아닌 것이겠지. J 언니, 나는 외로운 싸움도 아니고 사소한 싸움도 아닌 이 싸움이 기필코 승리할 것을 믿어. 언니와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민중의 힘은 강력하고 민중의 소리는 중요하고 민중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 목숨바쳐 싸울 투사는 많으니까.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밤이 가고 해가 뜨는 때가 반드시 오겠지. 이 싸움은 외로운 싸움도 아니고 사소한 싸움도 아니니까.

그런데 J 언니, 나는 오늘 언니에게 어떤 외로운 싸움, 어떤 사소한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 이 싸움을 싸우는 이들은 분명 인간이고 사람이고 민중일테지만 인류 역사를 통틀어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서도 이들이 인간이고 사람이고 민중으로 인정받았던 적은 없었어. 따라서 이들의 싸움은 외로운 싸움이고 사소한 싸움이지. 언니와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이들의 힘은 무력하고 이들의 소리는 사소하며 이들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 목숨바쳐 싸울 투사는 많지 않아. 어쩌면 이들에게 밤이 가고 해가 뜨는 때는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몰라. 이 싸움은 외로운 싸움이고 사소한 싸움이니까.

독재자의 딸이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된 일, 또 그녀가 세운 죽음의 정권이 수백 명의 생명을 앗아간 일 이상으로 나에게 깊은 영향을 준 일들이 있어. 나는 학부 저학년 시절 우연히 여성주의를 접한 이후로 날이면 날마다 도서관 한 구석에 틀어박혀 여성학 책을 읽었어. 수많은 이론을 읽다보니 현장 속 실천이 궁금해져서 마침 한 여성단체가 모집한 대학생 기자단에 지원했지. 그 단체는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험하는 폭력 중 가정폭력과 성폭력에 초점을 맞춰 피해자를 지원하고 여성인권 정책을 제안하고 사회인식 전환을 위한 캠페인에 열을 올리는 운동단체였어.

기자단 활동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안 되었던 2012년 4월 1일, 경기도 수원에서 한 남성이 20대 여성을 귀가길에 납치해 성폭행, 살해 후 시신을 훼손한 사건이 터졌어. 처음에 주류 언론과 세상 사람들은 그 남성이 조선족이라는 사실과 시신의 훼손 방식에 주목해 이 사건을 이방인의 엽기적 살인행각 정도로 규정하려 했지.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피해자는 납치된 지 얼마 안 된 오후 11시 경, 가해자가 잠시 방을 비운 사이 경찰에 전화해 현재 자신이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과 자신의 위치를 알리며 도움을 청했어. 7분에 달하는 통화가 이루어지는 동안,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피해자가 현재 피해자에게 성폭행을 가하는 가해자와 아는 사이인 지 모르는 사이인 지 물었고, 피해자가 “모르는 아저씨”라고 얘기했음에도 “부부싸움 같은데”라 말하며 전화를 끊어버렸어. 경찰은 피해자가 알려준 위치가 아닌 다른 곳을 돌며 시간을 허비했고 결국 피해자는 경찰의 말에 따르면 새벽 1시까지, 가해자의 말에 따르면 새벽 5시까지 살아있다가 가해자에게 살해됐지.

이후 경찰은 피해자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도움을 요청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과 피해자를 구하기 위한 대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자신의 과오를 은폐하려했어. 진실이 알려진 뒤 조현오 경찰총장이 경찰의 적절한 대응 부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얼마간 경찰의 여성인권 감수성을 꾸짖는 목소리가 이어졌으며 (“경찰, 여성인권을 공부하라, 제발” http://www.womennews.co.kr/news/53304), 여성주의자들이 이 사건에서 드러난 여성혐오, 여성폭력 문제에 경종을 울리는 집단행동을 수개월 동안 조직했지만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 화요일” http://hotline.or.kr/news/8331?ckattempt=1),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험하는 폭력을 사소하게 생각하는 세상은 털끝만큼도 바뀌지 않았어. 나는 이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목숨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깨달았어.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소중한 인간이고 사람이고 민중이라는 여성주의 이론에 입각해 “만지지마, 때리지마, 죽이지마” 외치며 여성혐오, 여성폭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주의 실천이 얼마나 외로운 싸움인지 또 얼마나 사소한 싸움인지도 알게 되었지.

수원 여성살해 사건을 통해 얻은 깨달음 말고도 현장에서 활동하는 여성주의자들의 어깨 너머로 내가 배운 것들은 그 어떤 학문, 그 어떤 이론을 통해서도 배울 수 없었던 살아있는 지식이었어. 남편 또는 남자친구에게 죽임을 당한 여성 200여 명의 사건 기록을 정리하는 작업을 돕던 시기에는 수주일 동안 꿈 속에서 여성들의 비명과 신음소리를 들었지. 수십 년에 걸친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경찰에 신고도 여러 번 했으나 국가와 사회, 주위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얻지 못하고 결국 자신이 살해당하거나 남편을 먼저 살해해 자신을 지켜야만 폭력을 끝낼 수 있는 “죽거나 죽이거나”의 딜레마에 처한 여성들에 대해서도 배웠어. 원하지 않는 성관계, 다른 말로 성폭력을 경험한 여성이 가해자의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도리어 무고죄를 뒤집어쓰고 가해자와 사회, 법정의 폭력을 추가적으로 겪게 되는 현실에 대해서도 배웠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가슴 속에 자나깨나 꺼지지 않는 비상벨을 하나 품고 살게 된 것 같아.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어떤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어가고 있겠지? 또 다른 어떤 여성은 끝없는 폭력과 숨막히는 통제 속에서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하루 하루를 견디고 있을거야. 가해자의 복수가 두려워 도망치지 못할 수도 있고 또 도망치더라도 내 한 몸을 받아줄 곳도, 도움의 손을 내밀어줄 사람도 없어서 온갖 고통을 겪으면서도 가해자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어. 원하지 않는 성관계, 다른 말로 성폭력을 경험하는 여성, 직장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성희롱에 괴로워하고 있는 여성도 수두룩 할거야. 나는 여성에게 이 세상은 예전에도 지금도 또 앞으로도 언제 무슨 폭력, 언제 무슨 죽임을 당할 지 알 수 없는 사냥터이자 전쟁터, 재난 현장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어.

J 언니, 나는 며칠 전 극심한 가정폭력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을 위기에 처한 여성의 전화를 받고 새벽에 대학병원 응급실에 다녀왔어. 수없이 많은 다른 가정폭력 가해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남편은 평소에는 다정하고 친절하다가 어느 순간 돌변해 그녀를 마구 때린다고 해. 대학을 졸업하고 현장에서 활동을 시작한 후 3년이 되어가는 시간 동안 내가 접한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자가 수백 명이네. 언니는 나에게 물었지. 이렇게나 작은 도시에서 그렇게나 많은 여성들이 폭력을 경험한다는 말이 정말 사실이냐고. J 언니, 언니는 나에게 또 물었어. 너는 혹시 정치인이 되고 싶어서 여성인권 이야기를 하며 여성들의 피해를 부풀리고 이용하는 것은 아니냐고.

그렇게나 많은 여성들이 폭력을 경험한다는 말이 정말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기에 그 말을 의심하고 여성인권 이야기를 하며 여성들의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의 동기를 의심하는 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 J 언니, 내 말 좀 들어봐. 여성이라는 이유로 매를 맞는 여성, 성폭력을 경험하는 여성, 착취를 당하는 여성, 죽임을 당하는 여성의 편에 서서 여성인권, 여성해방을 울부짖은 여성주의자는 시간과 공간을 막론하고 늘 존재해왔어. 그런데 언니는 그 중에 여성인권, 여성해방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돈이든 명예든 권력이든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움켜쥔 여성을 한 명이라도 알고 있어? 어떤 시간, 어떤 공간에서 그녀는 마녀라는 이름으로 불에 태워졌고, 어떤 시간, 어떤 공간에서 그녀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행려병자로 쓸쓸한 죽음을 맞았고, 또 어떤 시간, 어떤 공간에서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매일 그리고 평생 겪은 고통에 결국 미쳐 오븐에 머리를 넣고 목숨을 끊었더랬지.

J 언니,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어. 언니와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여성의 삶은 사소하고 때문에 여성의 죽음도 사소해. 여성의 죽음도 사소한 이 세상에서 하물며 여성의 아픔이 중요할 리는 없지. 여성의 삶도, 죽음도, 아픔도 사소한데 이처럼 사소한 여성의 인권과 해방을 외치는 여성주의자란 또 얼마나 사소하고 우스운 존재인 것일까? 여성인권, 여성해방을 위한 이 싸움은 얼마나 외로운 싸움이며, 또 얼마나 사소한 싸움인 것일까? 하지만 언니, 나는 이 외로운 싸움, 이 사소한 싸움을 멈출 수 없어. 여성들의 고통과 절망을 너무 많이 알게 되었고, 여성인권, 여성해방을 위한 외로운 싸움, 사소한 싸움에 목숨을 바치는 여성주의자들을 너무 깊이 사랑하게 되었거든.

나는 최근 몇년 간 점점 더 많은 자매들이 깨어나고 있음을 느껴. 죽음의 나라에서 깨어난 자매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여성인권과 여성해방을 위한 이 싸움이 더이상 외로운 싸움도 아니고 사소한 싸움도 아닐 수 있게 되겠지. 작년에는 머리 풀고 달리는 자매들과 열심히 댓글을 달다가 계정 정지를 먹으면 바로 새 계정을 파서 댓글을 또 달았고, 올해에는 여성주의 정보생산자조합을 만들어보자는 자매의 제안에 환호성을 지르며 덥석 합류했어. 내 전공인 페미니즘 법학을 소개하는 시리즈 (“짓밟힌 이들을 위한 판타지 법학” http://femidea.com/?p=70)도 기획해서 1편과 2편을 발행하고 3편의 초안도 준비했지. 성차별과 식민주의라는 짓밟힘을 겪은 엘리트 여성들의 삶과 죽음을 다룬 처음 두 편과 달리 3편부터는 엘리트 여성이든, 엘리트가 아닌 여성이든 모든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폭력과 죽음의 위협에 처하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이었어. 여기까지가 2016년 5월 17일까지의 일이야.

강남역 살인사건이 있고 반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나는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험하는 폭력과 죽음에 대한 내 글에 손을 대지 못했어. 초반에는 여성폭력, 여성살해가 마침 내가 천착하는 주제이자 전공이다 보니 재빨리 번역할 만한 해외 자료들을 검토하고 물어나르느라, 다음에는 한국 여성운동의 성장과 함께 불어난 조직의 운영과 정비 작업에 참여하느라, 나중에는 어떤 말을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입을 닫아 버렸지.

J 언니, 언니는 나에게 내가 생각하는 여성주의란 무엇인지 물었어.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주의와 무슨 상관인지, 왜 여성주의자들이 고인의 개인적 비극에 분노하며 들고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도 물었고. 운이 안 좋으면 길을 가다 교통사고를 당할 수 있는 것처럼, 강남역 살인사건의 피해자도 운이 안 좋아 정신이상자에게 잘못 걸린 것은 아닌지도 물었지. 언니, 하지만 이 사건은 운이 안 좋아 길을 가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과 정말 같은 것일까? 만약 그 길의 모양과 구조가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교통사고를 당하도록 짜여져 있어서, 그 길을 오다니는 행인들이 분노하며 들고 일어났다면 언니는 그 경우에도 그들에게 왜 개인적 비극에 분노하며 들고 일어났는지 물을거야? 강남역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운이 좋아 그 시간, 그 공간에 있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괜찮았을까? 그 시간, 그 공간에 있었고 여성이었다면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죽임을 당했을텐데? 언니와 내가 사는 이 세상의 모양과 구조는 여성의 삶과 죽음과 아픔이 하찮고 사소하게 취급받도록, 따라서 여성들이 필연적으로 차별과 폭력을 경험하도록 짜여져 있는걸?

J 언니, 나는 한국 땅에 불기 시작한 여성해방의 바람을 타고 새로 깨어나는 자매들이 부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잊지 않기를 간절히 빌고 있어. 여성의 삶은 사소하지 않다.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아픔과 죽음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며 개인적 비극도 아니다. 여성폭력과 여성살해는 모든 여성이 경험하는 사회적 비극이고 모든 여성이 처한 정치적 현실이다.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된 사건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폭력을 경험하는 모든 여성에게 갖는 사회적 의미를 일깨우는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 피해자가 아닌 그 어떤 여성이라도 2016년 5월 17일 그 시간, 그 공간에 있었다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생명을 빼앗겼을 것이기 때문에 이 사건은 모든 여성에 의해 기억되어야 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모든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 언론과 정부, 법원과 의료계가 이 사회적 의미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마찬가지고, 피해를 경험한 개인들이 이 사회적 의미를 받아들일 수 없어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여성주의이고, 여성주의자로서 내가 강남역 살인사건에 분노하고 큰 영향을 받고 기억을 하는 이유이자, 여성의 삶과 죽음, 아픔을 사소하게 여기는 세상에 대한 나의 시국선언이야. J 언니, 여성인권, 여성해방을 위한 이 싸움이 더 이상 외로운 싸움, 사소한 싸움이 아니게 될 수 있도록 J 언니도 함께해 줘.

글쓴이: 김나영
편집: 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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