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여성의 상징, ‘로지’의 시작

여러분, 혹시 이 그림을 보신 적이 있나요? <페미디아>의 열렬한 팬(!)이시라면 이미 이 엽서를 만나보셨을 겁니다.

1Femidea_Poster

<페미디아>에서 제작한 포스터. 모두들 이 정도는 다 가지고 계시죠? ^^

 

이 패러디 포스터의 원본, ‘리벳공(工) 로지’(Rosie the Riveter)의 역사는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본격적으로 세계대전에 휘말리게 된 미국은 남성들을 대량으로 징집했고, 남아 있는 남성 노동자의 생산력만으로는 전시 군수물자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정부는 여성들을 군수물자 생산에 동원하길 원했고, 이전까지 ‘남성의 영역’으로 간주되던 중공업 현장에까지 여성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되었습니다.

1942년 발표된 <리벳공 로지>(Rosie the Riveter)라는 제목의 노래는 ‘로지’라는 여성이 군수공장 노동을 통해 미국의 전쟁 수행에 동참하는 모습을 노래합니다. 리벳(rivet)은 철판 두 개를 이어 고정시키는 일종의 못인데요, 비행기 등 각종 철골 구조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그란 자국이 바로 리벳입니다. 마침 여성들도 전쟁의 한 축(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해야 한다는 애국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이 노래는 큰 호응을 얻었고, 일하는 강인한 여성들은 제2, 제3의 ‘로지’로 불리면서 찬양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노래 <리벳공 로지>에서 시작된 1940년대의 로지 열풍은 전국에 실존하는 로지 찾기나, 여성 노동자의 기록적인 노동량 보도 1 등으로 퍼져나갔습니다.

2Riveting_team

리벳공의 모습. 접합 부분을 따라 이어진 동그라미가 모두 리벳입니다.

하지만 1944년경 전세가 역전되면서 미국은 승기를 잡았고, 유럽에서의 전황 역시 사실상 마무리되어 군수물자 부족은 어느 정도 완화되었습니다. 유럽에 파병되었던 군인들이 일부 귀환하면서 남성 노동력의 공급 역시 증가하게 되지요. 그러자 미국 정부는 여성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광고를 중단하는 동시에, 전장에서 돌아온 남성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여성들이 다시 ‘가정의 천사’가 되어야 한다고 선전했습니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2천만명이 넘는 여성들이 직·간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했지만, 결국 전쟁의 주인공은 남성들이었고 여성들은 내쫓겨야 했습니다. ‘남자들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여성들은 그저 대체품일 뿐이었고, 군인들이 돌아오기가 무섭게 그 자리는 다시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되었습니다.

전후의 평화는 미국 사회에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여성인권에는 역변의 암흑기를 가져다주었습니다. 1940년대 사회가 원한 여성상은 땀 흘리며 기계를 조립하는 여성 노동자였지만,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모든 여성들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 ‘가정의 천사’가 되어야 했습니다. 전쟁 중에는 누구보다 여성들의 사회 활동을 지지하고 독려하던 국가는, 전쟁이 끝나자 젠더의식의 부재를 밑바닥까지 드러냈습니다. 1959년 벌어진 닉슨과 흐루시초프의 ‘주방 논쟁’(The Kitchen Debate)’ 2은 국가가 여성을 소비하는 가장 천박한 방식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포스터의 이름은 ‘리벳공 로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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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리벳공 로지’로 알려진 웨스팅하우스 전기의 포스터 “We Can Do It!”

이쯤 되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 포스터의 이름이 <리벳공 로지>라는 건가요?’ 놀랍게도, 이 포스터는 ‘이름이 없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We can do it!)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사람들의 관심을 한눈에 사로잡은 이 포스터는 웨스팅하우스 전기(Westinghouse Electric)이라는 일개 공장에서 그래픽아티스트 J. 하워드 밀러(J. Howard Miller)에게 외주를 맡겨 제작한 것에 불과합니다. 정부는 더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열정적으로 군수산업에 종사하길 바랐지만, 실제 여성 노동자들의 이미지를 차용했을 뿐 위의 포스터를 만들지는 않았어요. 이 포스터는 전국적으로 배포된 것도 아니었고, 여성 노동자를 겨냥하여 제작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노동자들에게 근무 중 태만하지 말고 더 열심히 일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40여 장의 포스터 시리즈 중 하나일 뿐이었던 이 포스터의 주인공은 ‘로지’가 아니고, 여성운동과는 일말의 연관조차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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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관한 질문이 있나요? 상급자에게 물어보세요!”라고 말하는 웨스팅하우스 전기의 다른 포스터입니다. 남성 상급자가 하급자들을 가르치는 이 포스터는 오히려 전형적인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합치한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전시 여성 노동력 동원 프로파간다는 1980년대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재해석되었습니다. 40여 년간 잊혔던 여성 노동력 동원을 위한 전국적 선전물들은 1980년대의 2세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여성노동의 가치 재발견과 여권신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재활용되었습니다. 이젠 할머니가 된 제2, 제3의 로지들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죠. “내가 공장에서 일하다가 찍힌 사진이 40년이 지난 지금 여성노동의 가치를 증명하는 이미지로 사용되다니!”

그러나 동시에 로지는 또 다른 논쟁에 부딪혔습니다. 리벳공 로지는 전시 국가가 여성 노동자를 (임시로) 착취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미지에 불과하며, 여성의 입으로 ‘할 수 있다’고 말하게 함으로써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군수산업에 종사하도록 세뇌시킨 악질적인 수단이었다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태평양 전쟁의 승기를 잡자 여성 노동자들을 독려하는 광고를 중단했고, 전쟁이 끝나자 각종 공장에 근무하던 3백여만 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대량으로 해고되었습니다. 단순히 여권신장의 아이콘으로 소비하기엔 로지는 복잡한 인물임에 틀림없습니다. 2014년, 당당한 여성 이미지의 대표격인 가수 비욘세는 리벳공 로지 포스터를 차용했다가 작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비욘세 씨, 미안하지만 포스터는 예쁜데 그건 페미니스트 아이콘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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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세 씨, 그건 페미니스트 아이콘이 아니에요.

 

남자도 할 수 있다!” <페미디아>의 포스터가 던지는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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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아침, 그녀는 후버 청소기와 함께 더 행복해질 거예요.” 전후의 풍요는 역설적으로 여성들을 ‘가정의 천사’가 되어 ‘좋은 감옥’에 갇혀 있도록 조장했습니다.

1세대 페미니즘의 목표였던 여성 보통참정권은 여성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했고, 정부는 여성의 탈을 쓰고 ‘여자는 집안에 있을 때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던져댔습니다. 리벳공 로지가 여성 노동운동의 아이콘으로 사용되고, 다시 젠더 이데올로기의 국가적 억압을 보여주는 이미지로 지목된 것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2세대 페미니즘을 거치면서 여성운동이 축적해온 역량의 결과물입니다. 로지를 재전유하여 여성운동의 맥락으로 편입시키고, 동시에 프로파간다의 문제점도 지적했던 여성운동 역사의 연장선에서 이 포스터는 좀더 완결된 의미를 가집니다.

<페미디아>의 “남자도 할 수 있다!” 포스터는 ‘리벳공 로지’를 재전유한 결과입니다. 절묘하게 걷어낸 셔츠와 살짝 보이는 근육은 원본의 로지를 빼닮았지만, 이번에는 여성이 아닌 남성입니다. 이 남성이 안고 있는 아이와 끼고 있는 고무장갑, 들고 있는 프라이팬은 돌봄노동, 청소, 요리를 비롯한 가사노동을 상징합니다. 국가권력이 여성에게 ‘힘든 군수공장 일이지만 너희 여자들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해라!)’고 세뇌시켰던 것처럼, 이번엔 우리가 외쳐봅시다.

“청소? 요리? 육아? 너희 남자들도 할 수 있어. 너도 저 포스터 속 개념남이 되어보렴!”

글: 최성현
편집: ㅊㅈㅅ

참고문헌

“Feminism’s Second Wave”, 2016년 6월 28일 접속, https://genderpressing.wordpress.com/2015/01/27/feminisms-second-wave-2/
“Kitchen Debate”, Wikipedia, 2016년 6월 28일 접속, https://en.wikipedia.org/wiki/Kitchen_Debate
“Rosie the Riveter”, Wikipedia, 2016년 6월 28일 접속, https://en.wikipedia.org/wiki/Rosie_the_Riveter
“We can do it!”, Wikipedia, 2016년 6월 28일 접속, https://en.wikipedia.org/wiki/We_Can_Do_It!
Rebecca Winson, “Sorry beyoncé, Rosie the Riveter is no feminist icon. Here’s why.”, The Guardian, 23 July 2014,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14/jul/23/beyonce-rosie-the-riveter-feminist-icon
권홍우, <리벳공 로지…젊은이에게 일과 희망을!>, 서울경제, 2016년 6월 8일, http://www.sedaily.com/NewsView/1KXICPA87L

Notes:

  1. 군수물자 생산이 한창이던 1943년 6월 8일, 제너럴모터스의 폭격기 생산 라인에서 스물한살의 여성 노동자가 여섯 시간 동안 리벳 3,345개를 박아 넣는 신기록을 세워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는 마침 이름마저 로즈(Rose Bonavita)였습니다. 로즈 보나비타는 연일 언론에 소개되고 루스벨트 대통령의 감사 편지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2. ‘주방 논쟁’은 소련과 미국이 상대방 국가에서 개최한 엑스포를 기점으로 벌어졌습니다. 뉴욕에서 열린 소련 가정 전시회와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국 가정 전시회는 특히 가전제품 및 관련 기술을 두고 닉슨과 흐루시초프의 신경전을 촉발시켰는데, 닉슨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미국 여성들은 편안하게 집안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자랑한 반면, 흐루시초프는 ‘여성들이 집안에만 갇혀 있지 않고 자신의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며 서로 자신의 체제가 더 우월함을 증명하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양국 모두 ‘집안일은 여성의 일’이라는 기본 전제는 벗어나지 못한 채, 누가 더 노예를 편안하게 대우해주는가’를 가지고 자랑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미국은 여성들을 집안에만 가둬놓았고, 소련은 여성들이 가사노동과 직업의 이중 굴레를 지도록 내몰았다.) 또한 여성들이 처한 억압적 상황을 체제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국가가 여성 젠더를 어떤 식으로 소비하는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예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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