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에서 이어짐)

이제 둘째 포인트로 넘어가보자. 만일 여성 관리자들이 민주적, 관계지향적 리더십 스킬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에 깊이 뿌리내린 여성 관리자에 대한 편견 때문이라면, 우리는 코스모폴리탄의 조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구조화된 성 역할을 쉽게 바꿀 수 없다면, 여성 관리자들은 이를 뿌리부터 고치는 장기적이고 불확실한 도박을 하기보다는 성 역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유리천장을 먼저 없애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할까?

실제로, 코스모폴리탄의 인터뷰이들은 ‘인생이 레몬을 준다면 레모네이드를 만드세요! :)’ 류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여성이라 힘든 점도 많지만 그렇기 때문에 주목을 받는 장점도 있다”는 한미옥 씨의 인터뷰는 이런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1. 정말 레몬을 주는 손을 찾아내고 레몬을 주지 않도록 만드는 것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레모네이드를 만드는 게 최선인가?

개개인의 여성 관리자들은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처했을 구조화된 차별, 그 안에서의 최선의 방법에 대해 그들이 했었을 고민에 대해 공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 역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의 리더십이 왜 장기적 대책이 될 수 없는지 간략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남초 업계에서 소수자인 여성이 누릴 수 있는 소수자에 대한 주목효과는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한미옥 씨의 말대로, Taylor, Fiske, Etcoff & Ruderman (1978)은 남성이 다수인 일터에서 여성 관리자의 업적이 주목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2. 하지만 Kanter(1977)의 연구는, 이런 남초 업계에서의 소수자로서의 처지가 i) 여성 관리자의 퍼포먼스에 주변으로부터의 주목도를 높임으로써 여성에 대한 업무 스트레스를 더 가중시키고, ii) 남성들이 여성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불확실성에 직면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공식적 비공식적 업무 네트워크에서 제외시키고, iii) 결국엔 여성들이 여성성에 부합하는 성 역할을 수행할 때 보상을 제공하고 그룹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이 불확실성을 없애려 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3. 만일 이 연구결과가 우리나라의 맥락에도 적용된다면, 남초 업계 내 소수자로 여성들이 받는 주목이 장기적으로 여성들의 차별 극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스타일의 리더십을 해결책으로 생각할 경우, 전통적인 여성적 직무나 리더십 스타일을 구사할 때만 그들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는 종속적 구조가 고착화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여성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도 있다. Gardiner & Tiggemann (1999)는 남초 업계에서 일하는 여성 관리자들이 실제로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남성 관리자들에 비해 정신적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며, 또한 관계지향적 리더십을 구사하는 남초 업계의 여성 관리자들이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4 5.

요약하자면, 여성에 대한 편견을 뿌리부터 바꾸지 못한 채 남초 업계에서 생존한 소수 여성 리더들이 나타난다고 해서 성차별의 프레임을 크게 바꾸기 어려우며, 그 부정적 효과가 여성 관리자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뿐 아니라 그들의 신체적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작은 불편을 가볍게 넘기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만일 위의 연구 결과들에 한국의 맥락에도 적용 가능하다면) 남초 업계의 여성 관리자들은 남성들의 네트워크에서 인정받기 위해 전통적 여성의 역할을 충실히 행하고, 높은 스트레스를 작은 불편쯤으로 가볍게 넘기면서 유리천장을 깨려는 개개인의 노력을 지속해야 하는 걸까?

많은 여성 CEO들은 유리천장이 여전히 건재한 이유를 여성 개개인의 노력 부재에서 찾으려 한다. 코스모폴리탄 특집 기사의 인터뷰이 중 한 명인 네이버 부사장 한성숙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6.

“여성들도 프로야구 선수처럼 일에 임했으면 좋겠어요. 더 높은 타율을 낸 타자가 더 많은 연봉을 받는 논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거죠. 그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처우를 ‘차별’이라는 카테고리에 넣어 바라보는 것은 조금 위험한 것 같아요. (…) 그동안 결혼과 육아라는 시기를 거치면서 훅 사라져버린 여성 인재가 너무 많았어요. 앞선 이들이 부재하면 그 뒤를 따르는 여성 직원들이 탄탄한 구조 안에서 자리 잡기가 어려워요. 저는 훌륭한 여성 인재들이 이 업계에서 커리어를 지속하며 잘 버텨내길 진심으로 바라요.”

더 극단적으로, 성주그룹의 김성주 회장은 “그간 한국 여성이 육아, 유교적 풍토, 남성 위주의 문화 등으로 경제 활동에 못 참여했는데 서구 여성은 얼마나 부지런한지 우리나라 여성보다 10배는 더 일하고 있다”, “어려움에 처하면 눈물을 찔찔 흘리면서 도망가는 여성한테 회사가 어떤 일을 시키겠나”며 유리천장이 있는 이유를 여성의 게으름 혹은 약한 정신력에서 찾고 있다 7.

이와 비슷한 레토릭은 몇 년 전 미국 사회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었다. 2013년, Facebook의 COO(Chief Operating Officer)인 Sheryl Sandberg는 본인의 저서 “Lean In”에서 여성들 스스로 사회 내의 여성에 대한 성 역할을 재생산하면서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을 꺼려하며, 여성 스스로 만든 장벽들이 차별을 양산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한다 8. 이는 한성숙 씨의 의견과 비슷한 맥락으로, 여성들이 더 높은 자리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성들이 야망과 노력이 부족해서인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 내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그와 같은 사고가 진정한 의미의 성차별 극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주장한다. 이들은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여성 개개인의 노력 및 야망 함양이 아니라 구조적인 개혁이라고 말한다. 특히 현 프린스턴대 교수이자 오바마 1기 미국 외교부 (State Department)에서 고위직을 맡았던 Anne-Marie Slaughter는 지금은 여성 상위시대라는 허상을 떨쳐내고 여전히 존재하는 구조적 차별에 주목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9. Slaughter의 의견이 반향이 컸던 이유는 미국 사회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중 하나로 손꼽히는 그가 외교부 재직 시절 직접 겪었던 그리고 관찰한 여성으로서의 어려움을 가감 없이 전달했기 때문이다. 본인이 3-40대에 아주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육아의 대부분을 남편이 도맡아 하는 운 좋은 환경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시간 유용이 자유로운 학계를 떠나 정해진 시간을 일에 쏟아야 하는 정계에 있으니 버텨낼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심지어 야심차게 여성들이 lean in 할 것을 종용했던 Sheryl Sandberg 또한 실은 가족과 저녁을 먹기 위해 5:30분이면 퇴근을 하고 밤에 밀린 일을 집에서 처리하며,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어려웠음을 후에 고백했다.

이쯤에서 우리나라의 일터들을 생각해보자. Sandberg처럼 임원 레벨에 도달하지 못한 일반 직장인들도 하루 평균 11시간을 일하며 10, 2012년 기준 우리나라 육아 휴직자 중 남성의 비율은 2.8%에 그친다 11. 이런 환경에서 야망을 갖고 직장에서 lean in을 하려면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할까? 결혼할 계획이 있는 경우, 육아나 가사를 동등하게 부담할 의향이 있는 사람을 배우자로 골라낼 수 있는 통찰력. 그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 자제력. 커리어를 위해 결혼을 하지 않기로 했다면, “왜 결혼은 안 하니”로 시작하는 주변인들을 가볍게 무시하거나 지치지 않고 그들과 싸울 수 있는 정신력. 직장에서 강한 언어를 사용할 때,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린다는 하급자들의 수근거림에 초연할 수 있을 것. 결혼을 하고 자녀가 있는 경우, 배우자와 똑같이 야근을 하고 똑같이 육아에 소홀한 경우에도 육아 소홀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엄마에게만 돌리는 가족, 친구들, 네티즌들을 가볍게 무시할 수 있을 것. 즉, 감정을 스스로 거세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이런 어려움들을 가볍게 넘기고 남자들의 리그에서 살아남은 명예남자들은 이 모든 걸 가벼운 불편쯤으로 여기고 기존 사회 질서에 순응하라고 조언한다.

나는 차별의 원인을 여성 개인의 노력 부족에서 찾는 의견에 반대하며, 이런 담화를 재생산하는 이들을 지탄한다. 그들이 관리자 혹은 CEO로서 여직원과 남직원의 업무 성과를 비교하는 곳은 일터이지만, 일터 내에서 그리고 일터 밖 가정과 사회에서 여직원과 남직원이 치르는 비용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직장 내 크고 작은 성범죄에 대한 대책, 폭력적 회식 문화, 고용 성차별, 불균등한 육아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부성 휴가 및 가족 휴가 사용을 늘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등등 고쳐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다. 정말, 그들은 이 모든 걸 불편함으로 가벼이 넘기고 자랑스러운 여성 리더가 된 걸까? 그렇다면 그들에게 슬픈 박수를 보낸다. 만일 본인들도 이런 부당함에 좌절해본 적이 있다면 이제 이 어려움들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보는 게 어떨까?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여성들이 본인들이 걸은 길을 가도록 종용하는 일은 그만둬주시길 부탁한다. 작은 불편을 지난 시간 동안 가볍게들 넘기다 보니 우리는 맘충이 되었고 김치녀가 되었다. ‘바꿀 수 없다면 잘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말로 자위할 때가 아니라 뭐라도 바꿔야 할 때다.

 

글쓴이: 이보람

편집자: Shyvon


 

Notes:

  1. IT업계에서 살아남은 그녀들의 필살기, <Cosmopolitan>, 2016/5/27, http://www.cosmopolitan.co.kr/article/RetArticleView.asp?strArtclCd=A000005093&strFCateCd=AHAA (2016년 6월 20일: 접속날짜)
  2. Taylor, S.E., Fiske, S.T., Etcoff, N.L. and Ruderman, A.J., 1978. Categorical and contextual bases of person memory and stereotyp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36(7), p.778.
  3. Kanter, R.M., 1977. Some effects of proportions on group life: Skewed sex ratios and responses to token women.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pp.965-990.
  4. Gardiner, M. and Tiggemann, M., 1999. Gender differences in leadership style, job stress and mental health in male‐and female‐dominated industries.Journal of occupational and organizational psychology, 72(3), pp.301-315.
  5. 반면, 관계지향적 리더십을 구사하는 남초업계의 남성리더들은 가장 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6. 혁신을 원한다면 작은 불편은 가볍게 넘기세요, <Cosmopolitan>, 2016/5/30, http://www.cosmopolitan.co.kr/article/RetArticleView.asp?strArtclCd=A000005107&strFCateCd=AHAB (2016년 6월 20일: 접속날짜)
  7. 여자도 군대가야 서구여성처럼 강인해져, <헤럴드경제>, 2010/7/30, http://media.daum.net/economic/industry/view.html?cateid=1038&newsid=20100730120408615&p=ned&RIGHT_COMM=R12 (2016년 6월 21일: 접속날짜)
  8. Sandberg, S., 2013. Lean in: Women, work, and the will to lead. Random House.
  9. Why Women Still Can’t Have It All, 2012. By Anne-Marie Slaughter. Atlantic Monthly. http://www.theatlantic.com/magazine/archive/2012/07/why-women-still-cant-have-it-all/309020/
  10. 회사원 하루 11시간 근무 … 칼퇴근은 일주일에 고작 1.5일, <한국일보>, 2015/12/11. http://www.hankookilbo.com/m/v/648771c68f1343dcb2e4f92fb47d6e06 (2016/6/21: 접속날짜)
  11. 홍승아, 이인선, 2012. 남성의 육아 참여 활성화 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 한국 여성 정책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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