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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리스크>,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캔버스에 유채, 루브르 미술관, 91*16cm,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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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점심>, 에두아르 마네,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214*269cm, 1863

모든 역사와 가치판단에는 힘의 구조가 반영되며, 미술사와 미의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객관적 현실이라고 믿어온 많은 것들이 사실은 백인의 시각, 그리고 남성의 시각에서 구성된 것이라는 데에는 이미 많은 분들이 동의하실 것입니다. 객관적이라 여겨지는 것들 역시 가치 판단을 포함하고 모든 가치 판단에는 힘의 구조가 반영된다는 것에 말이죠. ‘객관’의 영역조차 그러한데, 우리가 흔히 ‘느낌’의 영역, ‘미’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미술 분야와 예술적 표현의 영역은 어떨까요? 미술사는 어떻게 쓰였으며, ‘아름다움의 추구’ 외에 다른 가치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 시작한 동시대 현대미술의 역사는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요? 앵그르의 <오달리스크 1>에는 그림 속 여성과 관계하는 어떠한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이 그림 뿐 아니라 우리가 미술사에서 접하는 수많은 그림과 조각들에 그러한 시선이 담겨있는데, 그 시선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리고 무엇이 아름다운지는 어떻게 정해지는 것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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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 하는가?>, 종이에 오프셋 인쇄, 28.1 x 71.2cm, 게릴라걸스, 1989 출처:www.guerrillagirls.com

‘게릴라걸스’는 여성 작가가 인정받지 못하며 여성은 주로 ‘대상’으로 소비되고 있는 미술계의 현실을 꼬집는다.

미국의 여성주의 예술-행동 그룹 ‘게릴라걸스’는 <오달리스크>를 패러디한 한 장의 포스터로 앞서 이야기한 그 시선을 문제시합니다. 미국 최대의 미술관이라 불리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현대미술 부문에 작품이 걸린 작가들 중 오직 5%만이 여성인 반면, 누드(나체) 작품의 85%가 재현하고 있는 몸은 여성의 몸이라는 점을 꼬집어 미술사에서 여성의 위치를 드러낸 것이죠. 이들에 의하면 20세기 후반까지 여성은 미술학교는 물론 아틀리에나 예술가 조합 등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작가로서 인정받고 주목받을 수 있는 여성은 재능과 기량에 상관 없이 거의 없었겠지요. 여성은 주로 그림이나 조각의 ‘대상’으로서 소비되어왔을 뿐입니다.

위와 같은 압도적인 통계 수치의 차이는 대부분의 근현대 미술작품에 존재하는 시선이 바로 ‘A: 바라보는 이, 남성, 주체, 작가’와 ‘B: 바라보는 대상, 여성, 객체, 모델’이라는 관계에 있음을 반영합니다. 그리고 모델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주체인가와 별개로, 대상이 작품으로 실현되어 관람객 앞에 전시되는 순간 관람객은 A의 위치에, 작품은 B의 위치에 놓입니다. 관람객은 작가와 마찬가지로 대체로 남성으로 상정되는 것이죠. 미술사 역시 다른 역사처럼 가치판단을 통한 선택의 결과이고, 박물관의 컬렉션은 그 선택의 현재적 반영입니다. 그러므로 게릴라걸스의 포스터는 박물관에 방문하여 ‘남성’으로 상정된 관람객의 위치에서 과거의 미술을 그대로 소비하는 우리의 현재 역시 짚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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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 여성권리 행진에서의 게릴라걸스, 2004, 출처: www.guerrillagirls.com

, 게릴라걸스, 2006, 출처:www.guerrillagirls.com

<여성 감독들을 해방하라!>, 게릴라걸스, 2006
출처:www.guerrillagirls.com

여성주의 미술, 단지 80-90년대의 유행일 뿐일까?

특유의 유머에 통계를 곁들인 재치있는 포스터, 그리고 게릴라 퍼포먼스를 통해 예술계 내외의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차별을 비판하는 이들의 활동은 20세기 중후반 여성주의 미술운동과 맥을 같이 합니다. 당시 여러 여성 작가들이 여성주의 시각에서 작품을 제작하였고 페미니스트 미술사가들은 역사 속에서 소외된 여성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재평가하는 시도를 시작했습니다. 게릴라걸스 역시 ‘게릴라걸스의 서양미술사’를 펴내면서 여성의 시각에서 미술사를 다시 썼지요. 그리고 적어도 근현대 미술사에서는 이러한 여성주의 미술가, 이론가들의 시도가 하나의 중요한 지류로 언급됩니다.

그러나 이는 의도치않게 여성주의적 목소리들이 마치 현대미술의 한 계파 내지는 특정 시기 만의 유행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내었고, 이제 많은 이들이 여성주의 미술을 마치 80-90년대의 이야기 쯤으로 생각합니다. 더 이상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 끝난 이야기인 듯이 말이죠. 여전히 지구상에 살고 있으며 여전히 억압받고 있는 인류의 반,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끝이 날 수 있을까요? 그동안 여성주의 미술가들의 노력은 충분히 반영된 것일까요? 2012년 게릴라걸스가 다시 제작한 아래의 포스터를 보면 아마도 별로 변한 건 없는 것 같습니다.

, 게릴라걸스, 2012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아직도) 발가벗어야 하는가?>, 게릴라걸스, 2012

프리다 칼로는 “대체 미술사는 누구에 관한 이야기란 말인가요?”라고 말했다지요. 누군가에 의해 보기 좋게 조립된 세상의 모든 역사는 해체되어 여성의, 다양한 성적 주체들의, 유색인종의, 제3세계의, 비수도권의, 그리고 또다른 억압된 자들의 부분적 진실을 재료로 다시 쓰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쓰인 미술사(들)만이 아래 인터뷰 영상 2에서 게릴라걸스가 말하듯 우리 문화 전체를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게릴라걸스 30주년 전시 소개 영상 스틸 컷, 출처: www.guerrillagirls.com

게릴라걸스 30주년 전시 소개 영상 스틸 컷, 출처: www.guerrillagirls.com

글: Melisa Nowa

편집: 박정흠

 

참고 문헌

게릴라걸스 (2010), 우효경 역, 게릴라걸스의 서양미술사, 마음산책

게릴라걸스 홈페이지(http://www.guerrillagirls.com)

Notes:

  1. 오달리스크는 터키 궁정에서 왕을 위해 대기하던 여성을 의미한다.
  2. 미국 CBS에서 방영하는 스테판 콜베르의 ‘더 레이트 쇼’ (The Late Show with Stephen Colbert)에 출연한 게릴라걸즈의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FxBQB2fUl_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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