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동안 읽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의 《댈러웨이 부인》(Mrs.Dalloway)과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을 읽은 후의 헤카테의 첫 여름. 우리는 울프의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 사는 세 여인들의 단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를 함께 보기위해 한 곳에 모였다. 다른 이들은 타인의 하루를 어떻게 읽고 보았는지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내 일상의 무거운 시간 속에서 만났던 책과 영화였기에 영화를 보는 동안의 내 마음 속의 나는 참으로 바빴다. 많은 것들을 신경 쓰지 않기로 신경 쓰며 메모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내게는 여러 개의 방이 있다. 그 중 단 하나의 방이 나의 온 신경을 거슬린다. 모임이 끝난 날 저녁, 문득 벼락처럼 강한 충동이 일었다. 방의 물건을 모두 들어내고 벽지를 뜯어내 새로 벽을 칠해야한다는 강한 생각. 물건들을 모두 빼고 잠시 숨을 돌렸다. 한 바탕 힘을 쓰고 지친 몸으로 생각을 해보니 방의 모습을 바꾸어도 여전히 가지지 못한 방을 그리워하고야 말겠단 생각이 들었다. 의욕은 사라졌고 물건들을 아무런 규칙 없이 다시 방 안으로 쏟아 부었다. 빈 방은 곧 폐허가 되었다.

그 잔해들을 치우지도 못하고 그렇게 며칠을 겨우 침대 위에서 잠만 잤다. 여관처럼 겨우 잠만 자고 일어나 집을 나가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불이 켜진 상태에서 나의 방을 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괴로운 비밀들, 기억들, 부담감들을 만날 것 같아 어두운 밤에만 겨우 들어가 잠을 잤다. 방안에 누워보니 나도 폐허 속의 잔해가 되어 온갖 계절 속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있었다. 밖에 나갈 땐 폐허 같은 방문을 닫고 다른 공간에서 말끔하게 잘 꾸몄으며 누구도 방문을 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나섰다. 문득 ‘내가 푸른 수염 흉내라도 내고 있나.’하는 생각에 머쓱해졌다.

 

noname01“언제나 지하실을 기억하렴.” 영화 《아가씨》의 코우즈키의 대사

 

2.

푸른수염 동화의 비극은 결혼과 함께 시작한다. 다른 동화들이 결혼이라는 사건을 계기로 오래 오래 살았다고 영원한 이별을 고하는 것과 달리, 이 동화의 주인공은 한 가정의 질서 속에 편입되면서 자신이 결코 닿을 수 없는 힘의 영향 안에 들어온다.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현실의 끔찍함 주변을 빙빙 도는 일 뿐이다. 주인공은 ‘안주인’으로서 모든 방에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지만 비밀이 들어있는 지하실의 방은 외면해야한다. 그 방을 그대로 두는 것이 믿음과 신뢰의 문제였다. 약속된 사랑을 받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을 테니까. 그에겐 그 것이 삶을 긍정하는 생존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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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수염을 도끼로 난도질한 후 동생을 안심시키는 정의의 사도, 아니 오라범들. 장편애니메이션 《Grimm’s Fairy Tale Classics》, Ao hi ge(青ひげ) 편 中

 

주인공을 지배하던 무시무시한 가부장에게서 주인공을 구해주는 것은 주인공의 오빠들이다. 비밀이 언제나 너를 주시하고 있음을 잊지 말되 함부로 다가가지 말라고 암시하던 푸른 수염은 죽고, 주인공은 푸른 수염의 전 재산을 갖게 된다. 푸른 수염의 재산은 주인공의 언니의 결혼식에, 오빠들이 관직에 오르는데 각각 사용된다. 주인공도 푸른 수염과의 기억을 보듬어 줄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한다. 그가 두 번째 결혼에서 행복하게 영원히 오래오래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주인공은 여전히 그 방을 기억하지 않을까? 자신이 영원히 소유할 수 없었던 금기의 방, 자신도 말릴 수 없었던 자신의 호기심, 열쇠에 새겨진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 첫 번째 결혼 생활의 기억들. 주인공이 떠난 거대한 저택의 지하실 방에는 여전히 핏자국들이 남아있을 것이며 이제 남자의 시체가 더해졌을 뿐이다. 문은 굳게 닫혀 있겠지만 그 앞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나 강렬한 피 냄새와 싸늘한 한기를 느낄 수 있다. 어쩌면 그 방문을 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곧 소멸하고 말 세상의 아름다움에는 두 개의 날이 있었습니다.

한편에는 웃음의 날이, 또 한편에는 심장을 조각조각 잘라놓는 듯 한 고통의 날이 있었지요.”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푸른 수염처럼 삶은 우리들에게 많은 기회와 권한을 준다. 사람들과의 즐거운 만남,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안정감, 스스로 일구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부유함과 그것이 선사하는 편안함. 그러나 여전히 무언가 어긋나있다. 울프의 소설 속의 클라리사(댈러웨이 부인)은 자신이 삶을 사랑하기에 자신이 파티를 연다고 생각한다. 그의 파티는 밝은 모습과 어두운 모습 모두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차려입은 입은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영화 《아가씨》 속의 신사들처럼 자신만의 생각에 스스로를 감금한다. 다만, 파티에서 클라리사가 밖으로 드러나는 자신이 아닌, 억압된 채 존재하는 호기심 많은 또 다른 자신을 만났으리라 상상해본다. 삶을 사랑하는 동시에 죽음을 지향하는 자신을. 셰익스피어의 희곡 《심벌린》의 한 구절이 클라리사의 마음을 붙든다. “더 이상 두려워 말라, 태양의 열기를!”

noname03자신의 지하실에 실제로 뭐가 있는지 알려주고 싶은 팬텀은 없겠지. 상처 입은 불쌍한 자신과 별 것 아닌 가면 뿐이니까. <심슨가족> 할로윈 특집 에피소드 오프닝 속의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을 연기한 배우들

3.

오빠들에 의해 구출된 푸른 수염 이야기의 주인공은 지금 자신이 살아가는 집에서 그 어떤 방에도 몸과 마음을 놓지 못할 것이다. 금기의 방, 하지만 내가 찾고 있던 방. 푸른 수염의 옛 부인들이 마주쳤을 금기의 맨얼굴이 숨어있는 바로 그 방. 그 맨얼굴은 주인공이 속한 질서를 지탱하는 마법같은 힘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여성의 힘으로 닿을 수 없는 가부장의 권력과 권위엔 신비스러운 마법이나 비밀은 없다. 그러나 그 맨얼굴을 보기 위해선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 된다. 그렇게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억지로 욱여넣은 내 방 앞에서 클라리사가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noname04 남편에게 열쇠를 바치는 주인공. 장편애니메이션 《Grimm’s Fairy Tale Classics》, Ao hi ge(青ひげ) 편 中

가부장제에서 여성은 이름도 소유권도 언어도 역사도 가지지 못한다. 울프의 소설 《막간》의 스위딘 부인은 포인츠 홀에서 태어났지만 포인츠 홀을 소유할 수 없이 스쳐지나가는 존재이다. 여성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이름보다 000부인으로 불린다. 울프는 이렇게 당시의 여성들이 자신의 언어를 가질 수 없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언어 번역이 필요 없는 절대적인 폭력 앞에 스스로 익숙하게 적응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배자의 재산은 여성들에게 절대적인 만족감을 주진 못한다. 곧 그들은 금지된 방을 있는 그대로 마주 하는 길에 들어선다. 그 것만으로도 푸른 수염의 대노와 충격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죄가 되는 금기, 여성들은 그 금기에 완전히 복종하기엔 의아한 점들이 있음을 발견한다. 가부장제의 원동력을 권위로 포장한 그 비밀의 방 속엔 삶의 끔찍함이 들어있다.

절망할 필요는 없다. 성공과 실패 두 가지를 모두 떠나 자신의 방을 찾아 떠난 이들의 이야기는 존재한다. 혹자는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가 속편한 이야기라고, 높은 학력에 집안의 재정이 받쳐주는 소수계층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혹은 너무나 오래된 이야기라고, 당시의 여성들에게나 파격적인 이야기라고 말하며, 성을 남자와 여자로만 나누는 한계를 가진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울프가 소환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실존하는 목소리이다.

 noname05주인공의 앞에 겨누어진 푸른 수염의 칼끝. 장편애니메이션 《Grimm’s Fairy Tale Classics》, Ao hi ge(青ひげ) 편 中

 

4.

금지의 방을 마주하고 자신의 방을 찾으려는 이들은 금지의 방을 만드는 남성주체와 감금의 대상은 여성이라는 이분법을 깰 수 있다. 그들은 억압되어 있는 여성들을 귀환시키며 스스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면, 일차적으로는 딸을 위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보호의 바깥으로 나아가려는 모든 딸들을 위한 이야기. 그들은 그 울타리 속에서 불온한 욕망을 떨쳐내야 하는 순응자이며 가부장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주변화 되어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그 세계를 위협할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진 존재이다.

울프가 자신의 작품 속에 평범한 여성들의 감정과 불안과 생각, 삶에 대한 긍정과 죽음에 대한 욕망을 여성의 언어로 기록했듯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언어이다. 그 언어가 움트는 공간은 누군가에게서 물려받는 열쇠로 여는 방이 아닌 스스로 자물쇠를 걸 수 있고, 창문을 열 수 있는 방이다. 그 방은 그들의 지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이다.

 

5.

현실로 돌아와, 읽던 책을 잠시 내려놓고 방문을 열어보았다. 작은 파편들이 만들어낸 어지러워 보이는 세계였다. 아주 오랜만에 밝은 낮에 문을 열었다. 그래서 마음속에 창문 하나 커다랗게 내어 바람과 햇빛이 잘 드는 방 하나 만들고자 한다. 열려있지만 자물쇠와 열쇠 모두 나에게 있는 고요하고 튼튼한 마음속의 방 하나 있으면, 울프가 말한 “점잖은 집의 공동거실”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방을 치웠다. 그리고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는 조용히 우리들의 시간을 소환하며 끝이 났다.

 

글쓴이: 현전우일

편집자: Shyv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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