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성(性)이 존중 받는 사회로, 각자의 성(性)과 삶의 방식의 다양성이 존중 받는 사회로-
(多様な性が尊重される社会に, 個々の性や生き方の多様さが尊重される社会に)

일본사회 속 성 소수자들은 어떠한 어려움들에 직면해왔을까? 지금도 다양한 어려움들을 경험하고 있지는 않을까? 각자의 다양한 성이 존중 받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회학과 젠더 전문가인 가와구치 가즈야(河口 和也) 교수에게 의견을 물었다.

성 소수자가 겪는 어려움

최근의 일본을 보면, 이른바 ‘오네 캐릭터(‘언니’를 뜻하는 ‘お姉’가 붙은 용어로, ‘여성스러운 말투와 행동’을 하는 탤런트나 ‘여장(女裝)남자’ 캐릭터를 지칭한다. 마츠코 디럭스가 대표적이다-역자 주)’를 텔레비전에서 매일같이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상징하듯 약 20년 사이 성 소수자에 대한 사회 인지도는 현격히 높아졌다.

“1990년대의 사회적 의식이란 지금과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호모’라거나 ‘오카마(여장남자, 트랜스젠더, 남성 동성애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역자 주)’와 같이 게이를 차별하는 용어들이 미디어 속에서 당연한 듯 사용되고 있었고, <고지엔>(일본의 대표적인 출판사 이와나미 서점에서 발행한 일본어 사전-역자 주)에도 동성애가 ‘이상 성욕의 하나’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히로시마 슈도대학(広島修道大学教授)의 가와구치 가즈야(河口 和也)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그의 전문분야는 사회학과 젠더학이다.

성 소수자들은 다양한 어려움들에 직면해왔고, 지금도 직면해있다. 존재를 부정 당하는 듯한 차별 발언을 비롯하여, 취업활동 시 “커밍아웃을 하면 면접 건수가 끊겨 버린다”거나 직장 생활을 하며 “회식 자리에서 성희롱을 당했다”, “해고를 강요당했다”는 등 다양한 어려움들을 경험하고 있다(출처: LGBT법 연합회,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이유로 우리들이 사회에서 직면하는 어려움들』). 또한 차별과 폭력을 두려워하여 커밍아웃을 할 수 없거나, 상담을 할 수 있는 곳이 적어 고립이 심화되는 경우도 상당수 존재한다. 성 소수자들이 우울증에 걸리는 비율과 자살률이 높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후추 세이넨노이에 사건(府中年の家事件-도쿄도 후추시에 있는 숙박 시설에서 일어난 사건)

 

가와구치 교수는 일본사회에서 성 소수자들이 당해 온 차별과 배제에 관한 사례로 “도립(都立) 후추 시(市) 세이넨노이에(青年の家) 이용 거부 사건”을 든다.

이 사건은 1990년 2월에 발생했다. 경위는 이러하다.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동성애자 단체 ‘행동하는 게이와 레즈비언 모임(動くゲイとレズビアンの)’이 합숙 연구모임을 위해 (유스호스텔에 해당하는)’세이넨노이에’에 묵게 되었다. 그 당시 세이넨노이에의 행사 중에는, 호스텔에 묵고 있는 다른 단체들과의 교류를 목적으로 열리는 ‘리더모임’이 있었다. ‘행동하는 게이와 레즈비언’ 모임 역시 참가하였고, 이 모임의 회원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다른 모임의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소개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회원 중에는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모임에 대한 소개를 한 이후, 다른 단체들로부터 괴롭힘과 차별적인 언행들이 이어졌다. “이 자식들 호모래. 호모 집단이래”라는 말을 던지거나, 목욕탕을 들여다보거나, 방문을 두들기거나 하는 식이었다.

모임의 회원들은 이러한 문제를 시설 측에 신고했고(이때도 회원 중에는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이에 임시 리더모임이 열리게 되었다. 당시 시설을 이용하고 있던 다른 세 개 단체 중에 한 개의 단체는 사과했지만, 다른 두 개의 단체는 사과하지 않았다. 또한 이때 기독교계 단체에서는 성서를 소리 내어 읽으며 동성애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 뒤 세이넨노이에는 ‘동성애자 단체들의 숙박은 혼란이 뒤따르기 때문에 앞으로 이용을 거부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공지하였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 모임의 회원들은 1991년 2월, 도(都)의 이용 불승인 처분에 대해 헌법에서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의 권리와 사회 교육의 장에 있어서의 학습권이 침해 당했다고 하여 도쿄지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이것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법정에서 다뤄진 사건이었다.

가시화가 진행된 90년대

세이넨노이에 사건으로 인해, 법정이라는 공간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 의식이 여실히 드러나게 되었다. 도(都)측의 주장에는 동성애자의 시설 이용이 청소년들의 건전한 육성에 있어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고 방식이 명확히 드러나있었다.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희박한 상태에서 모임의 회원들이 커밍아웃을 했고, (그 사건으로 인해) 성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가시화되었다”고 가와구치 교수는 회고했다.

그에 따르면, 90년대 이전, “일본에서 성 소수자들은 체념한 상태로 지내는 수 밖에 없었다”. 동성애자여도 이를 속이고 이성과 결혼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초반이 되어 미디어에서도 커밍아웃을 하는 사람들이 서서히 나타나면서 성 소수자를 둘러싼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가운데 일어난 이 소송은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소송은 결국, 1997년 원고의 승소로 끝이 났다. 도쿄고등재판소가 도(都)의 이용거부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한편 90년대에 특히 게이 남성은 에이즈 문제와 함께 이중 차별을 당하고 있었다. 일단 일본에서 HIV감염자가 보고되면서, 에이즈와 게이를 자연스레 연결 지어 바라보는 사회적 차별이 가시화되었다. 게이인 환자가 입원하면, 가족에게 들키지 않아야 하므로 파트너 게이가 병문안도 갈 수 없고,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치료방법에 관한 동의서에 사인도 할 수 없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90년대는 동성애자로 사는 것에 대한 사회적 어려움이 서서히 사람들의 시야 속에 드러나던 시대였다”고 가와구치 교수는 말한다.

지금도 존재하는 차별과 배제

90년대와 비교하면 “좋은 방향으로 변화해온 것은 확실하다”고 가와구치 교수는 설명한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매일같이 성 소수자들을 본다고 해서 사회 내의 차별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가와구치 교수의 연구팀은 2015년 3월에 <성 소수자에 관한 전국 의식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미디어에서 성 소수자를 보고 들었던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람들은 87.5%로 높았다. 하지만 “직장 동료나 가까운 친구, 친척이나 가족 중에 동성애자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명확히 “있다”고 답한 사람이 5.3%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성별을 바꾼 사람”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1.8%였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가와구치 교수는 “상당히 낮은 비율이다. 커밍아웃을 하기 힘든 상황이 이러한 결과의 배경에 있다고 생각된다”고 설명한다.

조사 결과는, 성 소수자가 커밍아웃을 하기 힘든 사회의 현황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아이가 동성애자라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라고 물었더니 회답자의 72.4%가 “싫다”, “어느 쪽이든 골라야 한다면, 싫다”라고 답했다(자료1). 또한 “동료가 동성애자라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라고 물었더니 “40대남성·관리직”의 71.5%가 “싫다”, “어느 쪽이든 골라야 한다면, 싫다”라고 답했다(자료2). 바로 이러한 의식 환경이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을 방해하고 일상에서 성 소수자의 존재를 보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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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1) 가까운 사람이 동성애자라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자료2) 동료가 동성애자라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40대 남성, 직종별, 발췌)

(자료2) 동료가 동성애자라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40대 남성, 직종별, 발췌)

-「성 소수자에 대한 전국 조사:의식과 정책」보고회 자료

가와구치 교수는 “일반적으로 (성 소수자에 대한) 인지도는 높아진 반면, 가까운 사람이 성 소수자라는 사실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경향이 있다. 특히 가족은 높은 벽이다. (성 소수자가)학교 교원일 경우에도 학생이 저학년일수록 보호자의 저항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성애 사회와 호모포비아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배경에는 ‘호모포비아’라는 사고가 자리잡고 있다. 호모포비아는 ‘동성애 혐오’를 뜻한다.

“호모포비아는 원래 심리학 용어로, 개인이 가진 질병으로 개념화되어 왔다. 그러나 현재는 ‘개인’이 가진 성질의 문제가 아닌, ‘사회’에 구조화된 차별의식으로서 인식되고 있다.(가와구치 교수)”

호모포비아와 닮은 용어로 ‘강제적 이성애(heterosexism)’이나 ‘이성애 규범성(hetero normativity)’라는 단어가 있다. 즉 ‘이성애’가 사회의 보편적인 규범의 기준이 된다는 사고 방식이다. 동성애는 그 규범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서 차별당하고 배제되는 것이 된다.

“이성애를 규범으로 한 사회에서는, 동성애자가 증가하면 이성애 사회의 규범이 위협 받는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애 사회는 그 규범을 유지하기 위해서 동성애자를 소수자인 채로 남겨두려고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본가가 노동자들이 연대하지 않기를 바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가와구치 교수는 봉건사회에서 근대 공업사회로 사회가 변화하며 이성애 규범이 강화되어 온 측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국력 증강을 위해 ‘생산’과 ‘생식’을 장려해 온 근대국가가, 그것에 공헌하지 않는 성 소수자를 사회에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국력 증강을 목표로 하는 국가관과 호모포비아가 연결되어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사회에 침투했다. 호모포비아는 사회의 구조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차별의 내면화

가와구치 교수는 “성 소수자 중에서도 호모포비아를 내면화하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한다. 위에서 지적한 사건인 ‘세이넨노이에 소송’의 진행 과정에서도, 성 소수자 모임의 회원 중에 “차별 당해도 어쩔 수가 없다”, “입 다물고 있으면 문제가 없다”고 발언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사회의 호모포비아를 내면화 시킨 동성애자는 설령 자신이 당사자라고 해도 다른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감을 품고, 연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대로는 성 소수자가 언제까지고 뿔뿔이 흩어진 채로 차별 행위를 해소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차별이나 억압을 존속시키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전술한 대로 노동문제에도 같은 구조가 존재한다. 차별을 내면화한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 조건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일은 결코 없기 때문이다.

인식과 지식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일까. 가와구치 교수는 “성 소수자는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가까운 곳에도, 친구 중에도 가족 중에도 성 소수자는 존재하고 있다. 그러한 점을 우선 인식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올바른 지식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그는 “설령 적은 수의 사람이라도 성 소수자는 그곳에 존재한다. 그러한 ‘인식’과 함께 올바른 ‘지식’을 가질 것. 그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직장생활이나 방재(防災)를 위한 계획들을 고민할 때 성 소수자의 시점을 도입해가는 것도 방법이다. 즉, 다양한 상황과 장면들에서 성 소수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러한 시점을 도입해 나가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가와구치 교수는 또한 “커밍아웃을 하기 쉬운 상황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커밍아웃을 당사자에게 강요하는 일은 당연히 해서는 안 되며, 당사자의 자발성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대전제 위에서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기 쉬운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Leslie Kee라는 유명한 사진가가 5년간 1만명의 LGBT 사진을 촬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도쿄 레인보우 프라이드”와 같은 이벤트가 각지에서 개최되고 있고요. 그렇게 해서 성 소수자의 존재가 가시화되어 가는 것으로서 사회는 조금씩 바뀔 것입니다” 가와구치 교수는 기대를 담아 말한다. 그것은 커밍아웃과 주위의 이해 향상이라는 선순환을 낳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성(性)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성 소수자가 살기 좋은 사회는 이성애자에게 있어서도 살기 좋은 사회”라고 가와구치 교수는 말한다. 미국에는 성 소수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가 있다. 그곳에서는 성 소수자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로부터 이지메를 당하는 일 없이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다. 학교는 성 소수자 뿐만 아니라 “여자아이 같은 남자아이” 등 “젠더 규범에서 이탈했다”고 여겨지는 아이들을 받아들여 왔다. 가와구치 교수는 “다양한 성 성체성을 가진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은 이성애자에게도 혜택을 가져온다”고 이 학교의 의의를 설명한다.

게다가 성(性)이 다양한 것으로서 인정되는 사회에서는 “여성다움” 또는 “남성다움”이라는 젠더 규범의 구속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다. 가와구치 교수는 본인의 저서에서 “동성애자가 호모포비아에 직면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에서는 이성애자 또한 성에 관계된 다양한 규범과 구속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지고, 각자의 성(性)과 삶의 방식의 다양성이 존중 받게 된다”고 서술하고 있다(『동성애와 이성애』, 공저, 이와나미 서점). 성 소수자 문제의 본질 중 하나는 소수자 구제가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성(性)과 가족 형태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일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방향으로 연결될 것이다.

간략하게 보는 LGBT 근대사

1533년

헨리8세가 남색행위는 “자연에 반하는 범죄”라고 하여 사형(1861년이 되어서야 남색은 사형 이유에서 제외됨).

1895년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동성 간의 성 행위를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어, 2년 간의 노동형에 처해진다.

1897년

세계 최초의 동성애자 인권옹호 단체 “과학적 인도 위원회(Scientific-Humanitarian Committee)”가 베를린에 창설된다.

1933년

나치 정권 탄생. 45년에 종전되기 까지 나치 독일에 의해 수만~수십만의 동성애자가 학살된다.

1950년

 미국의 “매카시즘(McCarthyism)”으로 많은 동성애자가 공직에서 추방된다.

1951년

로스앤젤레스에서 게이 인권 운동 단체 “매커친 소사이어티(Mattaachine Society)” 설립

195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레즈비언 단체 ‘빌리티스의 딸들(The Daughters of Bilitis)’ 설립

1969년

뉴욕시 남부의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스톤월’이라는 바에서 스톤월에 개입하려는 경찰의 행위에 게이와 레즈비언 등 성 소수자들이  반발했던 사건 (스톤월 항쟁).

1970년대 초

동성애 탈범죄화와 탈병리화가 진행된다.

197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게이임을 공언한 하비 밀크가 시의회의 의원으로 당선

1980년대

미국에서 에이즈가 유행하던 시기로서, 게이에 대한 차별이 심해진다.

199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질병분류 중 정신장애애서 동성애를 삭제한다.
세이넨노이에 사건 발생(일본).

1997년

도쿄고등법원이 도쿄도 세이넨노이에에 의한 동성애자의 시설이용 거부는 위헌이라고 판결(일본).

2001년

네덜란드에서 세계 최초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다.

2004년

일본에서 성 동일성 장애자의 성 전환을 인정하는 특례법이 성립된다(일본).

2011년

국제연합 인권이사회에서 LGBT의 권리에 관한 최초의 결의가 채택된다.

2013년

영국과 프랑스, 브라질 등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다.

2015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헌법 상의 권리로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다.

2016년

이탈리아에서 동성 커플을 위한 법 제정

『동성애와 이성애』가와구치 가즈야, 가자마 다카시, 『직장에서의 LGBT입문』, NIJIIRO DIVERSITY 참고.

원제: 多様な性が尊重される社会に― 個々の性や生き方の多様さが尊重される社会に by Kawaguchi Kazuya @ 情報産業労働組合連合会 Report)
원문 게재일: 2016년 6월 16일
최종 수정일: 2016년 7월 8일
출처: 일본 정보산업노동조합연합회 Report(http://ictj-report.joho.or.jp/1606/sp01.html)
원저자: 가와구치 가즈야(河口和也)
번역: 지은
편집: M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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