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유투브 채널 <Super Deluxe>가 업로드한 섹스토이 공장 ‘리얼돌 팩토리’ 내부 영상 중 캡쳐

섹스돌은 이제 특별한 물건이 아니다. 섹스돌은 인간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 대화와 가사노동 기능까지 가능하며, 심지어 어떤 남성들은 섹스돌과 결혼했다. 1

섹스돌 제작은 꽤 까다롭다. 예쁘고 어리며 날씬한데 가슴과 엉덩이는 커야 한다. 가슴 사이즈는 더 커져도 좋지만, 팔다리나 허리둘레는 그렇지 않다. 몸체에 털이 있거나, 피부색이 검거나, 숏컷 헤어스타일인 섹스돌은 인기가 적어 소량생산된다. 섹스돌의 얼굴은 반드시 색소를 섞어 화장한 뒤 마무리한다.

찡그리거나 너무 크게 웃는 표정 연출은 용납되지 않는다. 하지만 섹스돌은 삽입이 목적이므로, 몸체만 있는 제품도 잘 팔린다. 얼굴 부위에 봉지를 씌워 다른 모습을 상상한다는 소비자가 있기 때문이다. 단, 누가 한번이라도 삽입한 섹스돌은 중고 상품이므로 질이 낮다.

눈치챘겠지만, 위 글 중 ‘섹스돌’이라는 단어를 ‘여성’으로 대체해서 읽어도 비교적 자연스럽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다음 문장 속 ‘여성’을 ‘섹스돌’로 바꿔 읽어보자.

여성은 꽃처럼 보기 좋아야 한다, 크리스마스처럼 25세가 넘은 여성은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여성이 너무 똑똑한 척을 하면 굉장히 밉상을 산다, 약간 좀 모자란 듯한 표정을 지으면 된다 2

여성의 삶과 섹스돌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3D 증강현실 포르노, 섹스돌·로봇이 진실한 사랑을 위협할 거라는 전망이 많다. 하지만 섹스 산업은 사회 속 섹슈얼리티·젠더를 반영할 뿐이다. 남성의 모습을 한 섹스돌은 드물다. 섹스돌의 소비 방식은 실제 여성을 대하는 방식과 별로 다르지 않다. 창세기조차 여성(이브)의 존재 목적이 남성(아담)의 ‘외로움 해결’이었다고 전한다.

섹스돌과 여성의 관계는 무엇일까? 피그말리온 신화에 실마리가 있다. 키프로스 왕 피그말리온은 여인상을 조각해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붙였고, 사랑에 빠져 아프로디테에게 아내로 삼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아프로디테는 그의 소원을 들어줬고, 피그말리온은 인간이 된 여인상과 결혼했다. 갈라테이아는 조각상처럼 수동적이고 대상화된 존재다. 그래서 피그말리온은 갈라테이아에게 자신의 환상과 욕망을 마음껏 투영할 수 있다. 남성인 피그말리온의 욕망 덕분에 갈라테이아는 심지어 사람이 된다.

여성이 사람이 되는 조건: 남성에게 인정(사랑)받는 것?

관용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또한 피그말리온 신화의 변주다. 상대방이 나무, 조각상이면 내 욕망만 바랄 수 있으니까. 피그말리온이 갈라테이아를 만든 배경은 자국 여인들에 대한 혐오였다. 키프로스 여인들이 나그네를 박대한 죄로 아프로디테의 저주를 받아 매춘부가 됐다는 이유였다(Cyprian(키프로스 사람)은 음란한 여자, 매춘부라는 뜻도 있다).

피그말리온의 여성혐오는  ‘남자에게 비호의적’, ‘정조 없음’이 핵심이다. ‘설치고 생각하고 떠드는’, ‘성경험이 많은’ 여성은 남성 기득권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결국 피그말리온 신화는 가부장제(피그말리온)가 고분고분한 여성(갈라테이아)을 조각해내며, 그런 여성에게는 조그만 권력(아내·어머니)을 부여한다는 이야기다. 결국 어떤 존재가 인간의 몸에서 나왔는지와는 관계없이, 사회 안에서 남성이 원하는 ‘것’만이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사람으로 오인받은 섹스돌 구출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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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암스테르담 경찰서 페이스북,난간에 걸린 섹스돌의 모습)

지난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는 섹스돌 구출 소동이 있었다. 한 주민이 난간에 매달린 여성을 신고했는데, 알고 보니 섹스돌이었던 것. 사람들은 안심했고, 우스운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 사건은 해프닝이 아니라 하나의 징후로 읽혀야 한다. 왜냐하면, 여전히 구출할 섹스돌은 넘쳐나기 때문이다. 가짜 신음소리를 내며 오르가즘을 연기하는 여성들, 웃지 않거나 화장을 안하면·진하면 지적받는 여성들, 능력보다 외모로 평가받는 여성들, 칙칙한 분위기를 살릴 꽃의 역할을 강요받는 여성들, 애인의 요구로 콘돔 없이 섹스하는 여성들까지. 그리고 몇몇은 섹스돌이 아닌데도 구출되지 못한 채 생을 마치기도 한다.

섹스돌의 모습이 보여주는, ‘여자’에 대한 요구

지금 전 세계의 여성들은 섹스돌과 인간 사이의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 최근 여성운동의 확산은 여성성을 상품화함으로써 실제로 살아있는 여성들까지 ‘섹스돌’로 만들려는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다. 최근 SNS에서 전파된 ‘#나는_창녀다’ 선언도 여성들의 위태로운 위치를 지적한다. 이 해시태그가 ‘#나는_창녀가_아니다’가 아니었다는 점은, 성녀와 창녀 구분이 여성의 자의가 아니며, 명백히 자신이 원한 적 없는데도 창녀가 되기를 요구받는다는 점을 꼬집기 위함이었다.

‘여자의 외피’를 가지고 누군가 이상한 짓을 하려 한다면, 그건 인격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니 괜찮다고 말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는 피그말리온 효과는, 반복·재생산되는 일방적인 환상이 환상으로 끝나지 않고 결국 실재로 다가올 것이라는 의미로 봐야 한다.

글쓴이: 도우리
편집자: 진달래

 

Notes:

  1. 허핑턴포스트 기사 ‘섹스돌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질까?’
  2. 2016.2.3 김을동 의원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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