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여자 혼자 새벽에 돌아다니지 말았어야지.” “그러길래 좀 더 조심했어야지.” 대표적인 피해자 비난(victim blaming) 발언이다. 물론, 피해자를 비난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변명처럼, 이들이 피해자가 전적으로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발언은 그들의 기준으로라면 나름 ‘선의’에 기반한 것일지도 모른다. 피해자 비난을 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살펴보면, 범죄가 어디서 어떻게 발생할 지 모르니, 피해자가 애초에 범죄가 생길 여지를 최대한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는 뉘앙스를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피해자를 비난하는 발언은 피해자에게 사건에 대한 책임의 일부를 전가하며, 때로는 그 과정에서 사건의 발생과는 무관한, 잘못된 사회 통념들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여성 관련 범죄에서 어김없이 나타나는 피해자의 ‘행실’이나 ‘옷차림’ 에 관한 언급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여기서 나아가, 피해자의 특정 행위 또는 특징이 사건 발생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믿음의 근저에는 해당 피해자의 존재 자체가 범죄를 촉발(trigger)했다는 암시가 있다. 이러한 태도는 범죄 사건의 기저에 깔린 근본적인 사회 문제를 외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피해자 비난은 범죄의 성격에 따라 그 강도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예를 들어 성범죄의 경우 여성보다 남성이 더 피해자 비난을 한다고 한다), 연구에 따르면 특정 그룹의 사람들은 피해자 비난을 하는 경향이 평균보다 높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A라는 범죄자가 B라는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했다’와 같이 명명백백한 사실을 그냥 사실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왜 그들은 1) 범죄자 A를 비난하기, 2) 피해자 B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진 범죄 상황에서 어쩌면 그 상황에 처하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가상의 상황과 조건을 생각해보기, 이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굳이 더 복잡하고 비합리적인 2번의 반응에 더 집착하는 것일까?

니미(Niemi)와 영(Young)이 진행한 연구 1에 따르면, “개인적 가치”(individualizing moral value)와 “결속 가치”(binding moral value) 중 어떤 도덕적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지에 따라 피해자 비난 성향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개인적 가치는 어느 형태의 위해(harm)든 무조건 지양하는 태도를 지칭하며, 결속 가치는 구성원이 속한 공동체의 안정을 모든 가치의 중심에 두는 것을 일컫는다. 결속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다수’를 위해 몇몇 개인은 희생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두 도덕가치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다만 사안에 따라 두 가지 가치 중 어느 하나가 다른 가치에 대한 상대적 우위를 점하곤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은 여러 가치에 걸쳐 결속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성향을 보인다.

앞서 말했듯이, 개인적 가치를 결속 가치보다 우위에 두는 경우, 해당 개인은 A라는 범죄자가 B라는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집중한다. 그러나 결속 가치를 개인적 가치보다 더 중시하는 개인은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를 비난하는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과거 연구에서는 결속 가치에 우위를 두는 개인들이 피해자 비난을 하는 이유 중 하나로서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을 들기도 했다. 이들은 세상이 반드시 공정하게 돌아간다고 믿기에,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부당하게 입은 피해를 그 자체로 직시하지 못하고 그것이 피해자의 어떤 행위에 의한 반작용일 것이라고 생각해버린다고 한다. 이렇게 있지도 않은 피해자의 잘못을 가정해야만 그들이 믿는 “공정한 세상”(just world)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기존 연구들에 따르면 결속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경향이 있으며, 사람들을 그들이 속한 사회적 계급에 따라 차별하는 행위에 대해 동의하는 경향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그들이 진행한 총 4가지 연구 중, 니미와 영은 먼저 2건의 연구를 통해 결속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피해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아보았다. 연구마다 300명 안팎의 참여자가 범죄 상황에 대한 서술을 읽고 나서 주어진 설문에 답을 했다. 이 연구들에 의해 밝혀진 바는 다음과 같다. 결속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1) 피해자가 피해를 입었다(injured)고 인정하기보다 불명예를 입었다(stigmatized)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2) 피해자가 사건의 발생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두번째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결속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가해자의 행위에 덜 주목(focus)한다는 점을 알아냈다. 이 점에 착안하여 니미와 영은 사건에 대한 서술의 초점을 피해자에게 두는지 가해자에 두는지가 사람들이 피해자를 비난하는 정도에 영향을 주는지를 추가로 2건의 소연구를 통해 알아보았다. 한 사건을 가해자 중심으로 가해자 중심으로 서술했을 때(“댄은 리사를 성폭행했다”)와 피해자 중심으로 서술한 방식(“리사는 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을 비교한 결과, 사람들은 피해자 중심으로 서술한 글을 읽었을 때 더 강한 피해자 비난 성향을 보였다 .

이 연구에 따르면, 어떤 사건에 대해 피해자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 그것이 피해자에 대한 연민이든 이해든지 간에 – 무의식 중에 피해자가 사건의 형성에 기여한 바가 높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성 언론은 그 동안 수 없는 여성 대상 범죄에서 피해자 여성에 초점을 맞춘 보도를 해왔다. 이러한 관행이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바라보는 작금의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 일조해온 것이다.

따라서 사건의 피해자에 주목하거나 피해자의 지난 행적, 행실을 사건에 연결시켜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위는 인지적 편향에 기인한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2 3 또한 피해자에 대한 귀책과 의심은 범죄 해결과 사회적 시스템의 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를 악화시킨다. 4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연루된 사건에서, 특히 그들이 피해를 입은 범죄 사건에서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피해자에 대한 의심을 근거로 기계적인 중립을 견지하는 것은  비합리와 편견을 공정함으로 위장하는 일에 불과하다.

글쓴이: JH

편집: 김나영

Notes:

  1. Niemi, L., & Young, L. (2016). When and Why We See Victims as Responsible The Impact of Ideology on Attitudes Toward Victim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0146167216653933.
  2. 이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사건의 결과에 대해 알고난 사건의 발생 확률에 대해 판단할 때에 사건의 결과를 몰랐을 때보다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Janoff-Bulman, R., Timko, C., & Carli, L. L. (1985). Cognitive biases in blaming the victim.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21(2), 161-177.](https://www.researchgate.net/profile/Ronnie_Janoff-Bulman/publication/223081344_Cognitive_biases_in_blaming_the_victim/links/0f3175310a0343d5a6000000.pdf)
  3. 이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한 사건을 마주했을 자동적으로 사건이 현실과 다른 결과를 있었을지에 대해 상상하는 경향(counter-factual thinking)이 있다고 한다. 저자들은 이러한 사고 경향이 기억의 부하를 줄이기 위한 인지적 편향의 하나라는 설명을 제시한다. [Goldinger, S. D., Kleider, H. M., Azuma, T., & Beike, D. R. (2003). “Blaming the victim” under memory load. Psychological Science, 14(1), 81-85. ](https://www.researchgate.net/profile/Stephen_Goldinger/publication/10919296_Blaming_the_victim_under_memory_load/links/0fcfd505ca46ca4e1d000000.pdf)
  4. 이하 연구에 따르면 개인의 질병에 대한 책임을 해당 개인에게 전가하는 태도가 만연해짐에 따라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 민간 업체들이 마땅히 져야 책임을 충분히 추궁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한다. [Crawford, R. (1977). You are dangerous to your health: the ideology and politics of victim blaming.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services, 7(4), 663-680.](http://joh.sagepub.com/content/7/4/663.sh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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