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서 남성들이 느끼는 ‘남자다움’에 대한 압박감이 ‘여성성’에 대한 경계심으로 이어진다는 점, 그리고 남성 간의 관계는 곧 권력 투쟁과도 같다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남자들의 대인관계에서 여성들은 어떤 역할을 차지할까요?

정서적 안식처로 소비되는 여성들

“애인의 좋은 점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 가지가 있다면 남자한테 못할 얘기를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그게 좋잖아요. 친한 친구랑 할 수 있는 얘기가 있고 또 애인하고 할 수 있는 얘기가 다르거든요…” (사례 2, 29세, 대학 졸업)

“(남자친구와 못하는 얘기를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나요?) 전 애인 말고는 여자친구가 없는데요… 더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많죠. 왜냐면 전 여자친구가 다른 친구보다 약간 더 수위가 더 높고, 그런게 이성친구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 공유… 뭐 숨기거나 그런 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례 4, 24세, 대학 휴학 중)

답변자들은 대부분 ‘애인’으로서의 여성들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답변자들은 미혼의 사회 초년생들이었지만 애인에게 ‘아내’와 비슷한 역할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현대 산업 사회로 접어들면서 공적 영역에서의 대인간 감정 교류가 현저하게 적어졌기에 정서적 친밀감에 대한 갈증을 애인 혹은 아내와의 관계를 통해 해소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갈증의 기저에는 “홀로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놓여있습니다.

“나 같은 경우에는, 그런 감정적인 얘기들은 주로 여자 친구에게 얘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애. 남자들과 똑같은 친밀도라면 주로 여자들에게 하게 되지 (…) 남자들 사이에선 안 하게 되니까 (…) 남자끼리 그런 얘기를 하는 거 자체를 되게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애. “ (사례 6, 28세, 대학 졸업)

비단 애인 뿐 아니라 ‘여자 사람 친구들’도 남성들의 정서적 의존 상대가 됩니다. 남성 친구들 사이에만 있을 때 발생하는 정서적 거리를 메워주는 역할을 여성들이 맡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할 분배는 “마치 대선 TV토론회의 여성 패널이 통상적으로 ‘부드러운’ 질문을 담당하며 분위기를 딱딱하지 않게” 이끄는 것과 같은 “감정노동의 성별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남성들이 여성들을 정서적, 관계적 자원으로 여기며 여성들에 의존하는 것은 그들을 자신과 동등한 위치의 ‘경쟁 상대’ 혹은 주체로 보지 않고 타자로 여기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여자가 없어야 남자들끼리 끈끈해진다고?

“(…) 사실 뭐 남자들이 술 먹고 못하는 게 뭐 있어요.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당구도 하고 다 하는데… 여자애들이 끼어 있으면 그런 데는 피하고 2차를 가거나 노래방을 가거나… 그러니까, 놀 때에도 여자애들이 끼어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바뀌고… 그런 게 어떻게 보면 ‘남자들끼리의 뭔가가 있다’라는 게 은연중에 형성이 돼 있는 거 같애요.” (사례 3, 22세, 대학 휴학 중)

“축구 사이트에 똑같은 정보를 가지고 똑같은 글을 쓴다고 해도 남자가 그런 걸 했을 때 여자가 한 거하고 평가가 완전히 달라지더라구. 왜 달라질까 그게? 그러니까 여성이 뭔가를 얘기했을 때는 아무리 똑같은 얘길 해도 ‘얘는 축구의 참 맛을 모른다,’ ‘그렇게 보는 게 아니다’…” (사례 5, 27세, 대학 졸업)

흔히 남자들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스포츠와 폭음은 정서적 친밀감보다 육체적 강함이 중시되는 놀이 문화입니다. 이러한 강인함은 남성들 사이에서 우월한 가치로 공유되며, 스포츠나 음주를 통해 각자의 남성성을 확인함으로써 남성들은 서로에 대한 동질감을 느끼게 됩니다. 진정한 우정은 이러한 동질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는 믿음이 남성들 사이에서 만연하고, 이는 곧 자연스럽게 여성의 배제로 이어집니다. 남성 간 유대는 ‘여성이 끼어들지 못하는 영역’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운동권 내의) 여성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어느 조직이든 늦게까지 술자리에 남아있지 못하면 중심까지 못 가는 거 아니야 (…) 아무래도 그런 사람 맡길 때는 정책이나 이런 거보다 문화면이라든지 자보 만들고… 이런 역할이 많이 주어지고. 그런 건 중심이 아니니까. 그리고, 심지어 여성이 늦게까지 남고 그러면 연애의 대상으로 구분이 되는 거야” (사례 5, 27세, 대학 졸업)

“친구들과 술을 계속 마시다 보면 가끔 (성매매 업소에) ’가자!’ 그렇게 되죠. 그러면 그때는 뭐 다 찬성이죠. 돈만 있으면. 여자 친구가 있든 없든 (…) (그런 경험이 있게 되면 친구들 사이에 분위기가 어때지나요?) 정 같은 게 쌓인다고 그래야 되나? 서로의 추억이 하나 더 생기는 거죠.” (사례 9, 26세, 대학 졸업)

강하고 우월한 남성이라는 동질감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동성 친구 집단 내에서는 어떻게든 여성을 차별화하고 배제하려는 현상이 자주 발견됩니다. 여성의 배제는 남성성에서 비롯한 동질감이 결여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 아니라, 집단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우월감을 과시하고자 하는 남성들의 노력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특히 대학 내 학생 조직에서의 여성 배제가 매우 심각합니다. 정치는 남성의 영역이라는 고정관념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여성들은 학생 조직의 주체적 구성원이 되기 힘들고, “성적 대상 및 도구적 존재”로써의 역할만을 맡게 됩니다. 여성 멤버들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품평회는 동성집단 내에서 욕망의 대상인 여성을 ‘교환’함으로써 남성 간 연대가 강해지는 현상으로 해석 가능합니다.

사례 9의 인터뷰에서 여성 성적 대상화 및 성매매가 남성 간의 연대를 공고히 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현상이 잘 나타납니다. 남성 집단에서 성매매는 단순히 성욕 해소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과 의리의 문제입니다. 또한 동행 없이 혼자 성매매 업소에 간다고 답한 인터뷰 참여자가 없었다는 점과 주로 술자리 등의 집단 문화를 통해 성구매를 하게 된다는 답변들로 미루어보아, 성구매를 부추기는 것은 남성들의 생물학적 성본능이 아닌 “지배적 남성성의 영향을 받는 동성 집단 문화의 의례적 과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여성들은 남성들의 관계에 결여된 정서적 친밀감을 제공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남성 집단의 결속력 강화를 위한 배제, 타자화, 성적 대상화의 피해자가 됩니다. 남성들은 “자신들의 성별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지배적 남성성 실천의 부산물인 정서적 한계를 메우기 위해” 이중적 방법으로 여성을 소비하고 통제하는 것입니다. 최근 크게 논란이 된 여러 대학의 단톡방 성희롱 사건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일어난 일이지요. 남자들끼리의 공간에서 여자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격하시켜 외모를 품평하고 성희롱하면서 가해자들은 지배적 남성성을 과시하는 쾌감과 끈끈한 유대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강인하고 독립적으로 자라나야 한다는 남성성의 굴레가 무겁다고 해서 구조 속 피억압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글: 최호연
편집: 박정흠

참고 문헌
조중헌(2004), 한국사회 남성의 동성간 관계와 성별위계구조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한양대학교 대학원.

댓글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