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몇 번 유행을 좇으려 할 때마다 무자비하게 실패하곤 했던 나같은 비주류에게, 우연히 문화적 유행의 산물이 되어버리는 것만큼 낯선 경험은 없을 것이다. 이토록 주류형 인간이 아닌 내가, 제목에 “소녀”가 들어간 책을 쓰다니 결국 좋든 싫든 유행에 편승한 셈이다.

소녀 유행을 분석하는 것 자체도 일종의 유행이 되었다. 하지만 이 분석 글들은 종종 소녀 책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다. 하나는 실제 미성년인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고, 다른 하나는 주인공인 성인여성을 소녀라 부른 책이다. 이 두 가지를 섞어놓는 것은 단순히 출판시장이 얼마나 소녀스러워(girly)졌는지 생각해 볼 때만 (대답하자면 매우 그렇다) 말이 된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호의적인 웨이터나 구세대적인 고용주에게 여자애라 불려본 적 있는 삼십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선거연령 이상의 여성들에게는 여자애 또는 소녀라는 말이 다른 의미를 시사한다는 것을.

선거권 연령을 지난 사람을 ‘소녀’라 부른다는 것은?

성인을 소녀로 일컫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거의 항상 <사라진 소녀  (Gone Girl, 한글제목 “나를 찾아줘”)> 타입의 상처입고 투쟁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런 식의 여성에 의한, 여성에 대한, 소녀 이야기는 장르와 매개체를 초월해 유행하고 있는 문화의 한 갈래일 뿐이다. 지난 몇 해간 우리는 <밴드하는 여자애> (*편집자 주: Girl in a Band, 록밴드 소닉유스 Sonic Youth 멤버 킴 고든/Kim Gordon의 회고록), <쥐 소녀 Rat Girl> (*록밴드 쓰로잉 뮤지스(Throwing Muses)와 50풋웨이브(50 foot wave)의 실질적 리더인 크리스틴 허쉬(Kristin Hersh)의 회고록), <폭력 소녀> (*Violence Girl, 펑크밴드 백스(Bags)의 창시자인 펑크록커 페미니스트 앨리스 백(Alice Bag)의 회고록), <굶주림이 날 현대소녀로 만든다> (*Hunger Makes Me a Modern Girl, 펑크록커 캐리 브라운스틴(Carrie Brownstein)의 자서전) 에서의 성인인 록커 “소녀들”과 <실험실 소녀> (*Lab Girl, 저명한 지구화학자이자 지구생물학자인 홉 야렌(Hope Jahren)의 과학적 발견과 개인으로서의 삶에 관한 책), <핵도시의 소녀들> (*The Girls of Atomic City, 세계 2차 대전 중 미 정부가 암암리에 영문 모르는 어린 여성들을 테네시 주의 오크리지(Oak Ridge)라는 도시로 데려와 핵폭탄 제조를 위해 노동을 착취했던 역사적 사건에 관한 데니스 키어난(Denise Kiernan)의 고발성 회고록), <로케트 소녀들의 비상> (*Rise of the Rocket Girls, 미국의 첫 인공위성발사를 성공시킨 4-50년대 “인간 컴퓨터” 천재 여성들에 관하여 나탈리아 홀트(Nathalia Holt)가 자료조사와 실제 인물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집필한 책) 등의 과학 소녀들의 등장을 목격했다.

세계 2차 대전 소녀, 발레 소녀, 기자 소녀…

<라일락 소녀들> (*Lilac Girls, 실존인물인 캐롤린 패리데이 (Caroline Ferriday)가 세계 2차 대전 중 뉴욕 사교계의 여왕에서 나치수용소 수감자들의 삶을 바꿔놓는 영웅이 되기까지의 역사적 삶을 담은 소설) 에서와 같은 세계 2차 대전 소녀들, <유리창 저편의 소녀> (*Girl Through Glass, 뛰어난 재능의 어린 소녀가 연상의 멘토를 만나 발레리나에서 교수가 되기까지 격정적인 삶 속에서 자신의 어두운 면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 의 발레 소녀, <착한 소녀들의 혁명> (*Good Girls Revolt, 웹드라마화 예정인 린 포비츠 (Lynn Povich)의 자전적 회고록. 린 포비츠는 1970년대 자신이 근무하던 뉴스위크사를 성차별 혐의로 고소를 통해 기업문화를 바꾼 여성기자단의 중심인물) 와 같은 기자 소녀도 있다.

TV에서도 빠질 수 없는 소녀 열풍

물론 <투 브로크 걸즈> (*직역: 두 명의 파산녀 (2 Broke Girls), 올해 10월 시즌 6 방영예정인 CBS사의 시트콤으로 백만장자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집안의 몰락으로 빈털털이가 된 캐롤린과 가난하게 자란 맥스라는 여성 주인공 두 명이 음식점 종업원으로 만나 우정을 쌓고 함께 창업과 실패를 반복하는 성장 코메디), <뉴 걸> (*New Girl, 3명의 싱글남 하우스메이트를 둔 여성(쥬이디 샤넬 분)주인공의 성장 코메디), <슈퍼걸> (*Supergirl, 슈퍼맨의 사촌으로, 슈퍼맨과 마찬가지로 초능력을 가진 성인여성 슈퍼걸이 주인공인 슈퍼히어로 액션 드라마), <걸스> (*Girls, 골든글로브 수상자인 리나 더넘(Lena Dunham)이 제작하고 출연하는 뉴욕에 사는 네 명의 젊은 성인 여성들의 삶에 관한 HBO의 코메디 드라마. 2017년 마지막 시즌 6 방영 예정) 와 같이 정체성을 찾으려고 애쓰는 성인 소녀들에 관한 TV물들도 빼놓을 수 없다.

또, <착한 소녀의 섹스 가이드> (*Good Girl’s Guide to Sex, 강연자이자 작가인 쉴라 그레고아(Sheila Gregoire)가 쓴, 굴곡진 삶이 아닌 “착한” 삶을 살아온 여성들을 위한 섹스 가이드), <모던걸의 성경 공부> (*Modern Girl’s Guide to Bible Study, 젠 햇메이커(Jen Hatmaker)의 현대 여성을 위한 즐거운 성경공부 방법), <흰 드레스를 입은 소녀들> (*Girls in White Dresses, 작가 제니퍼 클로즈(Jennifer Close)의 단편소설로서 주변 사람들이 다 결혼하는 동안 스릴 넘치는 경험을 하는 세 명의 여자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 <뚱뚱한 소녀를 바라보는 13가지 방법> (*13 Ways of Looking at a Fat Girl, 여성에게 지나친 외모의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 풍조를 해학적으로 비판하는 모나 아와드(Mona Awad)의 이 소설에서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날씬해지기 위해 많은 것을 잃는다) 도 있고, 에이미 슈머 (*Amy Schumer, 에미상 수상자로, 요즘 매우 핫한 스탠드업 코미디언. 자신의 이름을 딴 TV 코메디 시리즈 <인사이드 에이미 슈머(Inside Amy Shumer)>는 시즌 5 방영을 앞두고 있다) 덕에 곧 <등 아래쪽에 문신을 한 여자애> (*The Girl With the Lower Back Tattoo, 저자 에이미 슈머의 회고록으로 영화화된 소설 <용 문신을 한 소녀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한글제목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제목을 패러디)도 곧 나올 예정이다.

한마디로 거의 모든 타입의 여성에 대해 소녀가 소환되는 셈이다. 그 이유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캐슬린 한나(Kathleen Hanna)의 사례

1992년, 여성펑크밴드의 리더였던 23살의 캐슬린 한나는 정당한 사유의 분노로 가득차 있었고, 펑크밴드 커뮤니티 및 사회 전반의 여성혐오에 대항해 뭔가 급진적인 일을 하고자 했다. 그렇게 라이엇걸(Riot Grrrl) 운동이 탄생했다.

라이엇걸은 “걸파워”라는 단어의 현대적 용법를 창출해냈다. 자발적으로 대중매체를 도외시한  10대들과 젊은 여성들의 정치적 운동이었던 라이엇걸은 지금은 마치 에스트로겐이 촉발한 음악적 유행 현상이었던 것으로 (잘못)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음악은 “바로 지금 혁명적인 소녀 스타일을”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몇 년 후 “걸파워”는, 입을 맞춰 노래부르며 립스틱 페미니즘 (*편집자 주: 여성의 전통적 성역할을 거부하는 1-2세대 페미니즘과 달리, 페미니스트 스스로 전통적인 여성성을 드러낼지 거부할지, 또 성생활을 즐길 것인지 등의 여부를 결정할 자유가 있다는 3세대 페미니즘의 일종) 의 전조를 알렸던 스파이스 걸즈(Spice Girls)가 가져갔다.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반발은 그만하고, <섹스 그리고 독신 소녀> (*번역자 주: Sex and the Single Girl, 후에 코스모폴리탄의 초대 편집장이 된 헬렌 걸리 브라운(Helen Gurly Brown)이 1960년대 여성들에게 고정적 직장을 가지고 여러 남자와 캐주얼한 섹스를 즐기라고 권고해 큰 성공을 거둔 책) 스타일을 또 한 번 일으켜세우자는 거였다. 여전히 “걸파워”는 그 혁명적 근원의 아우라를 지니고 있는 말이다. 라이엇걸 운동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서술한 책 <소녀들이여, 앞으로! (Girls to the Front)>에서 사라 마커스(Sara Marcus)는 “나는 실제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소녀들에게서 힘을 빼앗아간 사회에 살았기 때문에 무력하다고 느꼈던 것이다”라고 회고했다.

‘여자애’는 아직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에 대한 호칭인가?

물론, “여자애”는 명백한 멸시로 느껴질 때도 있고 (예: 힐러리 클린턴을 여자애라 지칭하는 경우), 명백한 유머로 느껴질 때도 있다 (예: 힐러리 클린턴이 스스로를 여자애라 지칭하는 경우). 내 여성 친구들을 상대로 한 매우 비과학적인 설문조사 결과, 자기 자신을 여자애라 지칭하는 것은 거의 항상 정확하며 용납가능한 호칭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남성에게 그렇게 불리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친구 M은 “여성이 여성스러운 것을 비하하려는 의도로 쓰일 때나, (특히 연상의) 남자가 여자를 그렇게 부르는 건 신경에 거슬려. 숙녀분들(ladies)이란 말도 마찬가지야. 그 “숙녀분들”이 실은 자기 고환을 가져가려는 마녀라는 의미를 완벽히 배제하고 그 말을 쓰는 남자를 난 단 한 번도 본 적 없어.”

C의 경우, 20대엔 스스로를 늘 여자애라 지칭했지만, 더이상은 적절치 않게 느껴진다고 한다. “내가 30살이 된 해에 출산을 했어. 아마 그래서 변화했는지도 모르겠어. 여자애의 엄마가 되면 더이상 여자애일 수가 없잖아.”

“여자애” 이야기들에 숨겨져 있는 공통된 주제가 있다면, 그건 바로 누군가였던 여자애로부터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인 여성으로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여자애라는 단어는 이러한  변화로부터 우리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알려주는 동시에, 원상태로의 회귀 가능성 또한 제시한다. “그냥 여자애일 뿐”라고 지칭되는 것은 비하일 수 있지만, 스스로를 “아직 여자애일 뿐”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여성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empowerment)있다. 젊고 어린 시절 누구에게도 속박되지 않은 자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um)이 우리에게 종종 상기시켜주듯, 여성은 나이를 먹으면서 힘을 잃는다. 소녀로서의 삶을 계속 주장하는 것은 전장의 포효로서 기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나 호바쓰 Hannah Horvath 1의 사례

혹 당신 자신이 한나 호바쓰를 싫어하지 않더라도,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 한 명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자기중심적, 자기도취적, 나르시스트적이며, 경제적으로나 성적으로 방종하고, 자신 이외의 타인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무책임한 이 <걸스>의 주인공 한나 호바쓰는, 적극적인 네티즌들의 여론에 따르면, 여성의 “성인사춘기(adultescence)”를 악몽에 가까운 극단으로 몰고가는 캐릭터이다 (“여성”이 특히 중요. 왜냐하면 우리는 <걸스>의 막나가는 남자애 캐릭터들은 선뜻 사랑하니까). 공정하게 말하면, 여기서 여자애들은 연애, 육아, 커리어를 시도하며 성인여성을 사칭하려다가, 때로는 대량의 사상자를 유발하며 결국 처참히 망해버리고 마는, 막나가는 나르시시스트들이다. 물론 나는 등장인물 모두를 아낀다. 사심을 인정하자면 특히 한나를 제일 아낀다.

저드 애퍼토 (*번역자 주: Judd Apatow, <비긴어게인 Begin Again>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 Trainwreck>등 의 감독)는 방황하는 성인 소년들의 수호성인으로 명성을 얻었고, 이제 그 명성을 활용해 레나 더넘같은 여성들이 여성 버전의 피터팬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충격적이지만, 관객은 세스 로건 (*편집자 주: Seth Rogen, 82년생 남배우, 스티브잡스와 함께 애플을 공동설립했던 컴퓨터 엔지니어 스티브 워즈니악으로 분한 바 있다)처럼 생긴 매력적인 결점투성이의 주인공을 아끼고 원하지만, 그 결점투성이의 인물이 여성일 경우엔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특히 그 여성이 섹스를 많이 하고, 자신 이외의 타인은 보살필 생각이 전혀 없다면 말이다.

파일럿 에피소드에서, 한나의 부모는 한나에 대한 금전적 지원을 끊는다. 많은 이들이 이를  한나 캐릭터의 유아적인 면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고 일컫지만, 실은 정반대다. 이는 <걸스>가 어떻게 하면 여성이 자신의 가장 큰 장점들을 잃지 않은 채 성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시리즈라는 것을 보여주는 촉매제이다. 바로 이 점으로 인해 <걸스>라는 제목은 필수불가결하다. 물론 장점들을 간직한 채 성인으로 살아가려는 이 과정에서 가끔씩은 에티켓이나 기본적인 예의범절을 놓칠 때도 있지만 말이다. <걸스>의 여자애들은 단순히 성숙하지 않아서 여자애들인 것이 아니다. 그들이 실은 살아 움직이고 있는 물음표들이기에 그런 것이다. 한나도 파일럿 에피소드에서 얘기하듯, 그들은 아직 그들 자신이 되기 위해 노력하느라 바쁘다.

코미디언 루이스 C.K.(Louis C.K.)에 따르면 여자애와 여성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22살 여자애들은 ‘난 22살이야, 완전 여자라고’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미안하지만 나한텐 그렇지 않아. 애 한둘 낳고 삶이 시궁창에 빠지기 전까진 여자가 아냐. 네 질 속에서 사람이 나와서 네 꿈을 산산조각 내야 비로소 여자가 되는거야.

아무데에도 얽매여있지 않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왜 여자애란 호칭이 붙는지는 이해하기 쉬운 반면, 이미 인생에서의 성인 단계에 굳건히 뿌리를 내린 여성들에게 왜 그 호칭이 적용되는지는 덜 분명하다. 그러나 “여자애” 이야기가 루이스 씨케이가 정한 임계점을 보완하는 용도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그들이 생각하는 “여자애”란, 자기 질 속에서 나오는 사람들같은 사소한 것들이 자신의 꿈을 망가뜨리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여성인 것이다.

기자인 레베카 트라이스터 (*편집자 주: Rebecca Traister, 2008년 미 대통령 선거에서 여성 정치인과 유명인들이 미친 영향과 기여도를 사실적으로 회고한 2010년 뉴욕타임즈 올해의 주목할 만한 책 <다 큰 여자는 울지 않는다 (Big Girls Don’t Cry)>의 저자)는, 싱글 여성들의 부상을 다룬 최근작 <모든 싱글 여성들 (All the Single Ladies)>을 셰익스피어의 비극마저도 결혼보다는 아름답고 동화적이라고 확신했던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시작한다. 소녀시절 읽었던 문학 속 주인공들의 결혼 궤도는 “로맨틱하다는 설정이었지만, 적막하게만 느껴졌다. 말썽피우던 친구들, 음모를 꾸며대던 자매들, 심술궂은 사촌들, 상처와 모험, 또 희망과 열정으로 점철되어 한때 드넓기만 했던 길은 좁아지고, 오로지 지루한 남편 보살피기와 무미건조한 자녀 양육으로만 이어지는 듯 했다. 그녀들의 이야기 또한 남편과 애들의 이야기로 대체되고 말이다.”

비소설 코너에 가득한 소녀 타이틀을 단 책들은 그 드넓은 진로를 고수하자고 주장하는 여성들에 관하여 바로 그 여성들이 쓴 책이다. 조 마치 (*번역자 주: Joe March, <작은 아씨들>에 등장하는 천방지축에 거칠고 독서를 좋아했던 둘째 딸)처럼 스스로의 삶에서 조연이 되는 길로 마치(*편집자 주: 행진, Joe March의 이름을 이용한 언어유희)하기를 거부하는 이 여성들에게 여자애 되기 그 마음가짐에 달려있는 것이다.

여자애 또는 소녀라는 단어는 음악이나 과학 분야 여성들에게 특히 자주 부여된다.

그들의 성취를 폄하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상패처럼 말이다. <밴드하는 여자애>, <실험실 소녀>, <굶주림이 나를 현대적 소녀로 만든다>, <로켓 소녀들의 비상>의 여성들은 모두 소녀시절의 열정을 좇아 남성지배적인 분야에 진출해 승리를 거두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주어진 성역할을 전복하고, 장벽을 허물고, 그리고 적어도 책 속에서는 일과 예술을 가사돌보미 역할보다 우선시하는 하는 것을 담고 있다.

<밴드하는 여자애>에서 저자 킴 고든은 그녀가 몸담았던 밴드 소닉 유스의 부상에 관한 이야기 중 잠시 딸의 탄생을 언급한다. “딸로 인해 우리 삶이 변했고, 이 세상에서 딸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내게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 밴드는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고든은 커리어 전반기를 밴드에 속한 여자애라는 건 어떤 기분인지 질문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기자들을 상대하며 보냈다. 출산하자마자 그 질문은 “록커엄마가 된 기분이 어떠세요?”로 바뀌었다. 딸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일 순 있어도, 그녀의 음악과 포부, 또 창의욕구와는 거의 관계 없는 이야기인데도.

고든은 진정한 자신을 표현하는 어려움에 대한 돌파구를 찾는 것이 예술을 통해서만 가능했다고 회고한다. “내겐 오로지 책과 갤러리, 그리고 무대만이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곳이다…예술, 그리고 예술을 만드는 과정, 그것만이 오롯이 내 것이었다.”

레이첼 왓슨 Rachel Watson 2의 사례

기차를 타고 가는 여자애는 지금 엉망인 상태다. 이 알콜중독에 실업자인 이혼녀는, 버림받은 여자 이외의 역할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런 그녀가 <걸 온 더 트레인>의 중심이 되는 미스테리를 풀 수 있던 것은 오로지 간통을 한 그녀의 전남편과 그의 새 부인과 아이에 대한 한심할 정도의 병적 집착 덕분이었다. 이 책의 반전들을 밝히진 않겠다. 그저 이 책에서의 남편들과 아이들은 잘 풀리지 않는다고만 해두자.

폴라 호킨스의 이 소설에는 삼각편대를 이루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남편을 잃은 슬픔과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절망에 빠져있다. 또 한 사람은 아이를 잃은 사실을 꾸준히 부정하며 결혼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 나머지 한 사람은 본인의 욕망을 배제하면서까지 아내와 엄마로서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해내다가 큰 대가를 치루는 비극을 맞는다. 이 소설은 정신을 좀먹는 가정생활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그에 대한 자각이 필연적으로 남기는 참을 수 없는 공허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레이첼은 결혼으로 인해 존재가 지워진 아내로, 모든 면에서 자유와 반대된다. 더 이상 아내가 될 수 없게 되자, 레이첼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 <걸스>의 여자애들이 그렇듯, 그녀 또한 아무데에도 얽매여있지 않지만, 이는 자발적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다. 그녀가 가진 모든 여성(woman)적인 면을 빼앗겼기 때문에 그녀는 기차를 탄 여자애인 것이다.

그녀의 암울한 자아 성찰은 이런 식이다. “나는 상실감에 술을 마셨고 술을 마셔서 상실했다. 내 일을 좋아했지만, 화려한 커리어를 갖고 있던 건 아니다. 설령 그랬다고 한들, 솔직히 여자들의 효용가치는 여전히 미모와 엄마역할 이 두 가지로만 인정받을 뿐이 아닌가. 아름답지도 않고 애를 가질 수도 없는 나는 그럼 뭘까? 아무 것도 아니다.”

루이스 C. K. 의 지혜의 정수가 여기 또 있다.

여자애와 여성의 차이는 나이에서 오는게 아냐. <막 나가는 여자애들 (Girls Gone Wild)> 3이란 제목을 붙이는덴 이유가 있어. <막 나가는 여성들 (Women Gone Wild)>같은 건 없잖아. 아무도 그딴 제목의 DVD 따위는 안 살테니까. 왜냐하면 여자애가 막나간다는 건 자기 젖꼭지를 남에게 보여준다는 뜻이지만, 여성이 막나간다는 건 남자들을 죽이고 지 애들을 욕조에서 익사시킨다는 거잖아. 막나가는 여성이 하는 건 그런거지.

루이스 씨케이의 막나가는 여성들에 대한 망상은 놀랍게도 길리안 플린(Gillian Flynn)의 <나를 찾아줘 (Gone Girl)>같은 가정 스릴러 (*주인공인 여성이 남편이나 연인과의 불화로 인해 겪는 서스펜스를 다루는 미스터리물)라는 서브장르에 대한 설명과 비슷하다. 가디안(Guardian)지와 미국공영방송라디오(NPR)에서 이러한 유행을 분석한 메간 애봇(Megan Abbott)은 이 책들이 제목에 소녀가 들어간다는 것 외에 또 얼마나 비슷한지에 대해선 의구심을 제기했지만, 폴라 호킨스의 <걸 온 더 트레인>과 길리안 플린의 <나를 찾아줘 (Gone Girl)>이 모두 “결혼생활의 붕괴, 엄마로서의 삶의 양면성, 여성들 간의 복잡한 관계 등 오늘날의 여성이 겪는 위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아내”와 “엄마”라는 정체성이 여성 스스로의 존재를 지워버린다.

메간 애봇의 말대로 이 책들은 공통으로 가정생활의 “감정적 폭력”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깊은 공통점을 주장하고자 한다. 이 소설들은 “아내”와 “엄마”라는 정체성이 여성 스스로의 존재를 지워버린다는 문제를 고심해서 다루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주인공들은 바깥세상에 보이는 여자로서의 자신과, 마음 속에 숨겨두는 여자애인 자신 사이에 점점 벌어지는 간극으로 인해 이중생활을 하게 된다. 결혼과 육아를 다루는 가정 스릴러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류의 여자애 책들은 사실 대부분 가정생활 자체를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가정로부터의 탈출을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낸다. 여성으로서의 삶이라는 덫으로부터 도주 혹은 망명중인 여성들을 말이다.

<럭키스트 걸 얼라이브> (*Luckiest Girl Alive, 직역: 살아 있는 사람 중 가장 운 좋은 여자애)의 주인공은 절박할 정도로 완벽한 아내가 되고 싶어하지만, 승리를 위해서는 결혼생활이 요구하는 의무들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딱히 스포일러는 아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약혼자를 칼로 찔러 죽이는 상상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니까. 기차를 탄 모든 여자애들은 비혼일 경우엔 결혼을 한 자신의 모습을, 기혼일 경우엔 결혼에서 벗어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들에게 여자애로서의 삶은 동시에 지옥이자 구원이며, 병리현상이자 도피처이고, 상처이자 무기이다.

물론 어메이징 에이미 (*편집자 주: Amazing Amy, <나를 찾아줘>의 주인공인 에이미의 심리학자 부모님이 어린 시절의 에이미에 대해 쓴 동화책의 제목)도 있다. 길리안 플린이 창조해낸 이 반항적인 아내-괴물은 이중적 말소의 성과물이다. 먼저 남성적 욕망을 충실하게 받들기 위해 창조된 “쿨걸”이라는 정체성이 에이미 내면의 진짜 소녀를 삼켜버린다. 그러나 결혼생활이 무너지면서, 이 만들어진 가짜 정체성을 또 진짜 에이미가 지워버린다. 닉 (*번역자 주: Nick, 소설 속 에이미의 남편)이 에이미의 가짜 버전인 “그가 좋아하는 건 뭐든지 다 좋아하고 절대 불평따위는 하지 않는 쿨걸”을 더 좋아하자, 진짜 에이미는 이 완벽한 아내라는 시뮬라크르를 납치해 그의 삶과 우리의 책 속에서 그녀를 지워버린다. (*<나를 찾아줘>의 원제인) <사라진 소녀 (Gone Girl)>는 여러 명의 사라진 여자애들을 포함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이 자신의 이전 버전을 지우는데 최선을 다하는 각각의 여자애 페르소나들이 덧쓰여져서 만들어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들 중 누구도 (남자의 자식은 말할 것도 없고) 남자에 의해 지워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막판의 임신은 에이미와 그녀가 벗어나려했던 남자를 둘다 감옥에 가두는 기능을 한다. 내면의 소년과 소녀가 마침내 남편과 아내라는 종신형에 굴복하고 마는 것이다.

 

로빈 와써만(Robin Wasserman)의 사례

난 삼십대 여성으로, 재정적으로 독립했고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으며 개인노후연금을 내고 있고, 모른 척하긴 하지만 주름도 몇 개쯤 있는 것 같다. 다른 한 편으로는 남편과 아이가 없으며, 멍청하게도 뉴욕시에 살고 있기 때문에 부동산도 없다.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일상을 보내고, 내 커리어는 끊임없는 ‘우리 ~한 척해볼까’ 게임의 연속이다. 내게는 고용주도, 사무실도 없고, 엄밀히 따지자면 잠옷에서 외출복으로 굳이 갈아입을 필요도 없다. 내 친구들은 요리와 청소, 아이들 토사물 닦기와, 또 이러한 노동업무를 배우자와 어떻게 분담할지 논의하는 일 틈 사이에서 정신없이 살아간다. 그들은 주택 융자금을 내고, 화장실 수리와 대리석으로 된 주방 타일 (그들은 주방 타일에 대해 잘 알고 있다)에 대해 고민한다. 나는 <가십걸 (Gossip Girl)> 재방송을 보고 데이트를 하러 나가며 아직도 비상시 연락처에 엄마의 전화번호를 적는다.

그러니 성인여성의 자격요건과, 그 요건을 갖추지 않은 성인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나의 개인적 관심이 지대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이 되는 것과 여자애가 되는 것, 그리고 우리가 더이상 여자애도 여성도 될 수 없는 나이가 있는지에 대해 말이다.

4명의 싱글 여성이 이뤄낸 골든 걸스의 기적

<나를 찾아줘 (Gone Girl)> 속의 사라진 여자애들이 자신과 연루된 남자를 벗어나거나 함정에 빠뜨리거나 죽이는게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결정했다 가정해보자. 그냥 참고 기다렸다고 말이다. 아이들이 다 자라기를 기다렸고, 남편들이 죽기를 기다렸으며, 여성으로서의 의무가 끝나고 그들 내면의 소녀가 복수하러 돌아올 때까지, 그 의무들을 견뎌내면서 꾹 참았다고 말이다. 그건 어떤 모습일까.

나는 근사한 테라스가 있고 치즈케이크가 넘쳐나는 플로리다의 가정집같은 모습이리라 상상해본다. 그 집에는 여자들간의 우정이 가장 중하고, 섹슈얼리티가 억압받지 않던 예전의 시간으로 돌아간 네 명의 여성들이, 그들 자신 외의 그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고, 유일한 의무라고는 스스로의 행복 추구일 뿐인 삶을 살고 있으리라고. 시간의 경과와 경쾌한 주제곡 덕분에 가정에서의 악몽이 꿈같은 생활로 변신한 <골든 걸스> (*편집자 주: Golden Girls, 에미상을 2회 수상한 8-90년대 미국 드라마로 플로리다 주에서 한 집에 사는 4명의 싱글 여성이 때론 힘든 일도 있지만 함께 노년의 삶을 즐기는 내용>처럼 말이다.

<골든 걸스>는 내가 처음으로 할머니와 함께 본 드라마다. 할머니의 외로운 아파트는 남편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는게 꼭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열차행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골든 걸스>의 기적이 경이로웠다. 나이들어가는 여성의 섹슈얼리티과 힘의 승리와, 늦은 감은 있어도 숨막히게 놀라운 결혼의 전복은 정말 대단했다. 시리즈 속에서 주인공들은 한때 그들의 의무였던 존재들의 유령과도 같은, 자기주장이 강한 전남편과 성인이 된 자녀의 지속적인 방문을 받는다. 이내 그 유령들은 하나 하나씩 멀리 쫓겨난다. 언제나 사랑을 담아 부드럽게, 그리고 확고하게, 아내엄마에 대한 요구사항이 더이상 일의 순서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며.

우리는 여성이라는 단어를 되찾아야 한다.

누가 마치 내가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이라는 식의 비난의 의미를 실어 여자애라는 말을 사용하면 여느 여자나 그렇듯 나도 불쾌하다. 내 안의 이상주의자는 여자애 되기 의미하는 것에 대한 내 스스로의 이론에 거부감을 느낀다. 오늘날여자애로부터 여성으로의 진화가 조금이라도 진짜 우리 자신을 지우는 것을 의미하게 됐다면, 변화해야 하는 것은 이 용어가 아니라 여성이 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이다. 우리는 여성이라는 단어를 되찾아야 한다. 보통의 경우 성명서를 통해 피력하는 주장을, 우리가 정확한 언어 사용을 통해 널리 알려야 한다는 뜻이다. 여성이 되는 것 또한 얼마든지 자유롭고 자기중심적인 마음가짐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여자애 또는 소녀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그 사실을 상기시켜줄 수 있다는 것이 내 안의 실용주의자를 기쁘게 한다. 명칭과 마음가짐 모두 소녀인 인물들이 존재하며,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이 득세하는 이 문화적 순간을 우리가 함께 경험하고 있다는 것 또한 날 기쁘게 한다.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와 같이,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노력으로 바쁜 여성들로 말이다.

저자소개

로빈 와써먼(Robin Wasserman)의 글은 미 문학지 틴하우스(Tin House),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 미 시사잡지 더아틀란틱(TheAtlantic.com)와 문학서평지 LA 북 리뷰 (The LA Review of Books)에 실려있다. 그녀가 집필한 청년을 위한 저서로는 깨어나는 어둠(The Waking Dark), 피와 그림자의 책 (The Book of Blood and Shadow), 및 TV 드라마화되었던 7가지 대죄 (The Seven Deadly Sins) 시리즈가 있다. 그녀는 현재 남부 뉴햄프셔 대학(Southern New Hampshire University)에서 MFA program을 가르치고 있다. 그녀의 신작, 걸스 온 파이어 (Girls on Fire)는 미 출판사 하퍼콜린스(Harper Collins)에서 판매중이다.

원제: What Does It Mean When We Call Women Girls? By Robin Wasserman @Literary Hub
원문 게재일: 2016년 5월 18일
출처: 리터러리 허브 (Literary Hub), http://lithub.com/what-does-it-mean-when-we-call-women-girls/
원저자: 로빈 와써먼 (Robin Wasserman)
번역:  Lee Shin
편집: Jamie

Notes:

  1. 편집자 주: HBO 드라마 걸스(Girls) 제작자이자 주인공인 레나 더넘 분. 편집자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슬퍼하기보다는 자신의 도서계약건을 걱정하며 장례식장에서 그의 부인에게 자신의 책을 출판해줄 다른 출판사에 대한 정보를 캐는 식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캐릭터로, 트위터에 #한나는죽어야한다 #HannahMustDie라는 해시태그도 있을 정도로 시청자들의 증오를 한 몸에 받고 있다
  2.  *2015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소설부문 1위로 데뷔해 제 2의 “나를 찾아줘”로 불리는 폴라 호킨스(Paula Hawkins)의 심리 스릴러 소설 <걸 온 더 트레인(Girl on the Train)>의 주인공
  3. 편집자주: 90년대에 제작된 미국 포르노물 시리즈로 파티 중인 어린 여성들이 카메라 앞에서 옷을 벗고 가슴을 보여주는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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