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자연애자라는 것, 즉  모두의 인지와 합의를 전제로 여러 사람과 연애 하길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몇몇은 강한 반감을 드러내거나, 심지어는 혐오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내가 ‘사실은 내 애인 중에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들을 속이고 교묘하게 조종하면서 바람을 피우고 있다’거나,  내가 하는 일이 ‘자연의 순리에 반하는 행위’이며 ‘병’적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줄곧 들어왔다.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자연애에 대해 ‘쿨 하게’ 반응한다. 어쩌면 다른 다자연애자를 알고 있거나 그들 자신이 다자연애자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나는 다자연애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너 한테는 잘 맞겠지!” 또는 “흥미롭긴 하지만 난 한 명으로도 벅차”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자연애를 유의미한 관계 맺기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관련해 이러한 스펙트럼 사이(‘쿨 하게’ 대답하거나 강한 반감을 들어내는 것)에 있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내가 부도덕한 행위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다자연애에 대해서 회의적이며, 다자연애에 대한 오해와 몰이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질문들을 던진다.  내가 ‘주변화된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면, 나는 그들의 질문을 ‘미묘한 차별(microaggression)’ 이라 언급할 것이다.

우리가 다자연애를 퀴어나 유색인종의 정체성과 혼동하지 말아야 함과 동시에, 다자연애가 다른 성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와 같이 곡해되고 낙인 찍힌 방식의 관계 형식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오해와 낙인으로 인해 다자연애자들은 같은 유형의 반응을 반복해서 듣게 되고, 자신의 관계와 선호에 대해 방어하느라 진이 빠지곤 한다. 여기 비독점 다자연애자에 대한 15가지 잘못된 편견과 그것들이 어떻게 다자연애를 왜곡하고 다자연애자들을 상처 입히는지에 대한 이유가 있다.

1. 그런 연애가 가능할리 없어

이 말은 종종 다자연애 실패 후, 이 연애방식을 몹시 싫어하게 된 친구의 사례를 들면서 하는 말로 언뜻 다자연애에 대한 순수한 의견같아 보이지만 사실 다자연애를 무효화하려는 주장이다.

3년 동안 다자연애로 행복하게 살아온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자연애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걸까? 내 관계들이 대체로 건강하고 성공적이라는 내 인식에 문제가 있는 건가? 사실은 내가 몹시 비참한 상태인데, 단지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인가?

이런 지적들은 다자연애 뿐 아니라, 질문의 전제부터 잘못됐다. 

누군가에게 ‘당신의 감정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듣는이에게 자기 자신의 경계와 선호를 의심하게끔 한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들은 종종 그들이 ‘실제로는’ 이성애자일거란 말을 듣고, 낙태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내심 아이를 가지길 원하는 것이란 이야기를 듣곤 한다.

다른 사람이 싫다고 말한 것(혹은 그 반대)을 그들이 사실은 좋아하고 있다고 말하는 건, 그들 자신보다 그들의 경험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사실이 아니며, 통제와 학대의 방법이기도 한 가스라이팅(gaslighting, 심리학 용어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상대를 조정하려는 의도로, 상대를 심리적 피해자로 만들어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몰고가는 행위를 의미하며, ‘가스등 이펙트’는 이러한 상황을 의미한다 – 편집자 주)일 수도 있다.

2. 너는 섹스를 엄청나게 하고 있는 게 분명해

독점연애자와 마찬가지로 다자연애자들이 섹스에 대한 관심을 갖는 정도는 모두 다르다.

몇 몇은 무성애자 범주에 속하고, 다른 몇 몇은 성욕과 정력에 영향을 미치는 질병과 장애를 가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다른 파트너와 가능한 성적 행위의 정도를 제한하는 규칙을 정하기도 하며 또 다른 이들은 싱글이다.

누군가가 다자연애자라고 말하는 것과 그들이 어떤 섹스를, 얼마나 많이 하는가 하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처럼 다자연애를 모두 ‘섹스, 섹스, 섹스’와 관련있다는류의 생각은 종종 다자연애를 유효한 관계 맺기 방식이 아닌 난잡하거나 애매한 사람들로 묘사하는데 이용되곤 한다.

많고 많은 사람들과 합의에 기반한 많고 많은 섹스를 하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 다자연애의 전부는 아니다.

3. 그래서 누가 니 중심 애인인데?

어떤 사람들은 특정한 책임감과 더 긴밀한 상호의존성을 공유하는 ‘중심적인’ 혹은 최우선의 파트너를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그들에게 이런 질문은 상처가 되는데, 이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다자연애자가 정말로 ‘의미있는’ 단 한명의 파트너만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을 드러내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급진적인 대안이나 솔로 다자연애와 같이 ‘우선적인’ 관계를 포함하지 않고도 다자연애를 실천하는 많은 방법들이 있다.

이 질문은 한 사람의 삶에서 반드시 단 하나의 ‘중심적인’ 관계만 있어야 한다는 일부일처제 중심의 관점에서 기인한다. 물론 당신이 독점연애자든 다자연애자든지간에 관계를 맺는 방식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오직 한가지 방식으로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전제란 점이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궁금하다면, “너는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니?”라고 대신 질문하면 된다.

그런 질문이라면 다자연애자들은 당신이 다자연애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에 대응할 필요 없이 자신들의 방식에 대해 설명해줄 것이다.

4. 음, 나는 내 애인으로 충분해

만약 당신이 한 명의 애인과 행복하고 충만함을 느낀다면, 그건 멋진 일이다! 하지만 이 말이 발화되는 방식은 다자연애자들이 한 명의 애인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암시한다.

어쩌면, 어떤 다자연애자들은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연애는 애인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연애는 단 한 사람이 아닌 그 이상의 사람들과 관계를 추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내가 귀여운 새 친구에게 작업을 거는 건 나와 이미 관계를 맺고 있는 애인들이 불만족스럽거나 맘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건 그 새로운 친구에게 호감을 표현하는게 즐겁기 때문이고, 이 관계가 어떻게 진전되는지를 보고 싶기 때문이며, 내 다른 애인들도 이 일이 멋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지금 한 사람에게만 흥미를 갖는다면? 음, 그땐 그 애인 한 명으로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간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도 호감을 가질 것이고 여전히 열린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5. 오, 너도 언젠간 너한테 맞는 사람을 찾을수 있을거야

이건 레즈비언에게 언젠간 그녀도 좋은 남자를 만날거라고 이야기하거나, 무신론자에게 결국 그들도 신을 믿게 될거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개인의 욕구와 선호, 정체성은 시간에 걸쳐 변할 수 있지만 그들이 어떤 식으로 변할지 당신이 알고 있다고 단정 짓는 건, 남을 가르치려는 드는 거만한 태도에 불과하다.

독점적 연애로 전향한 다자연애자의 경우, 보통 “천생연분”을 만난 것과는 별개로 욕구와 욕망, 타협, 안전의 문제, 시간 분배, 혹은 당신이 알 수 없는 수많은 요소들의 문제이다.

6. 넌 모두 독차지하고 싶은 거야

이런 말 속에선 합의에 근거한 비독점 다자연애를 하는 이들을 향한 분노가 드러난다.

우리가 한 사람이 모든 걸 독차지하려고 든다고 말할 때, 그가 보통의 선택에 수반되는 어떤 책임도 없이 이득을 모두 차지하고 싶어 한다거나, 상호 배타적인 두 가지를 동시에 원하고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하길 거부한다는 식의 의미한다.

하지만 관계라는 건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않는다.

누군가와 헌신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건, 서로가 동의한다면,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할 수 없다는 것과 동의어가 아니다.

다자연애자들은 책임과 헌신을 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윤리적인 다자연애 관계는 꽤 많은 노동과 의사소통을 수반한다.

7. 그러면, 애는 어떡해?

다자연애자인 여성들(또는 여성으로 인식되는 사람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 것에 비해 남자들은 이런 질문을 덜 받는데, 남성들은 육아를 위해 그들의 삶을 계획할 것이라 기대되지 않기 때문이다.

몇몇 다자연애자를 포함해 어떤 사람들은 육아에 관심이 없다. 이 경우 ‘그러면, 애는 어떡해?’라는 질문은 주제 넘는 일이다. 더군다나 이 질문은 다자연애와 육아가 양립할 수 없다고 암시한다.

많은 다자연애자들이 한 명 혹은 여러 명의 짝과 아이를 키운다.

이는 분명 쉽지 않은 일이지만, 다자연애가 반드시 아이들에게 부적절하고 불안정한 환경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혼 가정의 아이에서 보듯이, 일부일처제는 어떤 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다자연애자인 친구가 그의 미래를 어떻게 구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물어보라.

만약 그들이 언젠간 아이를 갖길 원하는지 묻고 싶다면, 그에 대해 질문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기억해두자. 만약 상대가 다자연애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질문을 해도 될 만큼 당신과 충분히 가깝지 않다면, 그런 질문을 하는건 예의가 아니다.

8. 넌 다자연애자니까, 양성애자인거야. 그렇지?

양성애/범성애자인 다자연애자들은 종종 이러한 편견과 맞닥뜨린다.

양성애자/범성애자들은 그들이 두 성(젠더)의 연인, 즉 남성과 여성을 모두 원하기 때문에 한 명의 애인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는 이상한 미신이 존재한다. 게이, 레즈비언, 이성애자들은 종종 그들이 결국 바람을 필 것이기 때문에 양성애자와 범성애자를 만나는 걸 거부하기도 한다.

남성과 여성, 두 개의 젠더를 언급하는 이런 지적들은 이분법적인 젠더에서 벗어나 있거나, 젠더구분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야기 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런 발언들은 양성애자와 범성애자, 그리고 이분법적인 젠더에서 벗어난 이들과 에이젠더(agender, 성 정체성의 한 종류.  없음을 뜻하는 접두사 ‘A-‘와 사회문화적 성별을 지칭하는 gender로 이루어진 합성어로, 젠더가 없음을 뜻한다-편집자 주), 그리고 두 개의 성 역할을 모두 가진 사람들에게 해롭다.

대부분의 양성애자/범성애자들에게 다자연애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빨간 머리와 갈색 머리를 모두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언제나 적어도 그 둘 중 하나와 데이트해야만 하나? 아마도 아닐것이다. 양성애자/범성애자에게 젠더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만약 그들이 다자연애를 선택한다면 그건 단순히 그들이 다양한 젠더를 가진 이들에게 끌리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젠더에 대한 끌림이 다자연애를 하고자하는 결정에 영향을 미친 양성애자와 범성애자들도 있다. 그 또한 옳지만, 그것이 당연한 전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만약 누군가가 왜 다자연애를 하는지 궁금하다면, 직접적으로 물어보라. “당신이 다자연애를 결정하게 된 이유가 뭔가요?” “어떻게 당신이 다자연애를 하게 됐죠?”

한 사람이 왜 다자연애자가 되었는지 지레짐작하는 대신에, 그들이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 물어보라.

9.난 내 연인이 그 짓을 하게 절대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헐, 네 파트넌 그걸 내버려두니?)

연인은 어린 아이가 아니다.

당신은 당신의 영역 안에 포함되는 문제가 아니라면 다른 성인이 어떤 행동을 하도록 혹은 하지 않도록 할 수 없다.

다자연애는 연인이 다른 파트너를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열린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함께 동의할 뿐이다.

비슷하게, 독점연애 커플 또한 독점연애가 그들에게 가장 잘 맞는다고 함께 결정할 수 있다. 이는 한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걸 누군가가 “허락하는” 문제여서는 안된다. 물론 타협은 분명히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만약 한 커플이 그들의 관계를 비독점적 관계로 열어두어야 할지 말지 결정할 수 없다면, 독점연애를 논의할 필요가 없는 전제값으로 두기보다는 각자의 길을 나서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

10. 네 애인은 그냥 널 이용하는 거야

당신이 관심을 기울이는 타인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좋다. 어떤 관계에서든 폭력을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어떤 한 사람의 애인이 다른 애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에 그 사람이 조종당하고 이용당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주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다자연애는 바람피우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는 주로 이성애 여성에게서 나오는데, 이는 남자는 언제나 여자 친구나 부인을 속이고 싶어 하며 (모두의 동의가 있든 없든) 여러 연인을 가질 특권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편견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다자연애는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다는것만 빼면 남성들이 바람 피는 한 방식처럼 보인다.

여성혐오는 독점연애 관계에서 그러하듯 다자연애 관계에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 몇몇 사람들은 다자연애를 하는 애인에 의해 큰 압박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로 다자연애를 선택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건 아니다.

많은 다자연애자들은 그들 스스로 한 사람 이상의 연인을 원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들의 연인 또한 그런 선택권을 갖길 원한다.

심지어 다자연애자들은 자신의 연인이 다른 연인과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희열(compersion:다자연애를 이해하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단어로써,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연인, 남편, 혹은 아내와 같이)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는 것을 보며 진심으로 행복해하고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질투의 반대어로 쓰이기도 한다.-역자 주)을 느끼기도 한다.

11. 오, 그래서 너 언제든 연애가 가능한 거구나!

나는 연애와 섹스를 논하는 맥락에서 “가능한(available, 연애를 걸어도 되는,연애가 가능한-역자 주)”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주로 작업을 걸거나 추파를 던져도 되는 이들을 일컬을 때 사용되며, ‘싱글’이라는 말의 완곡어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우리가 그 말을 사용하는 다른 모든 맥락에서 그 말(available)은 기본적으로 그 사람이 언급된 무언가를 기꺼이 할 생각이 있고,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자연애자들이 반드시 당신과 연애할 가능성이 있는 건 아니다.

어떤 다자연애자들은 두 사람 이상으로 구성된 닫힌 관계 내에 있을 수도 있고(이를 polifidelity -두 사람 이상을 사랑하며 그 사람들과 집단을 구성하고 성관계도 나누는 집단혼-라고 한다) 그들은 그들의 애인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과 관련하여 일종의 규칙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혹은 그저 당신에게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다자연애를 하는 누군가에게 호감이 있다면, 다른 이들을 대하는 방식대로 그들을대하면 된다. 즉, 그들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라.

만약 그들이 원치 않는다면, 혹은 그들의 관계 구조로 인해 그럴 수 없다고 한다면, 그렇다고 당신에게 알려줄 것이다.

12. 다자연애는 어쨌든 결말이 안좋은 것 같아

다자연애자가 관계에서 문제가 있거나 결별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다자연애가 불가능하다는 시인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독점연애관계가 그러하듯, 열린 관계들도 여러 이유로 끝이 날 수 있다.

경제적인 문제, 생활 패턴이 달라서, 의사소통 스타일, 욕구와 흥미의 변화 또는 단순한 변심 등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다자연애를 시작한 이후 여러 이별을 경험해왔지만 그 어떤 이별도 다자연애 방식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더 이상 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독점 관계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고 둘 중 누군가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헤어진 경우에 누구도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는다.

“그래, 독점연애는 불가능한 것 같아!”

이는 독점연애가 기본 전제이기 때문이며, 특정한 사람과 관계가 잘 안될 경우 우리는 문제가 그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지 독점연애 방식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양한 형태의 관계 방식은 다양한 사람들 안에서 작동한다. 만약 당신이 다자연애가 싫다면, 당신의 다자연애관계는 당신에게 행복하지도, 건강하지도 않을 것이다.

13. 하지만 네가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할 때 네 연인은 슬퍼지잖아?

이건 대화 상대인 다자연애자에게 그들이 연인의 감정을 신경쓰지 않는다고 암시하는 교묘한 방식의 말이다.

여기에는 연인이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는 것을 모든 사람이 불쾌해하고, 네 연인이 네가 하는 일로 인한 슬퍼할 것을 방지하는 것은 언제나 너의 책임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물론 당신의 행동이 연인에게 감정적으로든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당신이 하는 일로 인해 슬퍼한다는 것이 반드시 당신이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단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사실, 다자연애관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열려있지만 동시에 그들의 연인이 밖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행복해지길 원한다는 걸 재차 확인할 것이다. 어떤 때엔 나가지 않고 집에 머물며 연인을 위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들과 관련해서는 독점 연애 관계에서 언제나 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고된 하루를 보낸 후 당신의 위로를 원하는 연인을 위해 친구들과 놀러나가는 대신 집에 머물러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이 출장을 나가있는 동안 당신을 몹시 그리워하는 연인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연인에게 문자를 보내본 적 있는가?

모든 관계는 당신 자신의 요구와 상대의 요구 사이의 균형을 필요로 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자연애 관계에서도 가능하다.

14. 왜 맨날 다자연애에 대해서만 이야기 해야하는거야?

내가 지금까지 써온 이 모든 것들은 질문에 대한 간단한 답이다.

다자연애에 대해 사실상 이야기 된 바가 거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한다. 우리가 다자연애에 대한 왜곡과 편견을 전제로한 지적과 질문을 듣는 빈도는 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다자연애자가 다자연애에 대해 너무 많이 이야기한다는 것은 논점에서 벗어나 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컴퓨터 게임이든 크래프트 맥주든, 혹은 스타트렉이든 간에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몇몇 다자연애자에게는 다자연애가 그 자체로 그들의 관심사이다. 다른 이들에게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다.

둘째, 다자연애자들은 그들 자신을 이해하기 위하여 다자연애에 대해 이야기 한다.

우리 문화 내에는 다자연애를 위한 각본이 거의 없고, 우리에겐 그것을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다자연애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관계에 대한 우리의 욕구와 관련, 자유롭게 발언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욕망을 파괴하고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독점연애가 기본값인 관계 내에서 우리가 불행해진다는 걸 알고 있다.

다자연애가 너무 많이 이야기 되고 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바로 독점연애가 기본 전제이기 때문이다.

독점 연애는 이야기 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두 잠정적인 연인 중 한 명을 선택해야하는 고뇌에 대해 이야기할 때, 혹은 단 한 사람의 짝을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 할 때, 누구도 그들에게 독점연애의 이상한 점에 대해 그들에게 설명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의 연인이 아닌 타인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억눌러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혹은 연인이 바람을 피우는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누구도“왜 너는 맨날 독점연애 얘기만 해?” 하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독점연애에 관해 여전히 이야기하고 있다.

15. 하지만 질투나지 않아?

채식주의자들은 종종 이런 류의 질문을 들을 때 얼마나 절망적인지 이야기 하곤 한다. “하지만 베이컨은 어때?”

질투에 대한 질문은 다자연애자에게 ‘베이컨은 어떠냐’는 질문과 같다. 사람들은 만약 당신이 질투를 하면 다자연애는 불가능한 것이며, 모든 인간은 질투를 느낀다는 식으로 다자연애를 트럼프 카드의 종류처럼 치부한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 또 어떤 이들은 질투를 경험한다. 하지만 그들은 어쨌든 다자연애가 그들에게 가장 잘 맞는다고 결정했다.

독점연애 관계 내에서 질투심은 언제나 생긴다. 당신은 연인의 우정, 직업, 가족, 재능 또는 실은 당신이 가지고 싶었지만 상대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것들에 대해 질투를 느낄 수 있다. 당신의 연인이 그의 친구와 시간을 보낼 때 불안해질 수도 있다. 또한 연인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그의 일과 취미를 사랑하는 것을 걱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연인이 친구 관계를 끊거나 취미활동을 그만두어야한다고 결론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이처럼, 많은 다자연애자들은 질투를 잘 다루고 해결해야 할 어떤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다자연애가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

위와 같은 질문을 하기 보다는, 다자연애와 다자연애자인 친구에 대해 좀 더 알아가기 위한 기회를 갖도록 해보자.

다자연애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당신이 그것을 시도하거나 선호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신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희한하고 환상적인 여러 방식에 대해 배우고 당신의 다자연애자인 친구를 좀 더 지지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다자연애에 대해 더 알길 원한다면 More Than Two는 훌륭한 자원이 될 것이다. 당신의 다자연애자 친구는 물론 그들이 좋아하는 책과 블로그를 소개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다자연애자의 수만큼 다자연애의 방식은 다양할 것이다. 당신이 독점연애를 선택했다고 할지라도, 그들로부터 도움이 되는 관계의 기술을 배우거나 멋진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원제: 15 Comments Polyamorous People Are Tired of Getting @Everyday Feminism
원문 게재일:2015. 10. 22.
원저자: 미리 모질레브스키(Miri Mogilevsky)
번역: Daon
편집: M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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