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페미디아, 일본군 ‘위안부’의 경험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1),  2016년 5월 20일).

 

일본군 ‘위안부’의 지속, 확장되는 상흔들

이 연구는 한국에서 1990년대부터 출판된 증언집, 2000년 여성국제법정 자료, 그리고 기타 자료 등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증언들 중에서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들을 유형화하면서도 독특한 사례들도 인용을 통해 드러내고 있습니다. 시간적으로는 포스트식민의 피해를 조명하는데 있어서 과거의 산물로서의 상흔과 현재 상태의 상흔의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해 식민지 시기의 피해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아시아·태평양전쟁시기 일본군 ‘위안부’들이 입게된 피해는 육체적, 정신적, 사회관계적 피해로 구분하여 접근합니다.

 

육체적 상흔
먼저, 육체적 상흔은 위안소에서의 구타, 학대와 같은 일반적 폭력에 의해, 그리고 성적 폭력에 의해 발생했습다. 특히 성적 폭력으로 인해 생식기가 파손되고 성병에 감염된 것은 물론이고 일본군이 성병치료 목적에서 정기적으로 투여한 606호 주사의 후유증으로 불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위안부 산부인과용 진찰대

이미지 출처: http://m.blog.daum.net/cthwn/11493173

 

“임신이 된 줄도 모르고 있다가 606호 주사를 맞으면 몸이 붓고 으스스 추우면서 하혈을 했다. 그러면 병원에 데려가서 의사가 자궁 속을 긁어냈다. 이렇게 서너 번 긁어내면 임신은 더 이상 되지 않았다(황금주, 증언 1집, 1993: 100, 재인용).”

뿐만 아니라 강간이 계속되면서 여성들은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되는 경우가 있었고, 일본군은 여성들이 임신을 하면 대부분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실시했고, 아예 임신을 못하도록 수술을 시켜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육체적 상흔들은 성병이 생존자들의 몸에 잠복하고 있거나 되물림이 되는 형태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위안소를 탈출하려다가, 혹은 일본군의 폭력으로 외형적 상처를 지니고 있고, 그 후유증을 앓고 있는 생존자가 2000년 9월 조사 당시 총 14명 중 7명이라고 합니다.

 

정신적 상흔

정신적 상흔은 보다 더 심각한데 같은 해 조사에서 총 14명의 대상자 중 11명이 만성적 외상후 스트레스(PTSD)에 해당한다고 조사되었습니다(이수연, 2000: 재인용). 생존자들은 그 당시 느꼈던 무력감과 공포,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수치심으로 인해 평생을 고통받아야했습니다.

“위안부 이야기 아무도 몰라요. 그렇게 챙피한 게 어딨나(배족간, 의료조사, 2000: 재인용).”

이러한 정신적 상흔의 결과로 생존자들은 침묵하게 되었고, 동시에 이 침묵은 정신적 상흔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사회관계적 상흔
저자는 마지막으로 다루는 사회관계에 남겨진 상흔을 앞서 살펴본 두 상흔에 비해 ‘식민지 이후에 구성된 성격이 짙은 것으로’ 설명합니다. 탈식민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봤을 때, 식민 지배 이후 50여년간의 생존자들의 경험은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 속에서 어떻게 지속되고 확장되는지 보여줌과 동시에 ‘남한 사회에서 낮은 계층의, 피해자 여성됨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로 아시아 각지에 끌려간 여성들 중 많은 여성들이 전쟁이 끝남과 함께 전장에 버려지거나 사망했고, 혹은 귀국할 방법이 없어 해외에 방치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으로 귀환했다고 하더라도 가족 혹은 고향으로 돌아가서도 일반적인 가정을 구성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으며, 이들의 빈곤은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특히 출산능력으로 ‘정상적’ 여성의 위치를 부여하는 한국 사회는 성병과 불임의 상흔을 가진 ‘위안부 생존자들을 모성 기능을 박탈된, 혼인에 부적합한 여성으로 낙인 찍었습니다. 이 연구에서 인용하는 김복동의 증언을 보면 위안소 경험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어느 집에 후처로 들어가지만 임신을 하지 못하면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유로 스스로 그 집을 나오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모습에서 식민지배 이후 구성된 상흔의 모습, 즉 포스트 식민의 상흔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지속, 확장되어온 상흔에 대한 한국 사회의 책임
이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위안소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일본군 ‘위안부’의 상흔이 식민지 이후에 지속, 누적되면서 구성되어 왔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써 일본군 ‘위안부’들이 겪어야 했던 경험들을 지금까지 단지 전쟁 중 위안소를 중심으로 일어난 과거의 사건으로 정박시키고, 이들의 상흔을 한국 사회가 구성해 온 책임을 외면해 오지는 않았나 반성하게 됩니다. 맺음말에서 정리하고 있듯이 탈식민 페미니즘을 통해 “남성중심적 일본제국주의와 함께 가부장적 남한국가 사회”를 동시에 반성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는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모든 학문적 논의 끝에 도달하는 고민은 “그래서 나는 일상생활에서, 나의 삶을 통해서 이 논의를 어떻게 실천해나갈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어떤 학문적 개념틀로 접근할 것인가, 어떤 방법론이 더 정밀한 것인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문제를 내 삶 속에서 어떻게 녹여내어 일상생활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최종적으로 일본군 ‘위안부’를 대상이 아닌 주체로 마주하는 것이 아닐까요? 무엇보다도 양현아(2006)가 이 연구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의 경험이 과거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경험이 아니라는 점을 밝힌만큼 현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탈식민 페미니즘적 시각에 입각하여 생각해보는 것이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물론, 탈식민 페미니즘이 유일한 시각이지는 않을 것이고, 이러한 고민에 정답은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수정되고 조정되어 나가겠지만 이것이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이 글은 다음의 논문을 바탕으로 쓰였으며, (1)편과 (2)편으로 나뉩니다. 양현아, 2006, “증언을 통해 본 한국인 ‘군위안부’들의 포스트식민의 상흔(Trauma)”, 한국여성학, 22(3): 133-167).

글쓴이: 백재예

편집: 김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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