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남학생들이 ‘게이 같다’는 수식어를 사용하며 다른 남성들을 비하하고 놀리는 모습, 그다지 낯선 풍경은 아닙니다. 하지만 ‘게이 같다’는 표현이 실제로 커밍아웃한 남성 동성애자를 수식하는 경우는 드물지요. 주로 ‘여성스러운’ 남성들이 ‘게이 같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요. 여기, 미국의 고등학교에서 이러한 ‘fag(남성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비속어) 담론”과 청소년기 남성성 및 섹슈얼리티의 관계를 연구한 내용을 담은 책이 있습니다. 파스코 (C.J. Pascoe)가 저술한  “이런 게이 같은 놈 – 고등학교에서의 남성성과 성, 새로운 서문을 쓰다 (Dude, You’re a Fag – Masculinity and Sexuality in High School, With a New Preface)” 입니다.

무엇이 그들을 ‘남성스럽게’ 만드는가? – 남성성을 얻기 위한 fag 담론과 여성혐오

저자는 일 년 반 동안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 고등학교의 남학생들은 충분히 ‘남성스럽지’ 못한 다른 남학생들을 비하할 때 ‘fag’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fag 정체성은 상황적 요소들과 당사자의 몸가짐에 좌우되는 가변적인 정체성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인종에 따라 fag의 사용 양상에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이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백인 남학생들은 외모에 신경을 쓰거나 춤추는 것을 즐기는 등의 ‘여성스러운’ 행동을 할 때 fag라는 질타를 받았습니다. 즉 백인 남학생들은 서로의 ‘게이다움’을 비하하며 본인은 fag가 아님을 주장함으로써 본인의 남성성을 재확인받았습니다. 반면, 흑인 남학생들의 춤에 대한 열정과 공들인 옷차림은 오히려 흑인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강화시키는 요소로 해석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흑인 남학생들은 춤과 옷차림에 신경을 쓸 때보단 백인처럼 행동할 때 더 잦은 놀림을 받았습니다.

고등학생들의 남성성 확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여성과의 관계입니다. 남학생들은 친구들과의 일상 대화에서 여성과의 성관계 경험이 있고, 설령 없더라도 성관계에 대한 갈망을 충분히 드러내야만 또래로부터 남성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여성의 육체를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은 남성성의 필수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성관계는 철저하게 남학생들의 영역으로 여겨졌기에, 고등학교 내 성관계 담론에서 여학생의 역할은 주체가 아닌 욕망의 대상에 그쳤습니다.

남자의 몸을 벗어난 남성성 – ‘남자다운’ 여학생들

흥미롭게도, 남성성은 단순히 남성 육체에만 국한된 특성이 아니었습니다. 이 고등학교에서는 ‘남성적인’ 행동을 하는 두 부류의 여학생들이 있었는데, 농구팀 선수들과 퀴어인권동아리 멤버들이었습니다. 농구팀 선수들은 주로 성별에 따른 행동 규범에 저항하기 위해서, 퀴어인권동아리 멤버들은 여성성이 ‘남성성에 굴복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남성적인’ 옷차림과 행동을 했습니다. 농구팀 선수들의 ‘남성성’은 다른 학생들이 부여한 특성이었던 반면 퀴어인권동아리 멤버들의 ‘남성성’은 주로 당사자들이 스스로를 ‘남성적’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형성되었습니다. 또한, 농구팀 선수들의 ‘남성성’은 또래 학생들 사이에서 멋진 학생들로 인정받는 권력을 안겨주었지만 퀴어인권동아리 멤버들의 ‘남성성’은 그만한 권력을 자아내진 못했습니다. 다른 학생들의 인정에서 비롯되는 ‘남성성’이 남학생들뿐 아니라 여학생들 간의 권력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또한, 농구팀 학생들에게 멋진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안겨준 그들의 ‘남성성’이, 다른 남학생들처럼 다른 여학생들을 성적 대상화 함으로써 얻은 특성이라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남성스럽다’는 인정을 받기 위한 행동 양식을 암묵적으로 정해놓고 그 규칙을 벗어나는 친구들을 가차 없이 비난하는 고등학생들. 본인의 ‘남성성’을 인정받기 위해 여학생들을 성적 대상화 하며 다른 친구들을 게이라고 놀리는 행동도 서슴지 않습니다. 놀림을 받지 않기 위해 충족시켜야 하는 남자다움의 기준이 인종에 따라 다르다는 점, 그리고 남학생들 뿐 아니라 여학생들도 남자답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등학교에서의 ‘남성성’은 단순히 남학생들의 보편적 특성이라기보다는 또래 집단에서의 권력을 얻기 위한 행동양식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글쓴이: 최호연

편집: 김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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