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셰익스피어의 누이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고 여성의 재산권이 제한되던 빅토리아 시대에 태어나 성차별이 없는 세상, 성폭력이 없는 세상을 꿈꾼 이가 있습니다. 수 편의 소설과 수필을 통해 20세기 영문학에 큰 획을 그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 영국)는 어린 시절 친족 성폭력을 경험한 생존자이자, 여성의 인권을 위해 노력한 페미니스트였으며, 한 남성과 오랫동안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던 여성입니다. 그녀는 1929년에 발표한 <자기만의 방 (A Room of One’s Own)>에서 셰익스피어의 누이 ‘주디스’라는 가상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들을 짓밟는 남성중심적 사회를 비판합니다.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상상

“셰익스피어에겐 누이가 있었다. 하지만 위대한 시인의 평전 속에서 그녀를 찾을 순 없다. 그녀는 일찍 죽어버렸으니까. 아아, 그녀는 평생 단 한 단어도 쓰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 버스가 지나다니는 런던의 한 삼거리 아래에 묻힌 채 누워있다. 나는 믿는다. 평생 단 한 단어도 쓰지 못하고 삼거리 밑에 묻힌 그녀가 아직도 살아있다고. 그녀는 당신과 내 안에서, 그리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을 재우느라 오늘 밤 이 곳에 자리하지 못한 무수한 여성들 안에서 살아있다. 그녀는 살아있다. 위대한 시인이란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이니까. 그녀는 그저 이 세상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할 뿐이다… 그 기회가 오면 셰익스피어의 누이였던 죽은 시인은 그녀가 그토록 여러번 누였던 여성의 몸을 다시 입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누이는 글 한 줄을 써볼 수 있었을까?

여성에게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과 극심한 우울증으로 고통받던 버지니아 울프. 그녀는 1941년 3월 28일, 주머니에 돌을 가득 채우고 강물에 걸어 들어가 삶을 마쳤습니다.

법학자 캐서린 맥키넌의 상상

“짓밟힌 존재들을 위한 판타지 법학”이라면서 웬 버지니아 울프냐고요? 파릇한 대학교 새내기 시절부터 칙칙한 3년차 원생이 된 오늘까지 법학을 공부한 저도 버지니아 울프가 법이랑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지 영문을 몰랐습니다. 페미니즘 법학자 캐서린 맥키넌(Catharine A. MacKinnon, 1946~, 미국)의 성평등(Sex Equality)수업을 듣기 전까지는요! 캐서린 맥키넌은 세계적인 여성운동가이자 저명한 법학자로 직장에서의 성희롱과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담은 포르노그래피, 전쟁 시 발생하는 성범죄에 맞서 싸울 이론을 고안해낸 여성입니다. 저는 한 학기 동안 그녀의 수업을 통해 평등을 다룬 세계 각국의 법리와 국제인권법, 인종주의, 직장과 학교에서의 성차별, 식민주의, 가족법, 가정폭력, 성폭력, 성희롱, LGBT인권, 재생산권, 인신매매, 성매매와 포르노그래피 등의 주제를 중심으로 페미니즘 법학을 배웠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누이를 살아나게 할 판타지 법학 

정의는 무엇인가. 법은 무엇인가. 정의로운 법을 탐구하는 법철학은 또 무엇인가. 캐서린 맥키넌의 법철학에 의하면 법은 평생 단 한 단어도 쓰지 못하고 사라진 셰익스피어의 누이가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낼 살아있는 동물입니다. 이번 학기 마지막 수업은 인신매매의 전지구적 현황과 포르노그래피 산업의 밀접한 연관성을 다뤘습니다. 열띤 수업을 마친 뒤 캐서린 맥키넌은 제가 위에 소개한 버지니아 울프의 글귀를 읊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평생 법을 통해 여성의 인권을 주장해온 석학의 강의를 듣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미국으로 몰려든 젊은 법학도들에게 그녀가 말하더군요. “그대가 깊이 믿고, 그대를 깊이 믿는 의뢰인들을 만날 수 있길 기원합니다. 그들의 주머니에서, 또 그대의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세요.”

짓밟힌 이들을 위한 판타지 법학

저는 이 시리즈를 통해 페미니즘 법학이 고민하는 주제들을 소개해 보려 합니다. “짓밟힌 이들을 위한 판타지 법학”이라는 이름은 제가 붙였습니다. 왜 짓밟힌 이들이냐 하면 이 법학은 다른 이를 짓밟는 이의 관점이나 사람들이 짓밟히는 현실을 앞에 두고 ‘중립’을 지키는 이의 관점에서 출발하는 법학이 아니기 때문이며 왜 판타지냐 하면 이 법학이 아직은 이 세상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죽은 지 75년이 흐른 2016년에도 성차별이 없는 세상, 성폭력이 없는 세상을 위한 법학은 현실보다는 환상의 영역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환상의 동물을 이 세상에 불러내는 마법을 부릴 수 있을까, 이것이 제 삶의 화두입니다.

추신: 페미니즘, 셰익스피어, 울프, 맥키넌, 온통 꼬부랑 말 투성이라 서구 문화제국주의의 냄새가 난다고요? 다음 주에는 새 나라의 탈식민 어린이답게 #2. 윤동주의 누이로 찾아뵙겠습니다.

 

글쓴이: 김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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