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마음이 들어 머릿속에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건져 올리면 언제나 마녀들을 마주하곤 한다. 그 마녀들은 늪처럼 끈적거리고 두꺼비처럼 축축하다. 그들은 불길한 노래를 부르며 근심과 고통을 지옥의 죽처럼 팔팔 끓인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무시무시하고 치명적인 파멸을 만든다. 그 우두머리는 마술을 부려서 그 어떤 용감한 사람이 지혜도, 미덕도, 공포도 무시하고 헛된 희망만 품게 만든다. 하지만 맥베스의 1막이 시작되기도 이미 오래 전부터 이야기 속의 불길하고 위험한 여성들은 그 우두머리를 섬겨왔다. 이 사악한 대 마녀의 실제 모습은 그리스의 가장 오래된 여신이었다. 그 여신은 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데 단테는 이에 영감을 받아 악마에게는 얼굴이 세 개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이름은 헤카테.

헤카테는 강하고 지혜로운 여신이었음에도 시간에 따라 부정적인 여신으로 변질되어왔다. 특히 그는 달의 변화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기에 변덕스럽고 자유분방한 것으로 묘사된다. 동시에 저주를 내리는 두려운 존재로 그려졌다. 하지만, 잊고 있었던 헤카테의 이름을 되살릴 때 마다, 그는 나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요구사항을 잘 들어보면 이 낯선 이름의 헤카테에 이끌리는 나를 발견한다.

무엇보다도 헤카테는 의지대로 행동하기를 요구한다. 그의 이름은 멀리 떨어져서 힘을 행사하는,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과 관련 있다. 아름다움으로 칭송받은 적이 없는 그는 남성 신의 지배에 길들여지지 않고 의지에 따라 자신의 혈통인 티탄 족과 싸웠다. 그렇기에 그는 신들이 서로 싸우는 와중에도 자신이 원하는 이에게 다가가 승리를 안겨주고 축복을 내릴 수 있었다. 그 모습에 조국을 배신한 많은 악녀들의 삭제된 이름이 떠오른다. 그들은 이름을 널리 떨쳤던 미녀들과는 다른 맥락의 매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힘을 파괴를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의 힘은, 용맹함과 자신이 가진 재능을 표현하고자하는 그들 스스로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다음으로 헤카테는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기를 요구한다. 그는 오래된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사라진 딸 페르세포네를 찾기 위해 여신 데메테르가 광야를 여기저기 떠돌자 모두가 하데스를 두려워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헤카테는 횃불을 들고 데메테르의 손을 잡고 진실을 찾아 나선다. 헤카테는 이끌고 돌보는 조력자가 되었다. 호메로스의 『데메테르 찬가』에서는 마음씨 착한 헤카테만이 동굴에서 소녀의 목소리를 듣고 데메테르의 손을 잡았다고 묘사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일상에서의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다른 이들의 비슷한 마음을 듣는다. 어둡고 힘든 길이라 생각이 들어 고개를 돌려 모른 척 하려할 때마다 헤카테는 나에게 말한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당신에게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헤카테는 중요한 갈림길에서 우리 스스로 내면의 증인으로 존재하기를 요구한다.  헤카테의 시간은 어둠과 여명의 시간이다. 모두가 침잠하여 잠든 시간은 필연적으로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 그는 지하세계를 연결하지만 그 곳에 살지는 않는다. 그는 우리에게 끝없이 죽음을 상기시키며 갈림길마다 질문을 던진다. 그는 그의 얼굴이 향하는 세 방향, 즉 모든 방향을 바라본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선과 악을 넘어선 또 다른 가능성을, 참과 거짓이 아닌 모호함 그 모두를 아우르며. 모두가 잠든 시간, 중요한 길목에서 헤카테는 죽음도 내 삶의 한 부분이라고 말하며 내면의 증인이 된다. 어디에도 절대적인 안전은 없다. 그렇기에 이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고 깨어있어야 한다.

그러나 헤카테를 다룬 단독적인 전설은 전무하다. 그는 죽은 자와 공명하고 산 사람들에게는 불안에 찬 숭배를 받아왔다. 그렇기에 그의 이야기를 하려면 몇 가지 단서들을 가지고 상상력의 나래를 있는 힘껏 펼쳐야 한다.

 살아있는 여성들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잊힌 헤카테라는 이름처럼, 배제된 여성의 역사는 너무나도 낯설게만 느껴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존의 규칙과 지성에 대한 상상력의 승리를 있는 힘껏 꿈꾸고자 한다. 누군가는 나, 당신, 우리에게 이건 단순히 환상이라고, 그림자일 뿐이라고 다그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의 이름이 있다. 우리의 이름을 가지고 서는 것은 매 걸음마다 갈림길을 마주치는 매우 고통스럽고 어두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겐 맞잡을 있는 손이 있고 맞들 있는 횃불이 있기에.

글쓴이: 현전우일
편집: 진달래, Shyvon

 

 헤카테 소개

여성주의 세미나팀 <헤카테>는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결성되었습니다. 2015년 10월 첫 모임 이후로 꾸준히 책을 읽고 토론하며 공부를 해 오고 있으며, 2016년 5월부터 여성주의 정보생산자조합 [페미디아]를 통해 여성주의적 담론을 소개하고, 또 우리 주위를 둘러 싼 비非성평등적 환경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려 합니다. 본 칼럼은 헤카테의 구성원 중 세 명이 참여할 예정이며, 필진 각 1인당 총 네 편의 글을 연재하려 합니다. 시즌1은 12회로 구성됩니다. 페미디아를 통하여 소개하는 [헤카테]의 문제제기와 생각들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가 조금이라도 지금보다는 정의에 가까운 세계로 다가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세미나팀 헤카테의 구성원 소개

마요 :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자처했으나, 여성주의를 알면 알수록 새로운 껍질을 깨게 해주어 더 나은, 되고 싶은 내가 되게 해준다.
채원 : 환경대학원에서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연구노동자. ‘여성주의는 궁극적으로 정의의 문제이다.’
희원(Agnes) : “여성”들의 잃어버린 언어를 찾는 데에 관심이 있다. 여성주의는 결국 존재의 완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과정과 그 과정을 이루어가기 위한 도구이다. 공부와 깨달음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존재의 회복을 통한 그 너머로 도약하기일 것이다.
김서린 : 내 몸으로부터의 정치, 그 실현으로서의 앎과 발화 그리고 ‘결코 친절하지 않음’을 연마하고자 한다.
현전우일 : 헤카테의 무법자이자 귀염둥이 꾀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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